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덕도 대항동 외양포 마을을 돌아 국수봉을 오른다. 말길, 외양포 포병사령부 탄약고, 관측소, 산악 보루 등 일제 군사시설물이 보존되어 있다. 외양포 마을 앞으로 범여섬, 대죽도, 저도, 거제도가 보인다. 가덕 휴게소에서 대죽도 사이는 가덕 해저터널로 연결되고 대죽도와 저도, 거제도 구간은 거가대교가 놓여 있다. 이 길이 거가대로다. 거가대로의 가덕 해저터널은 3.7㎞의 침매터널로 국내 최초이면서 동시에 세계 최대 수심 (48m), 최장 길이로 건설되었다. 능선에 올라 국수봉을 넘어 새바지항으로 가면서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해저터널에 대해 생각한다.
동양 최초는 '통영 해저터널', 원래 이름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상징하는 '태합굴'
세계 최초의 해저터널은 1910년 미국 뉴욕 맨해튼과 동쪽의 롱아일랜드 사이의 해협(이스트강 아래)에 건설된 '이스트강 터널'이다.
동양 최초 해저터널은 통영반도와 미륵도 사이의 협곡을 연결하는 통영 해저터널(483m)이다. 1932년 일제강점기 일본인에 의해 건설되었고, 2005년 9월 14일 등록문화재 제201호로 지정되었다. 이 터널이 건설된 미륵도와 통영반도 사이에 좁게 연결되어 있는 곳을 착량지라 한다. ‘착량’이란 ‘파서 다리를 만들다’는 뜻이다. 당포해전 당시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수군에 참패를 당한 일본 수군이 도주하다가 협곡에 이르자 돌과 흙을 파서 다리를 만들어 도망한 곳이다.
그 뒤편 착량지가 내려다 보이는 곳에 착량묘(鑿梁廟)가 있다. 임진왜란 때 큰 공을 세운 이순신 장군의 위패와 영정을 모시고 있는 사당이다. 터널을 건설한 일제 강점기 일본인들은 조상들의 시체가 있던 곳의 위를 배가 지나거나 다리를 놓을 수 없다 하여 해저터널을 만들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원래 이름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가리키는 의미의 '태합굴'이었다.
채널터널 개통 후, 프랑스 기점 '칼레' 쇠퇴 일로
세계 최장 해저터널은 1988년 개통한 일본의 세이칸 터널(53.85㎞)이다. 해저구간만 보면 1994년 5월에 개통된 채널터널이 가장 길다. 영국 포크스턴과 프랑스 칼레를 연결하는 길이(50.45㎞)의 터널로 세이칸 터널보다 짧지만 해저구간(37.9㎞)은 더 길다. 초특급열차 유로스타가 18조 원의 건설비를 투입한 이 터널을 통해 영국의 런던과 프랑스의 파리를 최단 2시간 15분에 잇는다.
프랑스 쪽 기점인 칼레는 도버해협의 최단거리(34km)에 위치해 있는 지리적 이점 때문에 중세부터 영국으로 가는 주요 항구도시였다. 그러나 채널 터널이 개통된 후 항구의 기능을 상실하고 인구도 (1999년 125,584명에서 2020년 68,463명으로) 점차 줄어들어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
한일 해저터널 공약 논란
최근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부산을 방문해 가덕 신공항에 대해 찬성 발언을 하면서, 2003년과 2011년 두 차례 ‘타당성과 경제성이 없다’고 결론 내린 적이 있는 한일 해저터널을 다시 여론의 중심으로 끌어올렸다.
그럼 한일 해저터널은 어떻게 검토되었던지 살펴보자. 부산 연구원이 2009년 제시한 가덕도-후쿠오카(안)는 길이 222㎞, 사업비는 92조 원으로 추산했다. 일본이 제시한 가라쓰-부산(안)은 길이 288㎞, 사업비는 100조 원으로 추산했다. 이는 본선 한 개와 대피터널을 만든다는 조건으로 계산한 것이며, 채널터널과 같이 본선 두 개와 대피터널 한 개로 할 경우 사업비는 배로 늘어난다. 현재 기준으로 환산하면 사업비가 더 크게 증가할 것이다.
부산의 걱정
인천에 밀려 제2도시의 위치를 내놓아야 할 위기에 몰린 부산은 가덕 신공항과 유라시아 대륙철도를 건설해 부산항을 세계적 복합물류 산업기지로 발전시키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 부산의 시장 보궐선거의 공약으로 부산이 제2의 칼레가 될 수도 있는 한일 해저터널을 꺼내 든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유라시아 대륙철도의 시작과 종착역이 될 꿈을 꾸고 있는 부산이 한일 해저터널이 개통되면 그저 철도가 지나가는 경유지에 지나지 않게 되어 중요도가 한층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부산의 지정학적 위상을 저하시키고 일본에 대비한 비교우위를 약화시킬 뿐이다."라는 여당 대변인의 논평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정치인은 보다 객관적이고 냉철하게 경제성과 실효성 등을 제대로 짚어보고 공약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한편 일본 측의 기점인 가라쓰는 임진왜란 당시 왜군의 조선 출병 기지다. 그곳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아득한 바다를 노려보다’란 글이 새겨진 비석이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