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은 사춘기 소녀에게 잔인한 법인가보다.
금사빠.
그래, 나는 금사빠였나보다.
작년의 그보다
키도 더 크고,
눈 더 더 크고,
머리도 더 크고,
공부도 더 잘하는,
은테 안경의 그가 우리 반에 있었다.
사춘기의 사랑은 그렇게 쉽게 움직이고 있었다.
담임선생님은 남학생은 남학생끼리, 여학생은 여학생끼리 짝을 지어주었다.
그런데!
우리 반은 남자도 홀수, 여자도 홀수가 아닌가?
여자 중 가장 키가 컸던 나는,
남자아이와 짝이 되었다.
각각 혼자 앉을 책상을 놓을 공간이 교실에는 없었다.
나는 그렇게,
은테 안경의 그와 짝이 되었다.
"oo아~작년에는 안 그러더니 올해 왜 이렇게 떠드냐?
짝꿍은 보지도 않는데 왜 이렇게 짝꿍한테 말을 거는 거야?"
국어 선생님이 수업시간 중간에 툭, 그에게 말을 건넨다.
그의 얼굴은 빨개진다.
나와 그는 같이 떠들고 있었지만
나는 선생님을 바라보며
복화술 마냥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반면 순진하기 그지없는
전형적인 모범생인 그는,
대화는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고 하는 것이 예의라도 되는 듯
나를 보고 이야기를 건네다가 딱 걸리고 만 것이다.
"왜 나만 걸리는 거야!"
"그러니까 너도 앞을 보고 얘기하라니까"
"그건 대화가 아니잖아"
"계속 그러면 걸릴 수밖에 없다니까!"
나는 속으로 내심 웃고 있었다.
나의 서글펐던 짝사랑 시절은 끝났구나!
올레!
"국사 책 줘봐"
"국사 책은 왜"
"나 요즘 듣는 노래 있는데 가사 써줄게"
"... 그래"
그날, 집으로 돌아가 방 안에 앉아서
그가 써준 팝송의 가사를 읽고 또 읽었다.
이건 무슨 뜻일까.
이 안에 나에 대한 마음이 들어있는 걸까.
나의 상상은 부풀고 또 부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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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소문 들었어?"
"무슨 소문?"
"네가 작년에 좋아했던 걔 있잖아.
걔가 초등학교 때 좋아했다던 첫사랑, 생각나?"
"응, 그 얘기 생각나지. 근데 갑자기 그 얘기는 왜 하는 거야?"
"걔가 우리 학교로 전학 온대.
중학교 올라가면서 이사해서 다른 동네로 갔었는데
요번에 예고 시험 때문에 다시 이쪽 동네로 이사온다더라고.
그래서 우리 학교로 전학 올 거래."
"아... 그래?"
별 감흥은 없었다.
이미 나에겐 새로운 은테 안경의 그가 있었고
우린 쌍방인 거 같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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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닮았어!"
"응?"
"오늘 전학 온 애! 나 방금 교무실에서 봤는데 너인 줄 알았다니까?!"
그리고 열리는 교실문.
담임선생님과 함께 들어온
새롭지만 익숙한 느낌의 여자아이.
그 아이는,
우리 반으로 전학을 왔다.
그리고
나는,
그의 눈빛이 새롭게 빛나는 것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