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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봄 Oct 29. 2022

한국의 딸

    잠깐 일하던 회사에 아들 둘을 둔 아주머니가 있었다. 한 명은 요리사였고 한 명은 백수였다. 백수인 아들은 엄마에게 김치찌개를 해달라고 졸랐고 아주머니는 그날 밤 9시까지 나와 함께 야근하다 퇴근한 상태였다. 퇴근하고 피곤한 상태에서 밥해달란 소릴 들으면 짜증이 날 수밖에 없지 않나? 네가 해 먹으라고 했더니 “나는 못 해.”라고 했단다. 못하는 것과 안 하는 건 다르다. 와중에 요리사인 아들한테 하라니까 “쟤 해주기 싫어.”라며 방에 들어갔다고 한다.      


    이런 대화를 하던 중에 딸들은 요리한다는 말이 나왔고 직원 중 한 명이 “딸들은 알아서 하지.”라고 말했다. 나는 조용히 들으며 많은 생각을 했다.     


    딸들이 알아서 한다면 왜 알아서 하는가? 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나. 딸들은 가장 가까이에서 엄마를 본다. 

     

1. 엄마가 고생하는 게 싫어서     


2. 고생하는 모습이 짜증 나서     


3. 스스로 해야 하는 걸 알고 있어서     


4. 머리는 하지 말라고 하는데 이미 움직이고 있어서     


    엄마의 고생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는 우린 할 수밖에 없었다. 선택권이라기엔 하지 않으면 죄책감이 넘실거렸기 때문에. 아빠, 오빠, 남동생 누가 엄마를 도와줬는가. 이런 딸들에게 니넨 가족한테도 한남이라고 할 수 있냐며 물어본다. 한남이 한남이지. 더한 말도 할 수 있는데 새삼스럽다.      


    딸들이 느끼는 또 다른 종류의 죄책감이 있다. 좋은 것을 먹을 때, 볼 때 ‘엄마는 못 해봤겠지’, ‘엄마는 여행 한 번도...’와 같은 생각들. 딸들만 느낀다는 감정 말이다. 아마 대다수의 딸은 나의 말에 공감하지 않을까.     

    이 모든 것들이 쌓여 우린 엄마에게 소리 없는 말을 건넨다. 다음 생엔 내 친구로 태어나, 나 안 낳아도 되니까 엄마 혼자 살아, 아빠랑 결혼하지 마, 엄마는 어떻게 버틸 수 있었어?, 어떻게 버티고 있는 거야?. 딸은 태어나길 포기하면서도 이런 말을 하는데 남자들은 다음 생엔 우리 엄마 해달라는 말을 한다. 이 차이가 모든 것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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