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대선이 100일 남았다. 언론이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내놓는다. 대선 후보의 선거전이 본격화되고 있다. 노랑 풍선을 띄우고 진취적인 비전을 제시하며 16대 대선에 뛰어들었던 노짱이 생각나는 날이다. 봉하마을로 가보자.
묘역에 들어가기 전 입구의 작은 수반에서 마음을 가다듬는다.
남방식 고인돌 모양의 낮은 너럭바위 밑에 노 대통령이 안장되었다. 참여정부 5년의 기록과 추모영상을 담은 DVD도 함께 있다. 뒤편에 묘역과 자연을 구분하는 곡장이 세워져 있다.
노무현 대통령 묘역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던 노무현 대통령이 잠든 너럭바위 앞의 헌화대에 서서 그를 추모한다.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노 대통령의 유지를 받들어 '대통령 노무현' 여섯 자만 새긴 너럭바위가 봉화산 아래 놓여 있다. 제단 앞에 펼쳐진 박석 길의 추모 글을 하나하나 읽어 본다.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그립고 그립다.'
'영원히 당신을 기억할 것입니다.'
'당신이 계실 때 참 행복했습니다.'
임옥상, <대지의 아들 노무현>
봉화산 사자바위 아래 우뚝 솟은 <대지의 아들 노무현>.
황토의 질감과 색깔을 살린 무쇠 주물로 제작한 민중미술가 임옥상의 작품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땅의 아들'입니다. 그를 처음 보았을 때도 그랬고, 대통령이 되었을 때도 그랬고, 봉하에 내려와 만났을 때도 그러했습니다. 원형으로 태어나 원형으로 살고 원형으로 돌아간 사람, 그는 흙이고 땅이고 대지입니다." _ 임옥상
묘역 옆, 휴식과 행사를 할 수 있는 넓은 잔디 광장이 있다. 노 대통령이 산책을 하던 길이다. 광장 양옆으로 봉화산 오르는 길이 나 있다.
도무현 대통령 생가
노무현 대통령 생가. 태어나 유년기를 보낸 집이다. 귀향 당시는 예전 모습과 많이 달랐으나 기억을 되살려 복원하였다. 생가 앞의 감나무에 까치밥이 남겨져 있다. 초겨울임을 실감케 한다.
봉하 들판 쪽으로 아이들을 위한 자연학습공간인 생태연못이 있다. 봉하마을의 건강하고 풍부한 생태환경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채원과 온실, 습지 수생식물원, 체험학습장 등이 있다.
잔디광장 옆에 노 대통령의 정치역정을 담은 화보가 게시되어 있다. 뉴스를 통해서 수십 번 보고 들은 얘기를 다시 꼼꼼히 읽는다.
봉하에서 태어나 봉하에서 자라고 봉하에 묻힌 노무현은 16대 대통령에 취임하여 권력을 국민에게 돌려주고 탈권위, 참여, 자율, 분권의 리더십으로 새로운 국가관을 정립한다. 국가 전반을 개혁하였다.
6월 항쟁 때였다. 가톨릭센터 입구 사거리에서 그를 보았다. 길바닥에 연좌하여 백골단과 마주 하고 있었다. "비겁하게 살지 않겠다", "시민으로서의 정치적 권리는 보장되어야 한다"고 외치던 시민 노무현을 처음으로 가까이서 보았다.
국회의원이 되어 첫 대정부 질의에서 사자후를 토할 때 우리는 환호했다.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는 더불어 사는 사람 모두 먹는 거, 입는 거 이런 걱정 좀 안 하고, 더럽고 아니꼬운 꼬라지 좀 안 보고, 그래서 하루하루가 좀 신명 나게 이어지는 그런 세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그런 세상이 좀 지나친 욕심이라면 적어도 살기가 힘이 들어서 아니면 분하고 서러워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그런 일이 좀 없는, 이런 것이라 생각합니다."
3당 합당에 반대하여 "이의 있습니다. 반대토론해야 합니다." 하며 고난의 길을 선택했을 때, "농부가 밭을 탓할 수는 없겠지요." 하며 부산에 출마하여 번번이 낙선할 때 우리는 그를 열렬히 지지했다.
대통령이 된 후, "저는 많이 부족한 사람입니다. 제가 대통령이 된 것은 제가 잘 나서 된 것이 아닙니다. 새로운 정치, 새로운 시대를 요구하는 국민의 여망과 시대의 물결이 저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자신의 신념을 담담히 말한다. 국민을 설득하려 했지만 뿌리 깊은 기득권 세력은 집요하게 정권을 흔들었다.
그들 지지했던 세력도 한미 FTA, 이라크 파병, NEIS파동 등으로 정권을 비판하기 시작한다. 탄핵 역풍으로 총선을 이기지만, 임기 후반기 내내 어려움을 겪으며 정권을 야당에 넘겨준다.
봉하 들판
노 대통령은 나서 자란 봉하마을에 지붕 낮은 집을 짓고 귀향한다. 이 집에서 생태계가 살아있는 아름답고 잘 사는 농촌을 만들 꿈을 실현하고 진보적 민주주의를 연구하는 새로운 삶을 모색한다. 고향으로 돌아오자 전국에서 관광차가 봉하로 몰려온다. 국민과의 직접 소통하는 모습이 언론에 보도되니 더욱 많은 사람들이 대통령을 만나려 온다.
"일할 때는 짜다리 욕을 해 쌌더만, 노니 이젠 좋대요"하던 노 대통령의 정감 있는 목소리가 귓전에 들리는 듯하다.
봉하를 찾는 국민들과 직접 소통하였다.
마을 농민들과 함께 살면서 친환경 오리농법으로 벼농사를 짓는다. 봉화산을 가꾸고, 화포천을 정비하는 일에 전념한다. 농촌마을의 전통 가치를 살리고 마을의 풍요로움과 생산공간의 친환경적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사업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를 때쯤 우리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한다.
비가 억수같이 퍼붓던 날, 우리는 지켜드리지 못해서 미안하다며 오열한다. 그는 국민들의 슬픔 속에 너럭바위 밑에 묻혔지만 '노무현 정신'은 촛불로 부활한다. 문재인 정권이 탄생한다. 다시는 대통령을 허무하게 보내고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각자 다짐한다.
다시는 대통령을 허무하게 보내고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다짐한다.
겨울비가 내린다.
지금의 대선판이 어째 17대 대선전의 모습과 흡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정권교체 여론이 높단다. 검찰의 칼날이 청와대를 겨냥하는 듯 하기도 한다. 아직 개혁의 길은 요원하다. 여기서 주저 앉으면 또 촛불 이전으로 돌아간다. 노대통령을 잃고 얼마나 비통했던가. 지키기 못한 죄책감에 얼마나 괴로워했던가. 문대통령을 대선판으로 떠밀 때, 다시는 그런 우를 되풀이 하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하지 않았던가. 잊지 말자. 혹 마음이 흔들리는 사람이 있으면 봉하마을을 찾아보자.
신축 중인 시민문화체험전시관
내년 5월 시민문화체험전시관이 개관되고, 생가 앞 광장이 열린 공간으로 정비되면 다시 즐거운 마음으로 봉하마을을 찾아봤으면 한다. (2021. 11.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