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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봄 Oct 29. 2022

착한 아이, 덜 자란 아이, 자라지 못 한 아이

    난 자립심이 강한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어리광이 심한 편에 속한다. 그런데도 애어른처럼 행동했던 건 신경 쓰이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형편이 어렵다는 것과 ‘빚’이라는 단어를 일찍이 알았다. 하지만 입 밖으로 소리 내 불평한 적은 없다. 나까지 보태면 힘들어진다는 것을 초등학생, 여덞 살 나이에 이미 알고 있었다.      


    시력이 급격히 나빠져 안경이 필요했을 때도 돈이 많이 들까 무서워 말하지 않았다. ㅡ못했다고 하는 게 맞을까ㅡ 칠판이 흐리게 보여 수업 진도를 따라가기도 어려웠다. 선생님이 문제를 풀어보라고 부르면 앞으로 나가기 무서웠고 겁이 많은 아이가 됐다. 공부도 싫어졌다. 작은 일들이 모여 지금의 내향적인 사람이 됐다.           

    어른들이 아이에게 “일찍 철들었네.”라고 하는 말은 그만큼 아이가 눈치를 많이 보며 자랐다는 말이 된다. 옥탑에 살던 시절, 주인아주머니께서 엄마와 나를 번갈아보며 요즘 이런 애가 없다고 말씀하셨다. 그때 난 그 말이 참 대단한 칭찬처럼 느껴졌다. 착한 아이. 지금 생각해보면 어떠한 결핍을 칭찬 아닌 칭찬으로 채웠던 것일지도 모른다. 난 여유라는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다.          


    외동딸로 태어나 쭉 이렇게 살아왔다. 남들은 싸움 없이 혼자 편하게 컸겠다며 부럽다고 말한다. 그건 나를 모르는, 겪어보지 못 한 사람들의 말이다. 혼자인 만큼 전부 내가 감당해야 할 몫들이 있다. 기대거나 이야길 나눌 형제, 자매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젠 “외동이라 좋겠다.”라고 말하면 나는 그냥 웃어넘긴다. 당신들이 부러워하는 그 외동은 혼자 남을 장례식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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