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추석이 지나고, 아기의 심장은 멈췄다.

평범한 엄마의 평범하지 않은 임신, 출산 스토리

by 김이플


스물 여섯, 남들보다 조금 이르게 결혼을 하고

스물 일곱의 나이에 계획에 없던 아이를 가지게 되었다.


생리예정일이 지났는데, 평소와는 무언가 다른 느낌에

테스트기를 했는데.. 너무나도 선명한 '두 줄'이었다.


처음엔 솔직히 두려웠다.

"어떡하지..." 놀란 마음에 눈물만 났다.


안정적이지 않은 직업을 가지고 아직 한창 일을 배워야 하는 시기인데

임신과 출산으로 나의 커리어가 이대로 멈출 수 있다는 불안함만 엄습했다.


하지만 그 불안함도 잠시,

모든 가족들의 축하가 이어졌고 아기집 초음파를 본 순간

설레는 마음만 가득찼다.


내 생일, 남편 생일, 아기의 출산 예정일까지

모두 같은 4월 하루이틀 차이로 모여 있어 조금 더 설레는 마음으로

태명까지 뚝딱 지어버렸다.

봄, 우리 세가족 쓰리. 된발음이 좋다고 해서 일명 '뽐뜰이'.. 하하하

유치하지만.. 태명마저 귀엽게만 느껴졌다.


당시는 2019년의 일로, 지금 딱 이 맘 때였다.


"엄마, 내 안에 심장 2개나 있다."


추석 명절 전, 아기의 우렁찬 심장소리를 듣고

정말 그렇게 기쁠 수가 없어

친정엄마에게 전화로 주저리주저리 의사로부터 들은

건강한 아기의 상태를 전했다.


그리고 명절이 오고, 가족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고

일주일 만에 다시 찾은 병원에서는

"아기의 심장이 멈췄어요." 라고 했다.


유산이라니... 꿈에도 생각지 않았던 일이다.


임신 11주차인데.. 10주차 정도에서 더 크지 않았다고 했다.

임신 사실을 알자마자 정말 입덧이 심했는데

생각해보니 입덧이 갑자기 괜찮아졌었다.

추석연휴 끝물에 장거리 이동이 힘들었는지 배가 아팠는데..

집에서 쉬면 그냥 괜찮은 줄 알고 쉬었는데

이 때 병원에 갔어야 했는데 왜 참았을까..


우리 아기가 힘들다고 보내오는 신호를,

임신에 무지했던 어린 엄마는 모두 놓치고 말았던 것이다.


의사선생님 이야기에 진료실부터 울기 시작해서

병원 건물 계단에 앉아

남들의 시선은 생각도 않고 정말 오열을 했다.


임신이, 결코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3일동안 눈물의 나날들을 보내고

차가운 수술대 위에 누웠다.


소파수술을 앞두고 온갖 계류유산 소파수술 후기를 찾아봤는데

생각보다 간단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나의 소파수술 경험은 정말 고난의 연속이었다.


.

.

.


수술이 끝나고, 혼자 신혼집에 있을 수는 없을 것 같아

편도 1시간 30분 거리에 사는 친정부모님이 병원까지 데리러와주셨다.


1시간이면 끝날 줄 알았던 수술은

출혈이 지속되어 수술이 끝난 뒤에도 한참을 지혈작업에 애를 먹어

아침에 들어가 저녁 7시가 다 되어 병원에서 나올 수 있었다.


하루종일 너무 많은 피를 흘려서인지,

순간 세상이 노랗게 변하면서 다리가 풀리기도 했지만

그 순간에도 정신력으로 버텨 1시간 30분 거리에 친정집을 기어코 갔던 것 같다.


친정집에서 겨우겨우 먹고 울고 먹고 울고..

그렇게 일주일을 회복에 전념하다 다시 서울로 돌아갔다.


일주일 뒤, 다시 받은 병원진료에서는 피가 아직 고여있다면서

2,3일 조금 더 지켜보다가 피가 안 나오면 다시 소파술로 빼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지켜볼 새도 없이 그날 밤, 사고가 터져버렸다.


남편이 그동안 정신적 스트레스가 심했는지, 퇴근 후 밤늦게 복통과 설사를 호소했고

심한 증상에 동네에 24시 내과를 같이 찾아간 날이었다.

남편 진료실에 같이 들어가 진료 받는 남편 옆에 서서 기다리는데

순간 다리에 무언가 뜨거운 것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정말 새빨간 피였다.

너무 놀라서 진료실을 급히 빠져나와 화장실에 뛰어가 바지를 내렸는데

바닥은 순식간에 피바다가 되어버렸다.


급하게 병원 간호사를 화장실로 호출하고,

간호사는 빨리 119 전화하라면서, 이건 큰 병원 가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생애 첫 119를 타봤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만 보던 장면이었는데, 내 인생에 현실이 될 줄이야..


119 타고 들어간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그동안의 이야기를 전하고, 응급처치가 이루어졌는데..

전공의 선생님은 정말 청천벽력 같이 "소파수술을 다시 해야 한다."고 했다.

한 번만 해도 힘든 수술이었는데 다시 해야 한다니.. 너무 슬픈 일이었다.


나도 그렇지만, 온 가족들의 걱정 속에 난 수술대에 다시 누웠고

이번에는 큰 무리 없이 수술이 진행되어, 이틀만에 퇴원을 할 수 있었다.

수술 이후에는 지속적인 추적관찰이 필요하다는 의사의 소견으로

힘든 대학병원 진료를 정기적으로 다녀야 했다.


.

.

.


나에게 있어 유산, 그 상실의 아픔은 몸이 아픈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배가 나온 임산부만 봐도, 지하철역에 핑크색 임산부석만 봐도 마음이 울렁였다.

삐용삐용 앰뷸런스 구급차 소리는 들을 때마다 그 날의 긴박함, 긴장감이 떠올라 힘들었다.

누군가 "오바떤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한 달에 한 번 생리를 할 때마다 그날 본 그 피바다가 떠올라서 괴롭기도 했다.


특히 제일 힘들었던 건..

수술 이후 다시 돌아가는 일상의 과정 안에서

나를 마주친 사람들 모두가 "괜찮아?" 물었다.

위로의 뜻인 건 알지만,

사실 정말 괜찮지 않은데 웃으며 괜찮다고 해야 하는 그 사회생활은.. 좋게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다.


다시 아기를 갖고, 아기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4월의 봄이 너무 슬퍼서 남편 몰래 정말 밤마다 많이 울었다.


지금은 너무 예쁜 아기가 옆에 있어서 많이 무뎌졌지만

우리 뽐뜰이.. 엄마가 지켜줬다면 우리는 더 행복한 네 가족이 되었을텐데.

언젠가 다시 인사할 수 있는 날이 오겠지?


정말 많이 사랑했어, 우리 아가..

꼭 다시 만나자.



#임신 #계류유산 #소파수술

keyword
작가의 이전글[어린 신부] 스물 여섯, 아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