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질.
파이 페이스는 내가 워킹 홀리데이를 갔던 2012년만 해도 하나 건너 하나 있을 정도로 흔한 가게였다. 그러나 2015년에 돌아왔을 땐 수가 반도 안되게 줄어 몇 개의 지점만 겨우 목숨을 이어가고 있었다. 과도한 사업 확장으로 파산에 이른 것이었다. 내가 일하는 지점은 중국인이 소유한 가맹점이었다. 나는 한 번도 보지 못했다. 호가 그의 손발이 되어 모든 일을 처리했다. 주인이 포함된 채팅방에서나 그의 존재가 보일 뿐이었다. 우리는 하루에 몇 차례 파이 진열대와 정산서 사진을 찍어 가게 상황을 보여 줘야 했다. 사장이 메시지를 올리는 경우는 거의 없었지만 아주 드물게 가게 청소가 잘 안 됐다든지 매출을 많이 내서 수고했다는 말을 한 적은 있었다.
임금을 지불하는 방식도 구리기가 짝이 없었다. 나는 최저임금보다 한참 낮은 시간당 14불을 받았다. 그러다 일한 지가 오래되고 호의 마음에 들자 오후 근무로 옮겨졌고 시급은 1불을 더 많이 받았다. 오후에 종종 같이 일하던 말레이시아 여자애는 12불을 받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호에게 올려달라고 말했다가 거절을 당했다. 카메라로 일하는 걸 지켜보니 움직임이 시원찮다는 이유였다. 12불은 법정 최저임금의 거의 절반이었다.
밤, 주말, 공휴일은 시급을 더 줘야 하는 게 법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받는 돈은 1년 내내 같았다. 12월 31일과 1월 1일에만 시급을 30불로 올려줬다. 급여명세서는 회계연도말에만 한 번 받았는데 공수표 같은 종이에 손으로 쓴 어설픈 문서였다. 이해가 되지 않았던 건 급여는 불법으로 지급하면서 세금은 정부에 신고하라는 것이었다. 이게 어떻게 법망에 걸리지 않았을까? 이렇게 대담한 짓을 줄곧 해왔다는 게 기가 막혔다.
워낙 흔한 일이라 문제가 되지 않는 것 같았다. 호주의 어느 곳을 가도 노동착취는 쉽게 볼 수 있었다. 직원이 동양인(인도인과 파키스탄인을 포함한)만으로 돼있다면 두 말할 것도 없었다. 모두 법정 노동시간을 넘겨 일하길 원하거나 더 나은 일을 구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나라 전체가 이렇게 더 적은 돈으로 더 많은 시간을 일하려는 노동자들의 덕을 보고 있었다.
이런 사업장이 고발되는 사례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2015년 세븐일레븐의 만행을 폭로하는 기사가 대표적이었다. 그런 세계적 기업조차 아주 오랫동안, 고질적으로 이민 노동자들을 함부로 부려왔다는 사실에 호주 전체가 충격을 받았다. 모든 매체가 야단법석을 떨며 보도를 했다. 그 여파로 크고 작은 사업체들의 실태가 더 밝혀지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조금 지나자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갔다. 근본적으로 바뀌는 것은 거의 없었다. 파이 페이스와 같은 가게들은 여전히 수두룩했고 12불, 15불 임금은 조금도 오르지 않았다.
우리 피해자들은 왜 악덕업주들을 신고하지 않는 것일까? 방법을 모른다. 있다 해도 너무 어렵다. 거의 신고를 않길 바라는 것 같았다. 112에 전화하거나 국민 신문고에 올릴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또 우리에게 피해가 돌아올까 봐 두려운 것이었다. 노동시간을 어겼다고 호주에서 추방을 당할까 봐 무서웠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더 나은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감히 생각하지 못하게 길들여졌다. 이 나라에 온 건 내 선택이니 불평하지 말아야 한다는 게 모두의 마음가짐이기 때문이다. 워킹홀리데이 메이커들, 외국인 학생들은 스스로를 호주 사회의 일원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부당한 대우는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인다.
파이 페이스에서 돈을 훔치는 건 어렵지 않았다.
파이는 하나에 4.95불이었고 사람들은 대부분 5불 지폐를 냈다. 그 돈을 돈통 대신 내 주머니에 넣으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포스기에 입력만 안 하면 됐다. 재고가 빈다고 의심을 살 일도 없었다. 그만큼 관리가 허술했기 때문이었다. 24시간 매장을 매니저 혼자 관리하기란 불가능했다. 커피값을 챙기는 건 훨씬 쉬웠다. 커피는 파이처럼 낱개로 셀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원두와 우유가 조금 빈다고 알아차릴 사람은 없었다.
이는 풋볼 경기가 있는 밤 근무 때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손님이 몰리는 한두 시간에 버는 돈이 어마어마했고 나 혼자 일했기 때문이었다. 하루 매출의 반 이상을 그 시간에 벌 정도였다. 그래서 돈을 조금 챙겨도 티가 나지 않았다.
일이 익숙해질수록, 풋볼 무리를 더 많이 상대할수록 나는 더 대담해졌다. 카메라를 의식하기 시작한 이후로는 손놀림마저 더 교묘해졌다. 돈을 바로 주머니에 넣지 않고 돈통 한쪽에 모아두었다 정산할 때 슬쩍 챙겼다. 내 원래 급여보다 더 많이 훔치는 밤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새벽 호가 평소보다 일찍 가게에 나타난 것이었다. 아주 드문 일이었다. 호에게 한두 시간 지각은 기본이었다. 호는 내게 할 말이 있다며 나를 가게 밖으로 불렀다. 그는 담배에 불을 붙이며 말했다. “The owner says he detected some suspicious activity on POS.”
호는 피곤한 얼굴로 담배 연기를 뿜었다.
“You would select items on the screen and then delete them. You did this a lot. Can you explain yourself?”
눈앞이 캄캄해지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속이 나락으로 꺼지는 느낌이었다. 얼굴의 핏기도 싹 가셨을 것이다. 아직 날이 어두운 게 다행이었다.
포스기에서 감지된 수상한 행각이란 이랬다. 손님이 주문을 하면 나는 아이템을 포스기에 찍는다. 손님이 카드를 내면 나는 포스기에서 지불을 마무리한다. 그러나 현금을 내면 나는 돈을 챙기고 포스기에 찍힌 아이템을 취소한다. 이걸 하룻밤 사이 수십 번을 반복한 것이었다.
“The owner is in town, and he watches us through the surveillance cameras and he can even see the screen.” 호가 말했다.
사장이 멜버른에 왔으니 서비스나 청소에 더 신경 쓰라는 말은 며칠 전에 들은 적이 있었다. 사장은 감시카메라뿐만 아니라 포스기가 쓰이는 것까지 핸드폰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조금도 믿지 않았다. 설마 감시카메라가 작동이 된다 해도 24시간 운영하는 매장을 누가 보고 있을 것이며, 그게 핸드폰으로 연결됐다는 말은 더욱 터무니가 없었다. 어릴 때 선생님들이 겁주려고 하던 거짓말 같이 들렸다. 뒤통수에도 눈이 달렸다고.
허지만 아무래도 신중해야 했다. 며칠만이라도 손을 멈췄어야 했다.
잠겨오는 목을 가다듬고 내가 겨우 대답했다. “It was a really busy night. People would order and cancel a lot.”
호는 후 연기를 뿜으며 잠자코 있었다. 더 이상 질문은 없었다. 사장과 말해보겠다며 일단은 집에 가라고 했다.
집에서 잠이 오지 않아 몇 시간을 뒤척였다. 작은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랐다. 언제라도 핸드폰이 울릴 것만 같았다. 아니면 누군가 집 문을 두드릴 것 같았다. 사장이 직접 찾아올까? 경찰이 올까? 뉴스에 나게 될까? ‘외국인 학생의 간 큰 절도'와 같은 기사가 쓰일까? 신문과 뉴스에 내 얼굴이 퍼질까? 나는 전과자가 될까? 공포는 순간순간 갑작스레 찾아왔고 그럴 때마다 나는 속이 썩어가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리고 다시 일을 나갈 시간이 왔다.
서던 크로스 역에서 내려 나는 멀찌감치서 파이 페이스를 살펴봤다. 여느 때와 다를 게 없어 보였다. 호도, 경찰도 없었다.
직원들과 교대하며 일을 시작했다.
포스기 사건은 다시 거론되지 않았다.
호가 내 말을 믿은 것인지, 아니면 알면서도 넘어가 준 것인지 모르겠다. 손님들이 주문을 취소하는 바람에 누르고 지우기를 반복했단 말은 별로 설득력이 없었다. 궁지에 몰려 얼른 만들어낸 변명이었다.
그럼에도 호가 더 이상 얘기를 꺼내지 않은 것은 눈감아 주기로 한 것인지도 몰랐다. 호도 가끔 수상한 짓을 한다고 지아가 말한 적이 있었다. 정산 후 잉여금이 있으면 호는 그걸 몰래 챙기는 것 같다고 했다. 돈이 카메라에 보이지 않게 정산서 밑으로 가리고 금고에 옮긴다고 했다. “종이를 그렇게 수평으로 들고 다니는 사람이 어딨어.” 호의 어색한 움직임을 흉내 내며 지아가 말했다.
사장은 호에게 전적으로 운영을 맡겼다. 호가 그 사이에서 무슨 짓을 더 하고 있을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그 후로 가게에서 좀도둑질을 하다 걸린 직원들의 뉴스를 볼 때면 간담이 서늘해지곤 했다. 내가 그 사람들 중 하나가 될 수도 있었다. 몇 번으로 그쳤으면 아무도 몰랐겠지만 어디서 멈춰야 할지 모르는 게 문제였다. 하루에 50불만? 열 번만? 한 번 더 한다고 크게 달라지는 건 없는데 왜 거기서 선을 그을까?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가 걸려도 단단히 걸릴 때까지 하는 법이었다.
파이 페이스는 학생회 일이 많아지면서 그만두기로 했다. 그것만으로도 생활비가 됐다. 공부에도 더 신경을 쓰기로 했다.
가끔 파이 페이스 앞을 지나갈 때면 나는 멀찍이서 염탐을 하곤 했다. 누가 어떻게 일하고 있나. 나도 저런 모습이었을까. 호는 또 누구를 못살게 굴고 있나. 가게를 지나가기만 해도 긴장이 됐다. 아직도 호가 무서웠다.
어느 날 무심하게 가게를 지나가다 안에 있던 호와 눈이 마주친 적이 있었다. 그가 반갑게 손을 흔들며 나를 불렀다. 가게에 들어갔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냐고 호가 친근하게 물었다. 근처 사무실에서 일하다 잠깐 나온 길이라고 했다. 영상 만드는 일을 한다고 하니 호는 내가 그쪽 공부를 하고 있단 말을 기억한다며 꿈을 이룬 게 아니냐고 축하해 줬다. 언제든 들러서 먹고 싶은 건 맘껏 먹으라고 했다. 나는 파이 페이스의 음식을 좋아하지 않았다. 기름진 파이 페이스트리와 끈적한 고기소는 전혀 입에 맞지 않았다. 파이에 케첩을 잔뜩 뿌려 먹는 사람들을 보면 케첩 맛에 먹는 것 같았다. 이런 게 한 나라를 대표하는 음식이라니.
저스트 카푸치노 플리즈, 내가 말했다.
애니 슈거? 커피 주문을 받을 때 반사적으로 튀어나가는 말. 그 질문을 호에게서 받는 기분이 이상했다. 노련한 동작으로 호는 커피 한 잔을 뚝딱 만들었다. 언제든 들르라는 호에게 나는 고맙다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