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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 다니엘 Oct 13. 2022

리스타트 51 - (55)

첫걸음


또한 그 당시의 나는 ALMM 과정에 정식으로 합격한 학생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 당시 하버드 칼리지나 대학원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처럼, 하버드에서 발행한 학생증을 지참하고 하버드에 산재한 수많은 도서관들을 포함한 하버드 시설물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 이유 또한, 내가 반드시 ALMM 과정에 반드시 입학해야겠다는 또 다른 동기부여가 되었다. 


물론 다른 사람에게는 하버드 학생증이 그냥 평범한 학생증 그대로 인식될 수도 있었겠지만, 적어도 나에게 그 하버드 학생증은 사용한도가 무한대인 블랙-레벨 신용카드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반드시 그 하버드 학생증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나 자신에게 매일같이 약속했다. 


'나는 그 하버드 학생증을 가져야겠어… 반드시.' 


KFC와 샌더스 대령


2016년 가을학기가 중반을 지날 무렵, <비즈니스 작문> 수업에서는 CEO 나 비즈니스 리더를 평가하는 과제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어느 비즈니스 리더로 정할까 하고 여러 후보를 생각하다가, 문득 KFC의 창시자인 샌더스 대령을 떠올렸다. KFC는 내가 10대 시절부터 즐겨먹던 프라이드 치킨 브랜드이기도 했지만, 그 시절 내가 뭔가 마음에 평안이 필요한 음식을 떠올릴 때면, 나는 여지없이 엑스트라-크리스피 프라이드 치킨 여덟 조각이 담긴 커다란 KFC 버킷과 여러 가지 다른 반찬들이 있는 KFC 세트메뉴를 구매했었고, 그때마다 샌더스 대령의 KFC 치킨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샌더스 대령을  작문 과제의 주제로 정한 이유는, 그렇게 내 10대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나는 샌더스 대령이 어떻게 KFC 창시자가 되었는지에 대한 그의 인생 스토리가 더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의 인생 스토리를 내 작문과제의 주제로 삼았다. 


하지만 내가 그의 인생에 대해 조사를 하면 할수록, 그는 참 독특한 삶을 산 인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괄목할 만 일은 그의 나이 예순여섯이 되던 1956년, 그가 운영하던 레스토랑이 문을 닫아서 기초연금으로 생활을 해야 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가 가지고 있던 프라이드치킨 가맹점 사업을 확장하기로 결심했다는 것이다.[32]

 

그 후로 그는, 그의 차에 압력솥 두 개를 싣고 다니며 미국 곳곳을 여행했고, 기회가 날 때마다 그의 프랜차이즈 사업의 동반자가 될 수도 있는 가맹점 후보의 레스토랑 주인 앞에서 그의 프라이드치킨을 직접 만들어 보였다. 그리고 수백 번의 거절을 경험한 끝에, 그의 프라이드치킨 가맹점 사업을 확장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런 샌더스 대령의 삶의 궤적은, 그 당시의 나 자신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하게 했다. 

         

[32] Withworth, William. “KENTUCKY~FRIED.” The New Yorker, 14 February 1970, https://www.newyorker.com/magazine/1970/02/14/kentucky-fried  accessed August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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