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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훈 Sep 17. 2022

멜버른의 여인 4: 소피

나는 소피에게 피츠로이를 소개시켜 줬다.

디안드라와 사라는 학교를 졸업하며 학생회를 떠나야 했다. 디안드라는 학생회 인맥을 통해 푸드트럭 로고와 메뉴를 디자인하는 작은 사무실에 취직했고, 사라는 멜버른 폴리텍에 행사 코디네이터로 채용됐다. 둘 다 졸업과 동시에 자기가 하고 싶어 하는 일, 잘하는 일에 정착한 것은 더 바랄 게 없을 정도로 완벽한 전개였다.

사라는 일을 안 한 적이 없었다고 했다. 법적인 나이가 되자마자 울워스에서 일을 시작해서 한 번도 쉬지 않고 돈을 벌었다고 했다. 그렇게 10대 때부터 돈을 차곡차곡 모아 왔다. (그때 발급받은 직원 할인 카드가 아직까지 있어서 장은 무조건 울워스에서 봤다.)

사라는 일을 하지 않아 돈벌이가 끊기는 걸 상상할 수 없다고 했다. 이제는 멜버른 폴리텍이라는 꽤 큰 교육기관의 정직원이 됐으니 사라는 탄탄한 경제력이 생겼고 땅을 사고 집을 짓기 시작했다. 남자 친구와 같이 살 보금자리였다. 이는 학생회의 많은 동료들이 똑같이 밟는 인생의 수순인 것 같았다. 그들은 10대부터 돈을 모았고, 학생회에서 경력을 쌓았고, 졸업 후엔 번듯한 곳에 취직했고, 안정적인 파트너와 함께 어른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 그들은 대출을 받아 개발이 막 시작되는 교외에 부지를 사고 집을 지었다. 거기서 몇 년을 살다 땅과 집값이 오르면 그걸 팔아 재산을 불리고 더 좋은 곳에 살겠다는 수년 후의 계획까지 짜고 있었다.

나에게는 너무 낯선 일이었다. 대학 교육을 받고, 직장을 잡고, 결혼을 하고, 집을 사고, 삶은 점점 더 풍요롭고 여유로워진다는 계단 오르기의 인생은 상상의 일이기만 했기 때문이다. 말로만 들었지 현실인 줄은 몰랐다. 마치 심즈 같은 게임이 눈앞에서 펼쳐지는 것 같았다. 나는 호주에서도, 한국에서도 이 같은 삶을 꿈꿔본 적 없었다. 나에게 안정적인 삶이란 오직 괜찮은 월세방과 그걸 감당할 수 있는 돈벌이었다. 그리고 조금 남는 게 있으면 더 바라는 게 없었다.


네트볼 결승전을 마치고

졸업한 사람들이 떠날 때마다 새로운 학생 직원들이 들어왔다. 같이 오래 했던 이들이 떠나고 새 얼굴들이 들어오면 괜히 텃세를 부리고 싶기 마련이었다. 재밌고 쿨한 사람들은 다 가고 애송이들을 상대해야 한다는 선임의 심보였다.

사라는 학생회에 있을 때 네트볼 Netball 팀을 만든 일이 있었다. 네트볼은 아주 간단히 말하면 농구의 순화 버전이었다. 신체접촉은 거의 없고 공을 잡으면 드리블을 하는 대신 멈춰서 다른 사람에게 패스를 해야 했다. 농구에 비하면 훨씬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스포츠였고 호주에선 꽤 인기가 있었다. 사라의 주도 아래 우리는 주말에 만나 연습을 하기 시작했고 월요일마다 열리는 지역 리그에도 참가하며 사교 네트볼을 즐겨웠다. 학생회는 떠나도 우리는 네트볼로 계속 만나는 사이가 됐다.

여기에 소피라는 친구가 들어왔다. 소피는 사라의 뒤를 이어 행사 코디네이터 자리를 맡은 여자아이였다. 이제 막 스무 살을 넘긴 듯 어려 보이는 친구였는데 조잘조잘 밝은 성격이라 모두와 금방 친해졌다. 소피는 사라를 멘토처럼 여겼다. 사라는 행사 코디네이터의 큰손이기도 했고 네트볼팀을 이끄는 주장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월요일 저녁 경기를 하고 다음 날 사무실을 나가면 소피와 나는 자연스럽게 수다를 떨었다. 소피와는 대화가 쉬웠다. 소피가 내게 인사를 하고 하와유를 물으면 예의가 아니라 정말 내 인생이 궁금해서 그러는 것 같았다. 나는 남들 앞에서 속을 좀처럼 털어놓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소피와는 마음이 편했다. 내 얘기를 늘어놓다가 아차 싶을 때도 있었다. 일터에서 내 사생활을 너무 드러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젯밤 클럽에 가서 어떻게 놀고 어떤 남자를 만났다거나 넷플릭스에서 어떤 퀴어 다큐멘터리를 봤다는 얘길 하면 소피는 눈을 반짝이며 귀를 기울였다.

하루는 일을 마치고 둘이 같이 퇴근을 하는 길이었다. 소피가 차로 나를 역까지 데려다준다고 했다. 걸어서 얼마 걸리지 않는 거리였지만 마다할 이유도 없었다. 역에 거의 도착했을 때 소피가 말했다. “I think I’m a lesbian.”

소피는 아무한테도 말한 적이 없다고 했다. 나에게는 마음을 놓고 얘기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직 완전히 확신이 서지 않는다고 했다. 직업 경험해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그리하여 우리는 클럽에 갈 날짜를 잡았다.

디안드라가 내게 그랬듯, 나는 소피에게 멜버른의 게이 밤문화를 소개해줬다. 피츠로이의 Thursgay를 찾아갔다. 술을 마시고 춤을 추던 우리는 다른 남녀 일행과 합류했다. 그날 밤 소피는 여자와 키스했다. 그리고 다음 날 말했다. “Yes, I am a lesbian.”


나는 여자들과의 우정이 쉬웠다. 게이들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았다. 여자들과 공유하고 공감하는 게 많았고 동질감을 느꼈다. 그리고 여자들과 어울리는 게 더 재밌었다. 여자들도 게이들을 좋아했다. 게이라고 말했을 때 여자들이 훨씬 마음을 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자기와 반대의 성인데 자기와 비슷한 데에서 오는 새로움과 편안함이 있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여자들에게 동성애 혐오가 없는 것은 아녔다. 이성애자 여자들은 게이 남자들이 편하고 좋아서 스스로를 진보적이라 생각하면서도 레즈비언이라면 질색하는 이면을 보이기도 했다. 그런 사람들을 종종 보아왔다. 내가 게이라고 말했을 때 게이 친구는 처음이라며 클럽에 데리고 가달라고 유난을 떠는 사람들이었다. 여자들은 완벽한 몸매의 잘생긴 남자들 틈에 껴서 만지고 부대끼며 춤추는 자신을 떠올리는 모양이었다. 그런 사람들에게 클럽에는 레즈비언도 많다고 하면 이런 반응을 보이며 태도가 돌변하곤 했다. “What if they hit on me?”

이게 이성애자들의 걱정이었다. 동성이 자기에게 관심을 보일까 봐. 자기도 게이 혹은 레즈비언으로 볼까 봐 두려워했다. 자기의 깨끗한 성 정체성에 오물이 튈까 봐.

주위에 여자 친구들 뿐인 나에게도 이성애자 남자 친구가 한 명이 있었다. 세바스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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