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OTD? 오늘도 파자마
아기 옷장을 열면 요즘 유행이 한눈에 보인다.
리넨, 스모크 디테일, 크림 베이지, 웜핑크.
작은 사람인데도 참 예쁘게 입는다.
그런데 내 옷장을 열면?
웜핑크는커녕, 웜도 없고 핑크도 없다.
대신 늘어진 파자마, 다림질 포기한 티셔츠.
스타일은 고이 사망했고,
나는 *‘육아 생존복’*을 입고 하루하루를 버틴다.
(참고로 현직 어패럴 디자이너다. 이게 더 슬프다.)
요즘 내 옷 기준: 얼룩에 강하고, 쪼그려 앉기 쉬울 것
예전엔 옷을 입기 전에 상상부터 했다.
“이 셔츠는 주말 브런치 때 찰떡이겠는데?”
“이 샌들은 무심한 룩에 딱 어울리겠다.”
지금은 옷을 입기 전에 먼저 계산한다.
“이건 애기 침 얼마나 묻을까?”
“세탁기 돌릴 때 줄어들진 않겠지?”
“이건… 쪼그려 앉을 때 괜찮을까?”
내 쇼핑 기준은 이렇다:
얼룩 덜 타는 색 + 세탁기에 때려 넣어도 무사한 소재 =
육아에 최적화된 기능성 룩.
아기 옷에는 온갖 예쁨과 정성이 들어가지만,
내 옷은 그냥… 장비다.
생존을 위한 장비.
내 카드로 샀는데도, 아기 옷만 당당하다
아이 옷 살 땐 “이건 꼭 필요해!”
내 옷 살 땐 “이거 사도 되나…?”
자꾸만 눈치를 본다.
아기 옷장은 계절별, 월령별로 정리되어 있고,
나는 작년 티셔츠에 이유식 자국 붙이고 산다.
분명 나도 한때는
기분 따라 입을 옷을 고르고
립스틱 색 하나에 하루 텐션이 바뀌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립스틱은커녕 내 입술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겠다.
내 옷도, 내 기분도 다시 입히고 싶다
엄마도 누군가의 사람이기 전에 한 명의 사람이다.
아이 옷 사길 백 번 잘했다고 생각하지만,
내 옷장을 열었을 때 설레는 옷 한 벌 쯤은 있어야
내 하루도 덜 푸석해진다.
그래서 오늘은,
아기 옷 장바구니에 살짝—
내 것도 하나 껴넣기로 했다.
자수 박힌 린넨 원피스 하나,
딱 내 취향의 고급스러운 카디건,
그리고 새 슬립온.
살짝 끼워 넣으면,
남편도 모르게 결제될지도 모른다.
(쉿. 여보, 이건 알고도 모르는 척해줘야 되는 거야.)
아기가 귀여운 건 유전자 덕이고,
엄마가 예뻐지는 건 순전히 의지다.
육아는 많은 걸 포기하게 만들지만
그 중 단 하나,
**‘나 자신을 예뻐해 주는 일’**만큼은
포기하고 싶지 않다.
그러니까 오늘도
진심을 다해,
절박하게 다짐한다.
“제발… 나도 옷 좀 사입히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