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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훈 Sep 18. 2022

세바스찬과 나는 룸메이트가 됐다.

우리를 커플로 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세바스찬과 나는 룸메이트가 되었다. 동거하던 여자 친구와 헤어지며 세바스찬은 내게 같이 집을 알아보지 않겠냐고 물었다. 여섯 명이 복작 거리며 살던 낡은 집이 나도 싫던 참이었다. 우리는 풋츠크레이에서 방 두 개 짜리 집을 찾았다. 가구가 들여있지 않아 휑한 곳이었다. 우리는 중고로 침대, 소파, 냉장고를 사서 삭막한 공간을 채웠다. 식기는 모두 K마트에서 샀다. 냉장고는 곧 망가져서 냉동만 되고 냉장실은 전혀 돌아가지 않았다. 그 상태로 1년을 살았다.

동거를 시작하고부터 우린 사무실도 같이 갔고, 공부도 같이 했고, 헬스장에서 운동도 같이 했다. 주말엔 강변을 따라 뛰었고 예쁜 카페에 가서 브런치를 먹었고 쇼핑몰에 가서 카푸치노를 마시며 옷 구경을 했다. 어딜 가든 우린 둘이 같이 나타났다. 친구들도 그런 우릴 보는 게 익숙해졌다. 나 혼자 다니면 세바스찬은 어딨냐고 항상 물었다.

세바스찬은 전 여자 친구와 헤어지고 새 짝을 찾기 시작했다. 세바스찬은 연애를 하지 않는 순간이 없는 종류의 사람이었다. 언제나 곁을 함께 할 사람을 원했고, 단 한 사람만을 원했다. 그 사람과 정착하는 게 그가 원하는 삶이었다. 세바스찬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을 만났다. 데이트가 있을 때마다 그는 내게 후기를 들려줬다. 말은 주로 세바스찬이 하고 나는 잠자코 들었다. 그게 우리의 관계였다. 그러다 가끔씩 내게도 만나는 사람이 있냐 물을 때가 있었다. 그럼 나는 얼버무리기만 했다. 세바스찬에겐 아직 아웃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커밍아웃이란 살면서 한 번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었다. 가족이나 친한 친구들 앞에서 하는 대대적 커밍아웃도 있지만, 처음 만나는 사람마다 나는 남자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알려 줘야 하는 소소한 커밍아웃도 있었다. 누군가 내게 여자 친구가 있냐고 물을 때, 여자에 대한 성적 농담을 할 때, 동성애를 조롱하는 농담을 할 때 나는 말하고 싶은 욕구를 느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한 번도 쉬웠던 적이 없었다. 그저 상대방이 말을 그만두길 속으로 빌뿐이었다. 못 들은 척을 하거나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동성애자라는 것을 온 세상에 한 번 공표한 것으로 끝나면 좋겠지만 사람들은 모두를 당연히 이성애자라고 여기는 법이었다.

세바스찬에게는 죄책감이 들었다. 단짝 친구라 해놓고, 또 한집에 살게까지 된 사이에 나의 큰 한 부분을 감추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걸 계속 숨기는 한 단단한 마음의 벽을 쌓아두고 있는 셈이었다. 그와 속 편히 지내고 싶었다. 데이트 애기를 또 꺼낼까 봐 조마조마하고 싶지 않았다. 세바스찬에게도 알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세바스찬과 집에서 같이 저녁을 먹기로 해놓고 내가 갑자기 취소를 한 날이 있었다. 이유는 말하지 않았다. 남자를 만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집에 돌아오니 세바스찬이 방에서 나왔다. 갑자기 무슨 일이었냐고 물었다. 거짓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하기도 싫었다. 그래서 어렵게 입을 뗐다. “I was… having a date.”

“Really? With who? That quick?”

“Yes. There is something you should know about me.”

“Okay.”

“I was having a date with a guy.”

“Okay.”

“I didn’t want to lie to you, but didn’t know how to say it.”

“That’s okay. You should never feel like hiding such a thing from me.”

세바스찬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가 무슨 걱정을 하고 있었을까? 세바스찬은 진짜 친구였다. 싹 돌변하며 인연을 끊거나 같이 못 살겠다고 할 인물이 아니었다.

그래도 한 가닥 두려움은 떨칠 수 없었던 것이다. 깊은 속내는 모르는 거니까. 동성애를 혐오하지 않지만 주변 사람이 그런 건 인정하지 못한다는 위선자일 수도 있었다.


가구라고는 플라스틱 테이블과 2인용 소파가 다였던 거실. 학교 독서실을 가는 세바스찬.

이상적인 세상이라면 커밍아웃이란 걸 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성 정체성과 지향에 상관없이 모두가 모두를 평등하게 대하고 혐오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이성애자 남자들, 혹은 종교심이 강하거나 보수적인 사람들 앞에서 말을 조심하는 법을 배웠다. 연애나 결혼 얘기가 나오면 내게 질문이 돌아올까 봐 조마조마했다. 친척들이 언제나 물었다. 없다고 대답하면 왜 없냐고 물었다. ‘바빠서요'라거나 ‘잘 모르겠어요'라고 뻔한 말을 해야 했다. 나는 바쁘지도 않았고 모르지도 않았다.

세바스찬이 내게 만나는 사람이 있냐고 물었을 땐 꼭 여자를 말하던 게 아닐 수도 있었다. 상관없으니 내가 맘 편히 터놓길 바라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그에게 게이 친구는 내가 처음이 아니었다. 로레알에서 일했을 땐 그가 거의 유일한 이성애자 남자였다고 했다. 오히려 게이들이 더 익숙하다고 했다. 세바스찬은 용모도 철저하게 가꾸었고 옷 입기도 좋아해서 가끔 게이보다 더 게이 같기도 했다. 쇼핑은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여가활동이었다. 우리의 휴일마다 쇼핑몰을 갔다. 옷가게에 가면 직원들은 늘 세바스찬의 스타일을 칭찬하며 말을 붙였다. 과도한 친절로 접근하는 게 이곳 점원들 정서기도 했지만 세바스찬에겐 유달리 말을 거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도 그런 관심을 즐겼다.

세바스찬도 자기가 어떻게 보이는지 알고 있었다. 외출하기 전엔 얼굴과 머리를 완벽히 정리해야 하고 티셔츠 하나 허투루 입는 법이 없던 그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꾸미기가 과하다는 말을 들었다. 차림에 조금 공들이는 남자에게 으레 던져지는 비난이었다. 외출하기 전에 ‘빨리 해라. 늦겠다'며 재촉해야 하는 건 나였다. 그러나 사람들이 뭐라든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구시대적 남자다움에 대한 집착을 오히려 비웃었다. 호주 남정네들의 보드 반바지와 플립플롭 패션 테러에 탄식할지언정 전형적 남자가 되려고 자신을 바꾸는 일은 없었다.


쇼핑만큼이나 우리가 좋아하는 건 무도회 Ball 였다. 호주에서는 무도회에 가는 것이 큰 문화였다. 기말마다 열리는 학교 무도회는 학생회가 협업하는 행사였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공짜 초대장을 받았다. 외국인학생회가 여는 무도회도 있었고 심지어는 다른 학교 무도회까지 초대를 받아 가기도 했다. 발 넓은 세바스찬 덕이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멜버른 대학교의 무도회였는데 돈 많은 명문대답게 고풍스러운 건물을 어둑하고 화려하게 꾸민 게 꼭 호그와트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무도회 찾아다니기 좋아했던 이유는 정장을 차려입을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었다. 즉 쇼핑할 핑계도 됐다. 나는 탑맨에서 세일로 산 남색과 회색의 정장을 번갈아 입으며 셔츠나 타이 정도만 샀지만 세바스찬은 매번 새 옷을 입길 고집했다. 똑같은 옷으로 남들에게 보이거나 사진이 찍히는 걸 기어코 거부했다. 거기에 구두, 양말, 행커치프 등 각종 액세서리까지 맞췄다. 나는 까다로운 세바스찬을 몇 시간이고 쫓아다니며 쇼핑을 했다. 세바스찬은 점원들과 대화하기 좋아하는 희귀한 사례였다. 오늘 무슨 일로 쇼핑을 나왔고 무엇을 찾느냐는 점원들과 세바스찬은 기꺼이 대화를 이어나갔다.

세바스찬은 멋지게 빼입고 우아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무도회들을 사랑했다. 하얀 식탁보를 덮은 테이블에 앉아 코스 요리를 먹고 끝없이 채워지는 술을 마시면 학생 신분 주제에 비싼 기분이 났다. 행사 끝에는 언제나 춤이 있었다. 배가 부르고 기분 좋게 취했을 때 음악이 나오면 나는 댄스 플로어에 달려 나갈 수밖에 없었다. 말쑥하게 차려입고 춤판을 벌이는 것은 클럽과는 다른 특별한 느낌이었다. 더 성숙하고 섹시한 데가 있었다. 한창 춤을 추고 나면 무도회는 어느새 끝이었지만 언제나 클럽으로 자리를 옮겨 파티를 계속하는 게 관례였다. 어쩔 땐 미리 대여를 해놓은 파티 버스를 타고 장소를 옮겼는데 조명이 빛나고 음악이 터져 나오는 그 안이 차라리 더 재밌기도 했다.

세바스찬과 한 몸처럼 움직였으니 우리를 커플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 소리가 나는 뜻밖이기도 하면서 재밌었다. 우리는 친구사이, 룸메이트 사이에 당연히 하는 일들이라 여겼지만 바깥의 시선으로는 달리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전혀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소리를 듣는다고 우리 사이가 어색해지거나 남들을 의식하게 되는 일은 없었다. 우리 둘 다 멜버른의 독신이었고 친구가 필요했다. 서로의 짝이 생길 때까지 우린 브런치를 먹고, 커피를 마시고, 파티에 동행하는 파트너가 되어 주었다.


빅토리아 대 100주년 기념 무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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