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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성적인 회사원 May 08. 2023

[23] 직장 내 괴롭힘 신고 그 후...

놀랍게도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챙겨주는 동료가 있었다.

직장 내 괴롭힘 신고 후 인정을 받은 후 다음 날 출근을 했다.



오랜만에 웃으면서 회사에 출근을 하였다. 그동안 결과를 걱정하며 마음고생 하던 게 싹 해결되니 몸과 마음이 가벼웠다. 아직 3월이라 날씨는 쌀쌀하였지만, 마음은 포근하였다.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회사 생활을 열심히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회사에 도착했다. 직장 내 괴롭힘 신고가 마무리가 되니 이제 주의가 보이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회사는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고요했다. 무슨 일이 일어났고, 신고 결과가 어떠했는지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늘 하던 대로 본인의 업무를 하고 있었다. 



나의 싸움과 고통은 나와 가해자만의 것이였다. 그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하핫, 사람은 타인에게 큰 관심이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아마 직장 내 괴롭힘 조사 결과가 나온 것도 모르고 있을 수도...




신고 후 조사하는 그 한 달간, 나는 피를 말리면서 지내왔다. 내가 가진 증거가 하나도 없어, 목격자 진술로만 조사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하루하루 불안했다. 왜냐하면 '불인정' 될 경우 내가 허위신고를 한 사람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많이 신경 쓰는 나에게, 이러한 불인정되는 결과는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이 되었다. 




그래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줄 알았다. 이제 결과가 나왔고, 나는 피해자이고 상대방은 가해자이다. 결과가 나왔으니 모두 다 내 억울함을 알아줄 것이라 생각했다. '그동안 많이 힘들었겠다'라고 생각할 줄 알았다. 



나는 이제 다시 과거처럼, 동료들과 잘 지내고 일을 열심히 하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놀랍게도 아무도 신고 결과가 어찌 되었는지도 관심이 없었다. 나의 고통과 좌절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다. 나를 환영주거나 축하해주는 동료들도 없었다. 회사 사람들은 여전히 나를 떨떠름해하고, 불편해하고, 피했다. 그들은 그저 묵묵히 본인의 일을 할 뿐이었다.



내가 업무에 전혀 관여하지 못하였던 이 한 달간 회사는 잘 돌아갔다. 아무 문제 없이 말이다. 회사가 잘 돌아갔다는 사실이 뭔가 찜찜했다. 아마 나는 내가 없는 동안 무언가 문제가 터지고, 다들 힘들어하길 속으로 바랬나 보다. 그래서 이제 내가 돌아왔으니 사람들에게 내가 환영받을 것이라 생각했나 보다. 



그런데, 이 회사는 내가 없어도 잘 굴러간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지난 한 달이 꿈처럼 느껴졌다. 응급실에 실려가고, 신고를 하고, 상담을 받고, 화장실에서 울고, 공황이 오고 이러한 것들이 말이다. 그 시간, 그 감정들이 실제로 겪은 일인지도 잘 모르겠더라. 현실감이 점점 사라져 갔다.



"나는 과연 이 신고로 무엇을 원했던 것일까..."



내 억울함을 알아주길 바랐던 것 같다. 괴롭힘으로 인해 회사 생활하기가 많이 힘들었다고 이해를 받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아무도 나에게 관심이 없으니 내 바람이 헛되이 느껴졌다. 



현실감이 사라졌다. 세상이 점점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도 내 옆자리의 동료인 박 과장은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 역시 나처럼 우울제 약을 먹고 있으며, 나와 약에 관한 이야기를 종종 나누는 사람이다. 같이 우울증 약을 먹다 보니 약에 관련한 짓궂은 장난도 치고 그런다. 하루는 박 과장이 멍하니 앉아 있길래 내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오늘 좀 멍하신 거 보니 약빨이 잘 받나 보시네요? ㅋㅋ", 



박 과장이 답변했다. 

"아니에요, 어제 술을 먹어서 숙취 때문에 그래요 ㅋㅋ 숙취와 약빨 이 한 번에 오니 힘드네요ㅠ"

"헐?? 약 먹을때는 술 먹지 말라고 하지 않았어요??"

"안주만 먹으려고 했는데 잘 안되었어요.... ㅎㅎ"



이런 장난을 칠 정도로 서로 친하다. '정신과 약을 먹는다'는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기 힘든 것을 공유하다 보니 관계가 돈독해진 것 같다. 내 옆자리의 사람이 나와 비슷하게 힘든 일을 겪고 있는 박 과장이어서 다행이다. 



박 과장이 말을 걸었다.

"ㅇㅇㅇ 대리님~, 아무도 관심 없어서 좋겠어요. 저는 바빠 죽겠는데 ㅋㅋㅋ"

"그러게요 ㅋㅋㅋ 저는 할 일이 없네요"



모두가 나를 피하고, 나에게 아무도 관심이 없는 회사 안에서 이렇게 장난을 치다 보니 마음이 풀렸다. 이게 유머의 힘인가 보다. 우리 조상들이 해학과 풍자로 힘든 것을 풀었다고 하던데 그 말이 맞나 보다. 유머로 상황을 재 해석하는 힘이 내 유전자에 남이 있는 것 같다.



"그럼 이 데이터 정리 작업 좀 해줘요. 글 잘 쓰시잖아요"

"데이터 정리랑 글 쓰는 거랑은 관계없잖아요 ㅋㅋ 데이터 정리는 단순 막일인데ㅋㅋㅋ "

"아 그냥 좀 해줘요~~"

"하핫, 줘 봐요, 제가 또 단순작업 전문 아니겠어요 ㅋㅋ"



이렇게 박 과장이 틈틈이 챙겨주는 일을 하면서 회사 생활을 이어나갔다. 일을 하다보니 시간도 잘가고 다른 사람들 눈치도 안 보게 되었다. 이렇게 하루하루 시간이 흘러갔다. 



이렇게 평범하게 하루하루 흘러갔으면 좋았으련만, 그렇게 흘러가지는 않았다. 가해자가 가만히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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