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공정과 정의를 생각한다.
“재판장님 여기 앉아 있는 피고인의 얼굴을 한번 보십시오. 피고인은 정말 훌륭하고 헌신적인 교사입니다. 누구보다도 학생을 사랑하고, 잘 가르치고 싶어 하는 교사입니다.”
변호인이 항소심 최후 변론을 하고 있다. 지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학교법인 ○○학회는 1975년 회계부정 등으로 이사장이 구속되고 이사 전원이 해임된다. 관선이사가 선임되어 학교 운영이 다소 나아진 듯했지만 교육주체의 각성에 의한 개혁이 아니었으므로 그 결과는 참담했다. 억눌려 있던 교사들의 탈선은 극에 달한다. 1980년, 불운(?)의 ○○학회에게 5공화국이라는 구세주가 등장하여 前 이사장이 복귀한다. ○○공고는 다시 비리의 복마전이 된다. 교사들과 학생들 사이에 불신은 깊어 갔다. 재단은 비리를 은폐하기 위해 교권을 침해하고, 교권 침해는 학습권 탄압으로 이어진다.
참다못한 학생들이 1987년 3월 집단 항의를 한다. “인간적인 대우를 해 달라”라는 소박한 요구를 했다. 그 결과, 학생만 크게 다친다. 교사는 학생이 당하는 고통을 무기력하게 쳐다볼 뿐이었다.
교사는 각성한다. 그런 학생들의 희생과 재단의 비리를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1988년 10월 평교사협의회를 결성했다. 교사의 양심을 되찾고 싶었다. 학생 앞에 떳떳이 서고 싶었다. 평교협을 분쇄하려는 학교 당국과 분쟁이 생기자 교육청(당시 시교육위원회)은 4일간의 특별감사를 결정한다. 이사장은 교장 복수추천제까지 덧붙여 제시하며 학교 운영의 정상화를 약속한다. 감사가 흐지부지 끝나고 합의는 백지화된다.
1989년 개학 첫날 신축건물이 붕괴되어 공부할 교실이 없어진다. 학생들이 문제 해결을 호소하며 교육청을 찾아갔다.
우여곡절 끝에 교육청이 재 감사를 결정하자 학교 측은 돌연 휴업령을 내린다. 휴업령이 철회되자 행정직원이 출근을 거부한다. 조직적인 학교 측의 감사 거부에 학부모들이 반발하여 교육감 면담을 요청한다. 교육청은 이 핑계 저 핑계로 시간을 끌고 학부모들은 교육청에서 하루 밤을 새우며 교육감을 기다린다. 이 날의 일로 교사들이 법정에 서게 된다.
한편 정부여당은 여소야대의 수세 국면을 전환하기 위해 문익환 목사 방북, 동의대 사건을 계기로 공안정국을 조성하고 민주화운동에 대한 대 탄압을 시작한다.
부산시 교육청은 ○○공고 교사 9명을 고발하고, 공안합수부는 긴급 검거령을 내린다. 그런 다음 재 감사 결과를 발표한다. 축소된 결과지만 의혹이 모두 사실로 밝혀졌다.
변호인의 변론이 이어진다.
“수많은 교사뿐 아니라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무엇이 진실인지 아는 학생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이 사건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부디 사건을 전체적으로 살펴보시고 '공정과 정의'가 무엇인지······”
하지만 유죄가 확정되고 교단을 떠난다.
3년 후, 2통의 편지를 받는다.
“선생님, 어떻게 지내고 계십니까. 해직교사 복직 소식이 온 나라를 들뜨게 할 때 선생님께서는 얼마나 쓸쓸해하셨습니까. 열악한 조건에서 더욱 치열하게 활동하다 해직된 선생님들에 대한 복직조치가 나오지 않은 것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로 시작되는 이수호 해직교사원상복직추위원장의 편지다.
또 다른 한 통은 “본 학회는 사단법인 한국사립중·고등학교법인협의회의 ‘우리 사학은 전교조 관련 해직교원을 어떠한 명분으로도 일체 복직시킬 수 없음을 분명히 천명한다’는 총회 결의를 존중함을 알려드립니다.”는 ○○학회의 (복직 청원에 대한) 매우 정중한(?) 회신이다.
10년 후, 계룡산 동학사에서 열린 전국복직교사연수회에서 복직교사 199명이 결의문을 읽는다.
“우리는 해냈다. 길게는 20년의 세월을 넘어 우리는 드디어 이루어냈다. 오랫동안 (앞이 보이지 않은) 절망과 (잔인하리만치 신기루처럼 다가섰다가 멀어지던) 희망의 그 가파른 고개를 수도 없이 오르내리며 우리는 지금 여기까지 온 것이다. 그 고단한 여정 끝에 우리가 제대로 온 것임을, 그토록 처절하게 움켜쥐고 있었던 것들이 결국 옳았음을 확인한 오늘 다 함께 감격의 눈물을 흥건하도록 흘려도 좋으리라.······”
험난한 산등성이를 하나 넘었을 뿐이다. 교육을 병들게 하는 수많은 모순을 혁파하고 교육민주화를 완성하는 더 힘겨운 일이 우리의 몫임을 다짐한다.
다시 20여 년 후, 해직교사를 특별채용으로 복직시킨 조희연 교육감이 직권남용 혐의로 입건된다. 그것도 천신만고 끝에 출범한 공수처의 1호 사건이란다. 개혁의 물길을 되돌리려는 세력이 여기저기서 '공정과 정의'를 외치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교육은 학교에서, 장사는 시장에서’를 외치던 초롱초롱한 눈망울의 아이들이 이제 50줄에 들어선 중년이 되었다. 이들이 당시의 ○○공고 교육민주화운동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또 지금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지 묻기가 조심스러운 것이 나의 기우였으면. (2021. 8.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