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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곽, 돌아걷는 길
산이 일어난다.
바스락거리는 나무들이 허리를 세우고
부지런한 옆 동네의 나무들을 벗 삼아
바위에 손을 얹고
육중하고 차디찬 물한덩이 마시며
흙 안의 것들을 봄볕으로 차올린다.
산이 하늘을 휘젓는다.
새들은 흩어지며
내리는 봄비만큼
벌레는 땅을 주물러댄다
산이 봄을 부둥켜안으려 하고
봄은 스산하게 다가온다.
스멀스멀 새벽아침 산의 발가락 사이에
어줍짢은 찬물에
새끼겨울을 내던지며
온화하지만 냉철한 봄의 인사를
산의 뒤틀림 속에 흩어지는 재처럼
칼을 든 봄은 산에 안기며
남아 있어 죽어야 할 것들을 잠재우고 있다
그것들은 양보의 후퇴도 아니며
밀려짐의 익숙함도 아니며
처음의 가면을 쓴 이의
횡포
산이 섰다.
꼭대기에서 아쉬움이 우수수 떨어졌고
단단한 바위는 너풀너풀
소리 없이 흘러내렸다.
가지들이 가시처럼 빛이 나고
꽃구멍에서는 옅은 녹색이 고개를 든다.
산이 고개를 들고 노래를 부른다
봄에 찢긴 얼음에 대해
독 품은 꽃의 향기에 죽어가는
것들에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