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짐에는 이유가 있다.
"아니 이게 도대체 뭐야? 웬 편지가 이렇게 많아?"
집에 들어오는 엄마의 손에는 편지가 한 움큼 들려있다.
"편지? 뭐가 왔길래?"
나는 무심히 대답하며 엄마 곁으로 다가선다.
그리고 우편물을 살핀다.
단정하고 깨끗한 글씨체.
그의 편지이다.
아니, 왜?
이 편지들은 대체 뭐지?
'나는 잘 지내고 있어. 보고 싶다.
매일 편지를 쓰는 것을 보고 주변 훈련병들이 놀려. 그래도 난 이 시간이 좋아. 보고 싶어.
동생한테 편지가 왔어. 너에게 주소를 알려줬다는데 편지가 없어서 궁금해. 바빠?
내 편지 못 받았어? 계속 답장이 없으니까 불안해.
답장이 오지 않으니 동기들이 네가 도망간 거라는데... 난 그건 아닐 거 같아. 무슨 일이야? 걱정돼.'
10여 통이 넘는 편지들에는
걱정과 불안, 그리움과 사랑 등
수많은 감정들이 펼쳐져있었다.
그가 훈련을 마치고 나오는 날까지는 이제 약 3일의 시간이 남았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편지가 왔다.
1,2통이 아닌 예닐곱 통의 편지가...
'편지가 가지 않은 걸까? 그래도 동생이 주소를 알려줬다고 했는데... 왜 편지가 없는 거야? 무슨 일이야?
불안하고 걱정돼서 머릿속이 복잡해. 어떻게 된 거야?
이제 곧 나가니까, 나가자마자 전화할게. 갈게. 마음이 변한 건... 아니지?'
편지의 내용은 점점 걱정으로 변하고 있었다.
날짜를 살펴보니 그는 훈련 초기부터 편지를 꾸준히 써서 보내고 있었던 것 같았다.
나에게 답장이 없는 게 이상하다고 여긴 다음부터는 하루에 2통 이상 쓴 날도 있는 거 같았다.
이상한 일이다.
매일 편지를 썼는데 어떻게 그동안 한 통도 안 오다가
4주의 훈련이 끝나는 마지막 주가 되어서야,
그 편지들이 한 번에 파도치듯 밀려올 수가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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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고 생각을 한다.
이미 모든 일은 벌어졌어.
나는 그 애의 마음을 믿지 못했고, 서운했고, 다시 만나지 않기로 결심했어.
이제 와서,
이제야 편지가 왔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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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서 전화가 온다.
호흡을 가다듬는다.
통화 버튼을 누른다.
그리고 그가 무슨 말을 꺼낼 새도 없이
나는 말한다.
"우리 헤어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