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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OBE Aug 25. 2023

10 어플에서 만난 사람에게 포르노가 찍힐 확률

대학시절 청량함을 머금은 커밍아웃 05


10 어플에서 만난 사람에게 포르노가 찍힐 확률


스무 살 여름방학은 온통 풍물놀이 동아리에서 북 연습뿐이었다. 물론 처음에는 자발적으로 들어갔지만, 그 이후에는 반강제로 연습에 참여를 해야 했다. 고등학교 때도 10 to 10 학원을 다녀본 적이 없었는데 하루 온종일 12시간 내내 북을 치는 새내기의 모습을 상상해 본 적은 더욱 없었다. 그런데 현실은 대운동장 뒤편에 있는 작은 골방에서 전통악기라니. 이대로 스무 살의 여름이 지나가기만을 손 놓아 지켜볼 수 없었다. 누군가라도 만나야 했다.


그를 만나게 된 건 일종의 도박이었다. 데이팅 어플을 해 본 사람이라면 공감이 가는 부분일 텐데, 대부분의 이용자들은 겁쟁이다. 자신의 사진을 올리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겁쟁이를 싫어하기에 사진이 없는 사람은 경계를 했고, 메시지를 주고받더라도 만남까지 성사되는 것은 꽤 긴 시간이 걸리곤 했다. 그런 내가 그날 아무나 만나기로 한 것은 어플로 상대로 도박을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 이대로 20살의 여름방학이 지나갈 수 없어. 그니까 오늘 풍물 연습이 끝나고 누군가가 연락 온다면 그가 어떤 사람이건 기필코 만난다.


그런데 딱 이 타이밍에 거울 앞에서 실루엣만 보이는 사진을 프로필로 한 9살 많은 사람이 연락 올 줄은 몰랐다.


- 안녕하세요. 오늘 시간 되시면 보실래요.


YOU’VE GOT A NEW MESSAGE 배너 알림을 누르니 그 사람이 보낸 메시지가 보였다. 평소 같았으면 NPNC였기 때문에 못 본 척했겠지만, 나 혼자 결심한 바가 있으니 굳이 피할 이유가 없었다.


- 5시에 학교 수업이 끝나서요. 그때 볼까요.


- 대학생들 방학 때 아닌가요? 오늘도 수업 있으신가 봐요. 계절학기인가요. 저도 일이 5시쯤 정리될 것 같아서 제가 역 앞으로 픽업하러 갈게요.


차마 풍물놀이 연습을 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창피해서 둘러댄 것이었는데, 거짓말이 바로 들통났다. 그럼 뭐 어 때. 저 사람은 사진에 자기 얼굴조차 없는데….




동아리 연습이 끝나고, 약속 장소인 역 앞에 도착하여 그 사람에게 인상착의를 물었다. 그는 주차장 앞에 차가 자기밖에 없으니까 쉽게 찾을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나는 괜히 이쪽저쪽 두리번거리다가 그 사람을 찾았다는 제스처를 하며 찬찬히 걸음을 옮겼다.


처음 내 시야에 그의 피사체가 들어왔을 때 설레었다. 상의는 쫙 달라붙는 스포츠 의류를 입고 있었는데, 그 안은 군살 없는 근육으로 채워져 있었다. 연예인의 마른 몸보다는 운동선수의 체격에 가까웠다. 신발은 나이키 모델에게나 어울릴 것 같은 노란 형광색 러닝화였는데 내가 신으면 요란스러웠겠지만, 그의 종아리와는 잘 어울렸다.


기대감을 갖고 앞으로 전진하는데 그의 탄탄한 몸은 가까워질수록 설렘보다 무서움으로 변해갔다. 분명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얼굴이 뭐랄까. 사채업자 같았다. 사채업자라고 생각하고 몸을 보니 공포 그 자체였다.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굳이 차를 가져오는 것도 수상했고, 근육은 운동이 아니라 몸싸움으로 만들어진 것만 같았다.


오늘 만남이 도박이란 것은 알고 있었지만, 생명에 위협이 갈 정도일 줄은 몰랐다. 빠찐코나 하러 간 여행지에서 갑자기 러시안룰렛을 하게 된 격이랄까. 몇 초 만에 그 사람이 위협적인 사람인지 판갈음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고 잠깐 생각했지만, 가까이서 선명해지는 그 사람의 인상착의는 보통 만난 사람들과 달랐다. 수상쩍게 근육질이었고, 깔끔했고, 음흉한 외모였다.


재빨리 뒤돌아 뛰고 싶었지만, 이미 그 사람 앞까지 와버렸다. 뛰는 순간 그에게 뒷덜미가 잡혀버릴게 뻔했고 그럼에도 돌아갈 무모함은 없었다. 그가 만지작 거리는 것이 핸드폰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담뱃갑이었다. 비흡연 20년 차로서 그 담뱃갑조차 위협적인 도구로 다가왔다.


- 5시에 끝난다더니 생각보다 빨리 왔네. 우선 차에 타서 내가 세운 계획 말해줄게.


일본 야쿠자 목소리를 예상했던 것과 달리 다소 평범한 음성으로 나를 차로 안내했다. 차에 태우고 본인이 계획한 3가지 코스 중 하나를 선택하라 했다. 1번은 샤브샤브 먹고 그 주변에 단골 카페 가기. 2번은 드라이브 타고 근처 바다 가기. 3번은 근처에서 밥 먹고 집 가기. 처음 받아보는 철저한 에스코트에 감동했다.


통성명도 하기 전에 뜻밖에 선택 길에 놓이니 뭘 골라야 할지 고민이 들었다. 그래도 드라이브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이 사채업자가 날 정말로 팔아넘길 기회가 될 수 있으니, 이곳저곳 이동하기보다는 이 주변에서 일을 마치는 게 나았다. 1번과 3번을 고민하던 와중에 그가 먼저 추가 제안을 해왔다.


- 드라이브 갈래?


- 멀미가 심해서요.


- 음…. 그럼…. 맞다! 여름인데 샤브샤브는 좀 그렇지? 우리 집 오피스텔 2층에 TGIF 있는데, 거기서 밥 먹고 우리 집에서 쉬자. 너도 학교 갔다 와서 힘들 거 아니야.


- 아… 그럴까요?


얼떨결에 승낙했고, 패밀리 레스토랑에 가서 파스타를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여전히 사채업자의 얼굴을 지니고 있었지만, 말하는 투나 그가 살아온 부분들에서 내가 괜한 사람을 오해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어릴 때 엄격한 집안에서 자랐다고 한다. 그래서 공부가 맞지 않았지만 어찌어찌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지 못하고 지방에 있는 4년제 대학에 입학했고, 적성에 맞지 않아 부모 몰래 자퇴했단다. 자퇴를 하면서 반항 조로 다짐한 것이 ‘절대 양복 입는 일을 하지 말자’였고, 그 덕에 옷장 속에는 스포츠 의류만 있고, 보세 옷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그런 그의 모습은 내가 아는 29살의 모습보다 훨씬 성숙한 질감이었고, 어쩐지 그가 다시 섹시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식사를 마치고 그의 오피스텔로 갔다. 오피스텔은 사무실만 있는 줄 알았는데 주거용 오피스텔이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그의 집안은 모든 것이 정돈되어 있었다. 처음 들어간 곳은 그의 옷장이었다. 그의 말대로 모든 옷들이 스포츠 의류뿐이었다. 또 다른 방에는 피규어로 가득 차 있었다.


피규어가 가득한 방들을 둘러보면서 모든 게 가지런하고 깔끔했다. 손 떼가 묻어 있지 않아 이곳이 누군가가 살고 있기는 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아무것도 없는 내 방에도 먼지는 매일 같이 쌓이기 마련인데, 건담 피규어 어깨에 살포시 내려앉은 먼지가 하나도 없다는 게 이질적이었다. 피규어를 골똘히 보고 있는데, 그가 어깨를 주무르며 피규어에 관심 있냐고 물었다. 나는 관심 없다고 하며 형이 이끄는 대로 침실로 갔다.


그의 침실은 시티 뷰 호텔방을 연상케 했다. 고층인 덕에 역 주변 상가의 네온사인이 보였고 시야 저 멀리에는 강들이 보여 운치가 좋았다. 침대는 구김살 없는 하얀색 면의 이불로 덮여 있었다. 그는 자연스레 침대에 눕더니 리모컨으로 무언가를 조종했다. 에어컨을 켰고, 비트에 따라 색이 바뀌는 스피커로 힙합 음악을 틀었다. 갑자기 큰 소리가 나서 움찔했다. 그는 오른손으로 팔베개 형태를 만들더니 툭툭 자신의 이두를 두들기며 여기 와서 누우라는 시그널을 주었다.


그의 품은 편안했다. 내가 너무 과민했나. 그는 (당시 기준으로) 완벽에 가까웠다. 몸은 다부졌고, 데이트를 할 때 필요한 기본 매너가 있었다. 외제차가 있었고, 자취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험악한 인상과 몇몇 싸함으로 이 사람을 놓치는 것은 아쉬웠다.


그가 내 위에 올라서서 키스를 하니 열이 달아올랐다. 눈을 질끈 감고 그가 리드하는 대로 장단을 맞췄다. 그의 입술에는 닭가슴살과 담배 냄새가 섞여있었다. 운동하는 사람들은 다 이런 맛일까.


그가 하나씩 옷을 벗기는 것이 내가 경험한 스무 살 초반의 사람들과는 달랐다. 물 흐르듯 유하여 벗기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도 않았다. 나를 나체로 만들고 나서야 그는 자신이 입고 있던 흰색 티를 벗으려 했다. 어쩐지 부끄러워 계속 눈을 감고 있었는데 그가 벗는 모습은 보고 싶었다. 불이라고는 창문에 있는 도시의 네온사인뿐이었다. 어둑어둑한 상태로 보니 얼굴에는 그림자가 드리워 썩 나쁘지 않았다.


- 너무 어둡지, 불 켜줄게.


그때. 내 마음도 모르고, 그는 침대 옆 작은 서랍을 뒤지며 리모컨을 꺼냈다. 삐- 소리와 함께 빨간색 등이 방을 밝혔다. 그런데 뭐랄까. 사창가에 직접 들어가 본 적은 없었지만, 영등포 뒷골목에서나 나올 법한 불의 색깔이었다. 홍등이 켜진 방 안에서 나체로 덩그러니 놓인 내 모습. 그리고 그 앞에는 험상궂게 생긴 근육질 남자. 이건 마치 … 내가 본 어떤 포르노 영상과 같은 분위기였다.


나는 그 이후에도 관계를 중단하지 않고 계속 이어나갔다. (현재 시점에서 과거를 회상하며 글을 쓰는데, 나도 내가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다. 화들짝 놀랐고, 공포스러웠지만 타오르는 욕구는 억제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카메라가 있다면 내가 식별되지 않는 각도로 자세를 바꾸거나, 형이 화장실에 들어갔을 때 재빨리 몰래카메라를 찾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정말이지 우스운 사고방식이었다. 신음이 터져 나오려 하면 꾹 참았고, 두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며 섹스를 계속했다.




첫 만남이 썩 유쾌하지는 않았지만 이후에도 꽤 잦은 빈도로 만남을 가졌다. 다만, 이전에 만났던 사람들과 차이가 있다면 연인으로 발전할만한 건더기가 보일 때면 내가 앞서서 차단했다는 점이다.


내가 철벽을 치는 것과는 상반되는 얘기지만, 그는 생각보다 더 괜찮은 사람이었다. 그는 흡연자였는데, 담배를 피고 나서 내 앞에 올 때면 양치를 꼭 했다. (내 주변에는 흡연자가 단 한 명도 없었던 터라, 입대하기 전까지 담배를 피우면 곧바로 양치하는 것이 당연한 건 줄 알았다.) 또 첫 만남에 보였던 에스코트는 마지막 만날 때까지 계속되었었고, 모든 데이트 비용도 그가 부담했다. 그전에 만났던 직장인 29살 놈은 ‘대학생은 용돈 받으니까 나보다 돈 더 많아’라며 나보고 밥을 사라 했는데, 그놈과 같은 나이였던 이 형은 굉장히 나이스했다.


사이가 가까워지고부터 그의 의문들이 하나씩 풀리기 시작했다. 그의 방이 모델 하우스처럼 깨끗했던 것은 유전에 가깝다고 했다. 엄마와 친누나는 본인보다 더 깨끗하게 살고 있기 때문에 이 정도로 정리정돈된 집은 당연한 것이라고 했다. 본인이 군대에 있을 때만 해도 유난 떠는 것 같다는 생각에 괴로워하기도 했지만, 곧바로 남 앞에서는 깔끔 떨지 말자는 자신의 철칙을 세웠다고 했다. 그리곤 혹시 자신의 결벽증으로 불쾌한 게 있었는지 물으며 오히려 나를 챙기는 면모도 보였다.


그의 나이스함은 나이스함이었고. 어플에서 카톡으로 넘어갈 법도 했지만 초반의 의심쩍은 부분 때문에 끝내 넘어가지는 못했다. 카톡이 아니라 어플로만 대화했기에 일상적인 대화를 주고받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만남을 계획하여 만나는 일종의 FWB 같은 관계가 계속되었다. 그가 진지하게 만나보는 게 어떨 것 같냐고 말하기도 했지만, 갖은 핑계를 대며 나는 거절했다.




그러던 어느 날.


- 오이도 드라이브나 갔다 올까?


에어컨 바람을 쐬며 가죽 소파에 반쯤 누워있는데, 그가 물을 벌컥벌컥 마시곤 내게 말했다.


- 형, 지금 10시여서 지금 출발하면 저 막차 끊겨요. 형이 집에 데려다줄 거 아니면 못 갈 것 같아요.


- 당연히 데려다 주지. 오이도 갔다가 너네 집 내려줄게.


- 그럼 가죠. 뭐.


학교가 끝나고, 오피스텔에서 쉬다가 드라이브를 제안한 거라 꽤 늦은 시간이었다. 차는 엄마아빠 나이대만 있는 건 줄 알았는데,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이 차가 있다는 사실은 참 유용했다. 지하철이 닿지 못하는 곳을 쉽게 쉽게 이동할 수 있고, 막차가 끊겨도 택시를 타지 않고 집에 갈 수 있었다. 그래도 어딘지 석연찮은 구석이 있어서 친구에게 문자를 하나 보내고 출발했다.


- 나 새벽 2시까지 연락 없으면 경찰에 신고해 줘. 형이랑 드라이브 떠나는데, 인신매매일 수도 있잖아. 크크.


차를 타고 안전벨트를 매고는 내게 재생해 달라며 CD를 건넸다. 블루투스를 쓰면 됐지만, 드라이브할 때 들으면 좋을 아이돌 음악 20곡을 CD로 구웠다고 했다. 오이도로 향하는 도로에서 내가 좋아하는 신나는 걸그룹 노래만 나오니 평소 자주 하던 멀미마저 잊고, 달리는 차를 즐길 수 있었다.


정차할 때마다 자동차 스틱 옆에 두터운 손을 올리며 내게 손가락 깍지를 꽉 껴달라고 했다. 그리고 손을 잡아주면, 너무 좋다며 그가 더 세게 손을 잡았다. 어쩌면 그는 나를 처음 만난 역 앞에서부터 나에게 진심이지 아니었을까 싶었다. 외모 콤플렉스 때문에 어플에 사진을 올려놓지 못한 게 아닐까. 나에게 거절당할 것 같으면서도 용기 내어서 말을 걸었던 게 아닐까. 평소에는 계획이 없지만, 나에게 만날 때만큼은 준비를 하는 게 아닐까. 그리고 그는 꾸준히 내게 관심을 표현했는데, 내게 너무 뒤로 물러선 것이 아닐까. 그는 충분히 오해를 풀어주고 있는데, 없는 오해를 기어코 만드는 건 내가 실수하는 게 아닐까. 여러 생각이 오고 가다가 그에게 말했다.


- 형, 제가 오해하는 부분이 많은 거 같아요.


- 뭘?


- 아뇨. 저도 형이 좋다고요.


늦은 밤에 도착한 바다는 어두워 시야가 흐렸다. 저 멀리서 조개구이 집들은 환하게 빛나 있었지만, 우리가 내린 곳은 어둠뿐이었다. 그나마 의지할 수 있는 건 달빛과, 달빛을 반사시키는 회색의 방파제뿐이었다. 늦은 저녁에 조개구이를 먹을 것도 아니니까. 이런 장소를 선택한 건 당연해 보였다. 청춘의 야릇함과 설렘은 조개구이 집 앞보다 달빛 아래가 더 어울렸다.


바다를 보며 이야기를 하기 위해 우리는 구멍이 송송 뚫린 돌 틈에서 그나마 넓적한 바위들을 찾았다. 1.5인분 정도 되는 바위에 내 왼쪽 엉덩이는 형의 무릎에 - 오른쪽 엉덩이는 바위에 걸터앉은 엉성한 자세로 형과 대화를 나누었다.


- 형 근데 우리 꽤 오래 만났는데, 저 아직까지 형 이름도 모르는 거 알아요?


- 그런가? 네가 묻지를 않았으니까 ….


- 오늘 여기 오는 길에 우리가 좀 더 가까워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 나도 그래.


- 형은 이름이 뭐예요?


- 나?


형은 뜸을 들였다.


- 네, 형이지 누구겠어요!


- 해범.


- 뭐야, 왜 뜸 들였어요! 이름이 뭔가 귀엽다. 물개 같아요. 바다에 사는 호랑이?



농담조로 던진 말에 형은 정색을 했다. 남의 이름으로 장난치는 건 예의가 아니라는 어른의 말이 떠올랐다. 나는 서둘러 다른 화젯거리로 돌리며 분위기를 풀었고, 늦은 시간에 긴 대화는 못하고 집으로 향했다. 오이도를 향할 때와 다르게 집을 갈 때는 말 수가 적었다. 노래도 틀지 않고 창문으로 세어 들어오는 바람 소리를 들으며 집에 갔다.




집 앞에 도착하니 새벽 3시를 향하고 있었다. 피곤했지만 오늘부터 더 나은 관계가 될 거라는 설렘에 나는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고 싶어 했다. 그때 핸드폰을 보니 친구가 전화를 10 통이 나한 흔적이 보였다. 마지막 문자는 2분 전이었다.


- 너 새벽 2시까지 연락 없으면 경찰에 신고하라며. 벌써 새벽 3시야. 나 진짜 신고한다?


성급히 친구한테 전화를 걸었다. 경찰에게 신고를 하면 안 되니까. 그리고 형에게 말했다.


- 형 저 이제 빨리 가봐야 할 것 같아요.


- 아 그래? 집 다 왔는데 들어가는 거만 보고 갈게. 몇 동에 사는 거야?


- 저 여기 앞 동이예요. 저기 불 켜진 거 보이죠? 엄마가 아직 안 자고 있나 봐요. 저 기다리고 있는 듯?


- 402동 508호?


- 오 눈썰미 좋으시네요. 저 친구가 전화 왔어서 통화하면서 빨리 들어가 볼게요. 데려다줘서 고마워요.


- 에이 뭘, 잘 들어가.


형과의 대화를 빨리 마무리 지으며 나는 아파트 중문 앞에서 친구와 통화를 했다.


- 어어 너 진짜 전화 개 많이 했더라? 10건이나 했어.


- 야 나 진짜 걱정되어서 경찰에 신고하려고 했단 말이야.


- 야, 근데 그 형 생각보다 좋은 사람인 거 같아. 오늘 바다 갔다가 지금 나 집 앞에서 내려줬어. 어, 형 아직도 안 가고 차 앞에 있다.


- 그럼 다행이고. 근데 그 사람이 아직 너 지켜보고 있어?


- 응응 나 집 들어가는 거 보고 들어 가려나 봐.


- 오늘 그 사람에 대해서 알게 된 건 있고?


- 그 사람 이름은 해범이래. 뭔가 물개 같지 않냐? 바다 해에 호랑이 범.


- 이름이 해범이라는 거지? 그 사람 아직도 안 가고 있어?


- 어, 아직도 있네? 나한테 손도 흔들고 있어. 나도 흔들어야지


- 근데, 그 사람 성은 알아?


- 아니 거기까지는 못 들었는데?


- 만약 성이 살씨면 어떡해?




에필로그. 만약 이름이 해범이고 성이 살이면, 전체 이름은 살해범이 된다. 어느 연쇄 살해범이 자신의 이름을 ‘해범’이라고 하고 다닐까. 물론 그 형은 살해범은 아니었을 거다. 일방적으로 형과 연락을 끊은 이후에 나의 영상은 (찍힌 적도 없으니) 어디에도 떠돌지 않았다. 또 기다리면서까지 내가 사는 곳에 왔기에 내가 어딘지 알 수는 있었겠지만, 찾아올 목적이 아니어서 찾아오는 일도 없었다. 그 형은 내가 오해가 많았지만, 괜찮은 사람이었던 것 같다.


어플에서 만나는 사람은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보다 불분명하다. 많은 사람들이 속이기도 - 거짓된 정보를 비추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좋은 인연은 도처에 널렸다. 만약 쎄하면 만남을 중단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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