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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 다니엘 Sep 12. 2022

리스타트 51 - (31)

통학열차


 불행히도 나의 그런 공부법은 심각한 부작용을 가져왔다. 나는 매일 밤 판례들을 읽다가 스탠드를 켜 놓은채로 잠에 곯아떨어지기 일쑤였고, 그다음 날 아침이면, 잠이 덜 깬 멍한 상태로 통학기차를 타기 위해 기차역까지 서둘러 가곤 했다. 그래서 나는 그 당시 내가 법과대학원에 있는 건지, 아니면 군사학교에서 내 육체적, 정신적 건강을 시험하는 과정에 있는 건지 분간이 안 될 정도라고 느꼈다. 하지만 나는 한 편으로, 나만 그런 상황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에 대해 조금은 안도했다. 내 스터디그룹 멤버들 전체는 물론이고, 1학년생 전체가 그렇게 매일같이 열심히 공부하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정신없이 1년이 지나가고, 이제 1년 기간 과목의 마지막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던 때, 우리 스터디그룹은 몇몇 토요일 아침에 학교에서 만나서, 우리 노트와 해당 과목 요약서를 서로 교환하면서 연말 시험 준비에 함께 돌입했다. 우리 그룹 멤버 모두가 1학년 과정을 무사히 마치고 2학년 과정에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각 멤버가 사 온 도너츠 몇 박스와 테이크아웃 커피들을 함께 먹고 마시며 토요일 아침시간을 보냈던 일은 지금까지도 내 기억 속에 인상 깊게 남아있다. 


“도대체 우리 연말 시험에서는 뭘 테스트하려는 거지? 우리 법률지식을 알아본다는 건가, 아니면 우리가 팔 굽혀 펴기를 1분에 몇 개나 할 수 있는지를 알고 싶다는 건가? 난 도무지 모르겠어.” 


그 여러 번의 토요일 아침 스터디그룹 모임의 어느 날, 앤디가 그렇게 투덜댔다. 


“아마 둘 다일 거야. 뭐 그 밖에 특별한 게 시험에 나오겠어?”


그 전날 잠을 제대로 못 잔 내가 쏟아지는 잠을 깨려고 그렇게 대답했다.


“뭐야 이거.” 


앤디는 다시 투덜댔고, 나는 그와 충분히 공감하고 있었다. 사실, 앤디나 나뿐만 아니라 연말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던 상황이라 우리 1학년 전체가 약간 신경이 날카로워 있었고, 그걸 상쇄하기 위해 서로들 가식적인 웃음을 짓는 것이 흔했으니 말이다. 하긴, 우리 모두는 알고 있었다. 만약 우리들 중 누군가 1학년 과정을 통과하지 못한다면 우리 클래스메이트들로부터 동정 어린 위로를 받을 수는 있지만, 그게 전부라는 것을… 그 냉혹한 현실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연말 시험날까지 그런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첫 번째 실패


나의 모든 1년 기간 과목들은  세 시간 동안 에세이 형식으로 답변을 써야 하는 연말 시험 형식을 띄고 있었다. 그중, 내 첫 번째 연말 시험을 시작하기 전의 교실 분위기는 너무 조용해서 바늘이 교실바닥에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정도였다. 이윽고 교수님께서, 시험 질문이 들어있는 종이와 우리가 시험답안을 작성해야 할 파란색 커버의 작은 노트북을 나눠주셨고, “모두들, 시험 잘 보세요.”라는 말씀과 함께 우리는 첫 번째 연말 시험을 치르기 시작했다. 


그 교수님께서는 우리가 실생활에서 맞닥뜨릴 만한 상황을 여러 개 작성하셔서 시험 질문으로 만드셨다. 우리 학생들이 할 일은, 각 문제가 내포하고 있는 법률적 이슈가 무엇인지 파악한 후 그에 적합한 판례나 법률지식을 대입시켜서 분석을 한 후에, 해당사항을 해결하는 데 가장 적합한 해결책을 에세이 형식으로 시험답안 노트북에 작성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시험문제를 다 읽은 후에 1-2분 정도 시간을 사용해서, 먼저 그 과목의 판례집의 목차를 기반으로 한 나만의 간략한 해당 과목 요약서를 백지에 적었다. 내가 이렇게 한 목적은, 한 과목 당 기억해내야 할 내용이 너무 방대해서, 이런 방법을 통해 나만의 요약서를 적어놔야 그걸 토대로 내가 필요한 정보를 생각해내서 해당 시험문제에 적절한 법률 분석과정을 적은 시험 답변을 작성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좋아. 지금까지는 잘하고 있어, 다니엘.'


나는 이렇게 스스로에게 말했다. 그리고는 해당 시험문제와 관련된 전례나 법률지식을 떠올리려고 하다가 당황했다.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상태로 1-2분을 보냈는데, 그 시간이 마치 영원처럼 느껴질 정도로 길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눈을 감고 심호흡을 길게 한 후, 다시 눈을 떠봤다. 그러자 내가 필요한 정보들이 조금씩 생각났고, 나는 그 즉시로 내 답안들을 시험 답안 노트북에 정신없이 써 내려갔다. 얼마나 열심히 써 내려갔는지 볼펜을 쥔 손에 마비가 올 정도였고, 쓰다가 손을 좀 쉬게 하려고 볼펜을 내려 놓고 그 손을 주무르면서 고개를 들어보니, 교실 여기저기에서 나와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는 클래스메이트들을 보면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첫 번째 연말 시험이 그렇게 끝나고 우리 학생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서로 웃기도 하면서, 서로의 답안지를 어떻게 작성했는지에 대해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나도 그들의 대화에 잠시 끼어들었지만, 곧 그 자리를 떠나서 다음 마지막 시험을 준비하면서 그다음에는 이번처럼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던 상황, 또는 블랙아웃이라고 하는 현상은 생기지 않기를 바랐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 증상은 그 후로도 여러 번 반복되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나는 평소라면 내가 공들여서 공부한 내용들을 잘 기억해내는 것을 알았지만, 소위 말하는 시험 스트레스 때문이었는지 내가 원하는 만큼의 정보를 기억해내지 못하는 상황이 시험을 치를때마다 반복되었다. 그래서 나는 1학년 과정을 패스하는 커트라인 바로 밑에 해당하는 성적을 받아서, 결국 2학년 과정으로 진학하지 못했다.   


실패의 원인들


나는 처음에, 내가 실패한 이유가 내 부모님의 기대와 희망에 부응해야 한다는 나 자신과의 약속에 너무 압박을 받은 것 때문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내 부모님께서는 매일 아침 내가 통학기차를 타려고 내 차를 타고 가까운 기차역으로 향하는 것을 응접실 창문으로 바라보셨곤 했고, 그런 그분들의 모습은 나로 하여금 더 공부에 열중하는 동기부여 및 압박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런 나 자신에 대한 압박이 내 마지막 시험들을 망친 이유만이라고 잘못 판단했다. 


하지만 내가 또 한 편으로 생각해 보면, 내가 왜 법과대학원에 가서 변호사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이유도 제대로 정하지 못하고 무조건 법과대학원이라는 프로그램에 뛰어들었던 것이 나의 더 큰 실패 이유였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내 실패의 근본적인 원인들을 다시 검토해보기로 했다. 그리고는 여러 가지 근본 원인을 알아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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