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우리 아침에 나 가진통 상태만 확인하고 주일 예배드리고 점심으론 곱창 먹으러 가자!"
밤새 지속된 가진통의 통증이 여느 때랑 조금은 다른 것 같지만 그렇다고 진통 같은 느낌은 아니고 아이가 놀긴 하는데 뭔가 석연치 않은 기분이라 주일 예배를 드리고 가기 전에 산부인과에 들러 아이가 잘 노는지만 확인하고 교회 갔다가 점심 먹을 생각에 불편한 배를 붙잡고 병원으로 나섰다.
"입원하셔야겠는데요?"
네? 뭐라고요...?
그저 가진통인 줄 알았는데, 아이가 잘 노는지만 확인하려고 했는데 나는 그 상태 그대로 얼떨떨하게 출산을 위한 입원을 했다. 아침 7시... 아무것도 먹지 않고 왔는데 지금 이 시간부터 금식이라니, 너무 당혹스럽기만 했다. 생각보다 진통이 규칙적이진 않는데 왜 입원하는가에 대한 궁금증이 커져 의사 선생님께 여쭈어보니, 진통을 나타내는 그래프에 이미 출산 직전만큼 최고치를 찍고 있기 때문에 곧 아기가 나올 진통 그래프라고 하셨다.
모든 산모들이 기피하는 그놈의 내진
내진을 하곤 의사는 의아해하며 이상하다 했다. 이 정도 진통이면 더 열려야 할 자궁문이 너무 열리지 않는다며 좀 지켜보자고 했다. 그러니까 이게 주일 아침의 시작이었다. 주일이라면 무엇인가. 바로 주말인 일요일이다. 그 말인즉슨 의사 선생님들도 쉬어야 하는 날이니 당직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다음날 아침 담당의를 만날 때까지 나는 4명의 당직의사들을 만났고 그들은 모두 열리지 않고 꼼짝 않는 내 몸상태에 당황을 했다.
점점 진통이 심해졌다. 너무 아프고 아프다 또 아무렇지 않기를 반복하는데 아이는 내려오지 않고, 문도 열리지 않는다니 미칠 노릇이었다. 통증을 너무 버거워하니 해 질 무렵 무통주사를 놔주겠다고 했다. 몸을 잔뜩 말아 척추에 주사 바늘을 꽂아야 한다는데 불룩 나온 배 때문에 몸이 잘 말아지지 않았다. 마취과 의사 선생님을 내 등을 있는 대로 누르며 주사를 놨다.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은 통증이었다.
주사를 겨우 꽂고 병원 천장을 바라보며 누워있는데 온몸이 젖어오기 시작했다. 주사를 맞고서부터 하체가 전혀 움직이지 않아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머릿속으로 생각만 했다.
아, 나 쉬했나 봐...
내게 등 떠밀려 미안해하며 저녁을 먹고 온 남편이 병실에 들어오자 나는 굉장히 조심스럽고 수줍게 말했다.
"오빠 나... 등이 젖었는데... 느낌이 안 나서 쉬한 것 같아... 어쩌지... 간호사 선생님 좀 불러줄래..?"
남편은 부리나케 달려가 간호사선생님을 모셔왔고 간호사 선생님은 내게 딱 한마디를 해주고 옷을 갈아입혀줬다.
양수가 터졌다니? 아직 내 상태는 아이가 나올 수 있게 준비가 안되었는데 양수가 터졌다는 게 무슨 소리인가. 무통을 맞는 과정에서 나를 꽉 눌렀을 때 그때 양수가 터진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듣는데 너무 원망스럽고 짜증이 났다. 지금부터 24시간 안에 아이를 만나지 않음 아이도 나도 위험하단 말을 해주며 아이가 내려오게 걸어 다니란 말을 건네곤 의료진들은 병실을 나갔다. 하체가 전혀 움직여지지 않는데 어떻게 걸어 다니란 말이지? 남편은 나를 일으켜보려고 했지만 내 하체는 전혀 움직이지도 발도 움직여지지 않았다. 당시엔 이게 모든 무통주사 반응인 줄 알았는데 아이를 어느 정도 키우고 엄마들 모임을 갔을 때 내 증상이 부작용임을 알았다. 밤새 아프고 아이는 내려왔다 올라감을 반복하고 자궁문을 열릴 기미가 없었다. 남편은 쪽잠을 자며 어쩔 줄 몰라하고, 나는 이 지긋지긋한 고통이 언제 끝날까를 생각하며 허리와 배를 잡고 끙끙 앓았다. 밤새 울어서 얼굴이 퉁퉁 붓고 지칠 대로 지쳤을 아침. 내 담당의사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마치 친정엄마를 만난것냥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 선생님은 한 시간만 더 있어보고 유도를 시작하자고 하셨다. 아니요 선생님 저 버틸 만큼 버텼어요 그냥 지금 바로 해주세요. 그렇게 유도주사를 맞았다. 3-4시간이 흘렀을까 너무 아픈데 여전히 자궁문은 열릴 기미조차 없다. 의사 선생님도 내가 너무 지쳐 보였는지. 정말 조심스럽게 제왕절개를 물어보셨다. 옆에서 괜찮을까... 하며 머뭇거리는 남편을 무시하고 나는 단박에 그러겠다며 선생님 지금 당장 수술방 열어주시면 안 되냐고 조르기 시작했다.
수술방이 열렸다고 산모님 걸어 나오실 수 있겠냐며 간호사가 들어왔다. 이제 살살 걸어갈 수 있을 만큼 마취가 풀렸다. 난간을 잡고 복도 끝의 수술방을 향해 열심히 걸었다. 그래 저기만 들어가면 지긋지긋한 이 통증이 끝날 거야란 생각에 정말이지 눈에 뵈는 게 없었다. 전날부터 오늘 아침까지 꼬박 진통을 하고 유도도 하고 결국 수술하러 가겠단 아내가 안쓰러웠는지 남편은 정말 괜찮냐고 울먹거리며 재차 물었다. 나를 위해 걱정하는 말들일 걸데 그런 질문들도 너무 귀찮고 그저 고단해 "오빠 나 다녀올게 이따가 만나" 하며 나는 뒤도 안 돌아보고 수술방으로 들어갔다. 내 발로 들어와 수술대에 누우니 서늘한 게 얼른 잠을 자고 싶어 간호사 선생님께 저 잠을 자도 될까요 물어보니 일단 팔을 묶어주신다고 했다. 그 후로 진짜 깊고 달게 잠이 들었다.
"산모님! 산모님!!"
진짜 달게 자는데 눈 뜨기가 아까울 정도로 진짜 달콤한 낮잠인 것 같은데 나를 자꾸만 흔들어 깨운다. 내 이름도 아니고 자꾸 산모님이라고 불러대며, 눈을 떠보니 아이가 나왔다고 건강하게 출산을 했다고 한다. 보통 이런 말을 들으면 '아기는 어디 있나요' '손, 발가락은 다 괜찮나요' '아이는 무사한가요' 등등을 물어본다는데 잠자는 걸 깨운 게 너무 짜증이 날 따름이었다.
"네네 근데 더 자도 돼요..?"
우리 아이에겐 미안하다만, 아기 소식을 들은 내가 처음 한말이었다.
아까 전에 나를 살살 깨운 느낌이라면 이번엔 이거 잘 자는 나에게 너무 무례한 거 아냐?!라고 할 정도로 나를 대차게 깨우기 시작했다. 그냥 잠 좀 자게 해 주지 진짜 짜게 구네라고 생각하며 눈을 뜨고 현실을 맞닥뜨렸다. 아 맞아. 나 방금 아기 낳았지. 눈앞에 하얀 속사개와 녹색 수술방 천으로 감싸져 꼬물거리고 있는 붉은 아기와 엉거주춤 서서 아이를 안고 신기해하는 남편이 눈앞에 있었다.
너구나. 너였구나. 네가 우리 아가구나.
반가워 아가. 반가워.
어제 아침 입원하고 부터 꼭 32시간 만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