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버른 시내 한복판에서 밤샘 근무를 시작했다.
나는 안정적인 일자리 찾기에 정신이 팔려 학업은 뒷전이었다. 최소한의 출석과 과제로 학점을 받을 수만 있다면 그만이었다.
일을 하다 그만두다 잘리기를 반복하다 정착한 곳은 파이 페이스 Pie Face였다. 파이 페이스는 고기 파이를 비롯하여 각종 페이스트리와 커피를 파는 체인이었는데 내가 간 가게는 서던 크로스 Southern Cross역 입구에 있는 24시 지점이었다. 서던 크로스 역은 메트로와 기차가 다니는 역사라 유동인구가 꽤 많았다. 가게에는 면접을 보러 온 사람들이 테이블을 하나씩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매니저 호는 자리를 옮겨가며 한 명씩 얘기를 나눴다. 내 차례가 왔을 때 호는 내 이력서를 보고는 자기도 학생 때 어렵게 일하던 걸 기억한다며 내게 트라이얼을 시키기로 했다. 내 시프트는 밤 10시에서 아침 6시까지였다.
늦은 저녁 파이 페이스를 찾아갔다. 프랑스인 직원 로빈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곧 호주를 떠나는 그의 뒤를 내가 잇는 것이었다. 로빈은 파이부터 외워야 한다고 했다. 파이는 열 가지 종류가 있었는데 겉만 보고 이름을 댈 수 있어야 했다. 파이에는 얼굴 모양이 그려져 있어서 눈과 입의 생김새로 종류를 구분했다. 눈이 S자로 그려져 있고 입은 M자로 돼있는 파이는 Steak & Mushroom 파이인 식이었다. 카레가 들어간 채식주의용 파이는 입이 V 자였다. 이걸 다 맞추는 게 첫 번째 관문이었다. 호와 트라이얼을 제일 먼저 이것부터 물었고 틀리는 사람은 바로 내보낸다고 했다.
오븐을 조작하는 법도 배워야 했다. LCD 스크린이 있는 오븐이라 미리 맞춰놓은 설정만 누르면 제품은 알아서 구워졌다. 적어도 이론상으론 그랬다. 실제로는 설정해놓은 것과 구워지는 것에 조금 차이가 있어서 거의 모든 설정에 온도나 시간을 추가로 만져야 했다.
가장 어려웠던 것은 정산이었다. 8시간 근무가 끝날 때마다 매출을 초기화한 뒤 정산서를 써야 하는 게 너무 복잡했다. 친절한 로빈이 자세히 가르쳐줬지만 한 번에 이해하기란 힘들었다. 돈을 보면 지레 겁부터 나서 머리가 얼어버리는 느낌이었다. 더욱이 근무를 마칠 즈음이면 몸과 마음이 결딴이 난 지경이었다.
로빈과의 근무가 끝나자 호는 낮에 자기와 같이 일을 해 보자고 했다. 며칠 후 아침 6시에 매장에 갔더니 로빈이 퇴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 호와 같이 일을 한다고 했더니 로빈이 말했다. “Oh, shit. Good luck.”
호와의 시간은 혹독했다. 지금까지의 어느 매니저 못지않는 고생이었다. 자기도 학생이었고 어쩌고 하던 모습은 간 데 없었고 실수를 할 때마다 모욕을 주는 성깔만 남았다. 로빈과 일하며 도대체 무얼 배웠냔 태도였다. 내 영어를 가지고도 한 소리를 했다. 손님의 주문이 끝날 때마다 “Anything else?”라고 하는 나를 보고 앵무새처럼 그 말만 하지 말라며 트집을 잡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파이 이름을 다 알아맞혔던 것이었다.
카페에선 아침 6시 앞뒤가 하루 중 가장 바쁜 때였다. 꼭두새벽부터 출근하는 육체노동자 Tradesman들이 커피와 크로와상과 샌드위치를 불티나게 사갔기 때문이다. (육체노동자들은 호주 속어로는 트레이디 Tradie라고 불렸다. 우리나라에서 육체노동자라고 하면 막노동자, 나이 많은 인부들을 떠올리지만 호주에선 당당한 일자리 중 하나였다. 트레이디는 교육과 수습을 통해 달성할 수 있는 어엿한 커리어였고 사무직 사람들 못지않는 수입과 사회적 지위가 있었다. 주황색이나 연두색의 형광 작업복, 카고 바지, 두꺼운 부츠를 신고 점심이 담긴 작은 아이스 박스를 들고 일터로 향하는 이들의 모습은 사무실 일꾼들과 옷차림만 다른 직장인들이었다. 트레이디들은 온몸으로 일을 하는 사람들인 탓인지 거친 남성미로 똘똘 뭉친 부류들이었다. 여름이면 민소매에 반바지를 입은 젊은 트레이디들의 단단하고 그을린 팔과 종아리를 유감없이 볼 수 있었다. 아예 웃옷을 벗은 채 사다리에 올라 뭔가를 뚝딱거리고 전동 드릴을 드르럭 거리기도 했다. 트레이디들이야 말로 남자 중의 남자들이었다.)
파이 페이스의 커피는 세 가지 사이즈가 있었다. 또 사람마다 커피 먹는 입이 달라서 에스프레소의 양, 우유 종류, 설탕의 양을 다르게 주문했다. 그걸 헷갈리지 않고 빠르게 만드는 게 호주 커피 만들기의 기본이었다. 대부분은 라테, 카푸치노, 플랫 화이트 중 하나를 시켰다. 거기서 저지방 우유나 두유를 써달라든지 설탕은 몇 스푼을 넣어 달려든 지 요청을 했다. 우유를 3분의 4만 넣어달라기도 했고, 어쩔 땐 끓는 수준으로 뜨겁게 만들어 달라기도 했다. Skinny(저지방) latte, one sugar, extra shot’이라든지 ‘Large soy cappuccino, extra hot’과 같은 주문이 들어왔다. 사람들은 매일 같은 시간에 나타나 같은 커피를 찾았고 바리스타는 손님 얼굴만 보고 커피를 만들기 시작하거나 아예 시간에 맞춰 만들어 놓기도 했다.
나에겐 아직 먼 길이었다. 게다가 매니저가 옆에서 보고 있을 땐 제대로 할 일도 틀리는 법이었다. 호는 손님들이 보는 앞에서 망신을 주는 일도 많았다. 너 같이 일 못하는 사람은 처음이라거나 어떻게 이것도 모르냐는 말로 언어의 고문을 계속했다.
일을 갈 때마다 불안과 공포에 시달렸다. 그러나 잘리지는 않았고 꾸준하게 주 4일 시프트를 받았다. 매일 같은 시간이 정해져 있는 점과 밤에 일을 하기 때문에 학교와 겹치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참을 수 있었다. 밤 근무를 하면 호와 마주칠 일도 거의 없었다. 가끔 같이 일하게 돼도 성질이 조금씩 누그러지는 게 보였다.
밤에 혼자 일하는 것도 익숙해졌다. 머리가 하얗게 셀 것만 같던 정산도 쉬워졌다. 정산을 하는 5시쯤이면 출근하는 사람들로 갑자기 바빠졌는데 손님을 받으면서 정산서를 쓰는 일도 동시에 하게 됐다. 돈이 정확히 맞아떨어지지 않는 날도 있었다. 아무리 손님과의 돈 계산을 정확히 하고 돈통을 몇 번이나 센다 해도 차액은 꼭 생겼다. 조금 모자라거나 오히려 돈이 남을 때는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어느 밤 230불이나 돈이 모자란 일이 생겼다. 호는 나부터 의심했다. 그러나 그만한 돈을 훔치고 모자라다고 거짓말할 정도로 멍청하거나 대담한 사람은 없었다. 그럼 어떻게 된 거냐고 묻는 호에게 나도 할 말이 없었다. 호는 내가 잠깐 화장실이라도 간 사이 누군가 훔치지 않았겠냐고 이론을 제시했다. 그러면서 매장 감시카메라로 확인해 보겠다 하더니 230불의 결론은 끝까지 나지 않았다. 감시카메라가 진짜로 작동하는 거 같지도 않았다.
평일 밤에 일을 하면 손님이 거의 없어서 매장 청소와 다음 날 준비를 마치면 할 일이 없었다. 가만히 가게만 지키고 있으면 됐다.
밤새 이상한 사람들이 가게를 찾아오는 일들이 가끔 있었다. 그중 한 명은 시커먼 넝마를 입고 다리를 절뚝거리던 노숙자였다. 가게에 들어와 동전을 지폐로 바꿔줄 수 있냐고 하길래 그래 줬더니 그는 내가 일하는 밤마다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는 카운터에 동전을 쏟아냈고 나는 그걸 열심히 세어가며 지폐로 교환해줬다. 곧 그게 껄끄러워졌다. 돈을 잘못 셀 수도 있었고 돈통에 지폐 없이 동전만 쌓이는 게 괜히 신경이 쓰였다. 그걸로 호가 트집을 잡을 수도 있었다. 지폐 한두 장이 아니라 거의 백 불에 가까운 돈을 다루는 것도 불편했다. (하루 벌이가 그 정도란 말인가?) 어느 날부터는 단호하게 안된다고 말했더니 그는 “Please, please” 하며 애처롭게 빌기까지 했다. 사정은 딱하지만 따지고 보면 나도 딱한 처지였다. 푼돈을 받아가며 밤새 일하고 다음 날 학교에 가는 외국인 학생. 집도 직장도 없어 거리에 내앉아 구걸을 하며 백 불을 버는 호주인. 누가 더 낮은 쪽이었을까? 나와 그의 삶이 바뀌었으면 어땠을까? 호주 국적만 있었다면 나는 못할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일도 더 좋은 곳으로 구할 수 있었을 것이고, 항상 불리한 위치에서 눈치를 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노숙인이라 해도 그는 호주의 시민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그 하나만으로도 나보다 훨씬 앞선 출발점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에게 돈 바꿔주기를 거부하기 시작한 건 그 질투의 마음 때문이었는지도 몰랐다. 나는 노숙자를 부러워하고 있었다. 그는 왜 은행에 가지 않았을까. 노숙자라고 받아 주지 않는 것일까, 갈 시간이 없었던 것일까.
주말 밤에는 클럽을 나다니는 사람들이 많이 들렀다. 취하고 배고픈 무리들이 시끌벅적 거리며 먹을 것을 찾았다. 의외로 싫지 않은 종류의 손님들이었다. 취기와 객기에 젖어 말썽을 부릴 법도 했지만 선을 넘는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런 사람들을 구경하는 게 재밌었다. 근처에 스트립 클럽을 갔다 왔다며 유세를 떨듯 공짜 쿠폰을 주는 남자도 있었고, 의상 파티에 참여하느라 이상한 옷을 입고 돌아다니는 사람들도 있었다. 모두 흥겨운 기분을 이어가고 싶어 하는 이들이었다. 매장에서 나는 지루함을 달래려 내 핸드폰을 연결해 밤새 음악을 틀곤 했는데 거의 팝과 댄스 음악이라 사람들의 반응이 좋았다. 그럴 때면 디제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었다. 비욘세의 Love On Top이 나오기 시작했을 때 어떤 커플은 갑자기 춤을 추기 시작했다. 노래가 끝날 때까지 신나게 흔들더니 그들은 숨을 헐떡이며 내게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특별한 추억을 만들었다고 했다. 한밤의 24시 카페에서 즉흥적으로 춤판을 벌인 그들은 아마 영화 속 주인이 된 기분이었을 것이다
파이 페이스를 스쳐간 수많은 손님들 중에서 가장 인상이 남는 남자가 있었다. 어느 밤 정장을 멋지게 입은 남자가 찾아와 시금치 롤을 시켰다. 가게는 비어 있었다. 그는 시금치 롤이 좋다며 퍽 넉살 좋은 태도를 보였다. 그게 기분이 좋아서 나도 시금치 롤이 좋다고 맞장구를 쳤다. 남자는 콘퍼런스를 마치고 술을 마시다 막차를 놓쳤다고 했다. 그는 회색 정장에 하얀 셔츠를 입고 있었다. 타이는 매지 않았고 셔츠 깃은 재킷 밖으로 빼내어 입었다. 촌스러울 수도 있는 연출이었지만 남자의 전체적인 스타일이 좋았다.
그는 자리에 앉는 대신 카운터에 서서 시금치 롤을 먹었다. 내 이름을 무엇이고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다. 그는 한국이 꼭 가보고 싶은 나라 중 하나라며 특히 부산이 궁금하다고 했다. 자기는 어디 사람일 것 같냐며 맞춰 보라고 했다. 인도? 내가 말했다. 그랬더니 인도 어딘 거 같냐며 또 물었다. 나는 도시 이름들을 대며 나름의 지식을 자랑했다. 고아, 델리, 뭄바이… 뭄바이라고 하자 남자는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는 계속 이렇게 대화를 해도 되겠냐고 내게 물었다. 내겐 고마운 일이었다. 다른 손님이 오면 잠시 말이 끊겼다. 그리다 다시 얘기를 이어나갔다. 손님이 오고, 남자는 롤을 먹고, 나는 다시 남자에게 말을 시켰다.
역 안에 대기실이 있는지 그가 물었지만 나는 여기 있어도 된다고 했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지고 밤이 깊어지자 남자는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테이블에 엎드렸다. 혹시 못 일어나면 깨워달라며 남자는 잠이 들었다.
5시가 조금 넘자 그는 부스스 일어났다. 나는 그가 다시 잠으로 돌아가길 바랐다. 그럼 내가 퇴근하는 6시에 맞춰 그를 깨울 수 있을 것이다. 잠에서 깨는 느른한 얼굴을 다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와 커피를 마시거나 아침을 먹으러 갈 수도 있었고 아니면 집에 가는 길에 잠깐 동행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별 말이 없었다. 몇 시간 전이 꿈같이 느껴졌을 것이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내 걱정을 덜어주듯 그는 만나서 반가웠다며 인사하고 떠났다.
밤의 파이 페이스는 대체로 안전했지만 아찔한 순간들도 몇 있었다. 어디선가 철제 의자를 들고 와 다짜고짜 나한테 던지겠다고 덤비는 사람도 있었고, 내게 물을 끼얹은 사람도 있었다. 자꾸 물을 달라는 게 귀찮아서 싫다고 했더니 다른 곳에서 물을 받아와 던지며 화풀이를 한 것이었다. 어떤 남자는 내가 거슬러 주는 잔돈을 직접 받지 않고 카운터에 올려놓게 했다. 돈을 주섬주섬 챙기던 그는 위협적인 얼굴을 하고는 뭔가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남자가 떠나자 상황을 보고 있던 한 손님이 다가와 내게 괜찮냐고 물었다. 뭔가 불쾌한 일이 일어난 것 같았다. 손님의 동정 어린 어조와 잔돈을 내게서 직접 받지 않으려던 남자의 태도로 미루어보아 남자는 이민자와 유색인종 혐오의 말을 한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