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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봄 Oct 29. 2022

비교는 당연한 일이었다

    친척언니는 외동이던 내게 단비같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우린 정반대의 사람이었다. 나는 숫기도, 애교도 없는 사람이지만 언니는 친화력도 애교도 많은 사람이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항상 넌 왜 이렇게 숫기가 없냐며 ㅁㅁ이처럼 애교 좀 부려보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그들은 지금 기억도 못하겠지만 나는 뇌리에 그대로 박혀있다. 신기한 건 나에게만 한정되는 말이었다. 친척오빠들한텐 아무 말도 없었다. ‘너는 여자애가 ㅡ.’로 시작하는 말은 ‘내가 이상한 건가?’라는 생각까지 들게 만들었다. 친척들과의 모임이 좋았지만 싫었다. 비교당할 것이 뻔했기 때문에 가기 전부터 짜증이 났다.      


    크고 나서는 다른 집이랑 비교하기 시작했다. 누구네 누구는 뭘 한다더라, 어디 대학을 갔다더라. 그 말을 해서 얻는 게 뭘까. 내 짜증? 그런 말을 들으면 더 잘할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이제 막 공부를 시작하려고 책을 피는 순간 ‘공부 좀 해라.’ 소릴 들으면 하려던 것도 하기 싫어지듯이 반발심만 일어난다.      


    비교하자면 나도 할 수 있다. 누구네 아빠는 자취하라고 전세금도 내준다더라, 대학 붙으니까 차도 뽑아주더라. 나도 다른 집 부모들이 부러웠던 적이 있다. 친구들이 태어나서부터 주어진 것처럼 아파트에 살 때도, '엄카(엄마 카드)', '아카(아빠 카드)'라며 당연하게 부모님 카드를 쓸 때에도 나는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나라고 못해서 안하는 게 아니라, 하면 안되니까. 하면 상처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거기서 내가 한마디 더 보태면 싸우게 되니까 참는 것이다. 욱해서 나온 한마디가 얼마나 오랫동안 가슴에 박히는지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금쪽같은 내새끼> 방송을 통해 위로받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상처를 덮어둔 게 아니라 밀어뒀던 거다. 모두에게 그대로 남아있다. 어린 시절 채 티 내지 못했던 것을 이제야 마주하는 것이다.      


    당신이 부모의 역할이 처음이라면 나또한 자식의 역할이 처음이다. 자식의 입장을, 나의 입장을 한번이라도 겪어본 당신들이 조금이라도 알아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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