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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세인 Feb 13. 2024

우린 왜 부끄러워해야 하는가

여섯 번째 반항

강요받는 부끄러움


미디어가 우리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되면서

조금 더 교묘하고 대담하게

 우리는 부끄러움을 강요받고 있다.

미디어 속 '웃음' 뒤에 가려진 상하관계는 분명하다.


어떤 대학이 더 잘났나에 대해 실강이하다 서울대 학생 앞에서 움추러드는 모습, 뜬금없이 상식 문제를 내는 출연진과 그걸 풀지 못해 무시당하는 다른 출연진은 웃음거리가 된다.


뚱뚱한 사람이 날씬해져서 자신을 무시했던 사람들에게 복수하는 클리셰와 여자 주인공이 안경 하나 벗고 환골탈태해 나타나는 스토리는 드라마 단골 소재다.


미디어 속 가난한 사람은 끊임없이 부끄러워한다.

좋은 옷을 입은 친구들 앞에서 변변치 않은 옷을 입어 부끄러워하고, 소위 '사자 직업'을 가진 친구들 앞에서 자신의 직업을 거짓말한다.

미디어는 우리 삶을 비추는 거울이다.


미디어라 과장된 면이 있겠지만 분명 현실에서도 우린 이런 종류의 부끄러움을 강요받는다.

좋은 대학을 가지 못하면, 상식 문제를 잘 풀지 못하면,

뚱뚱하면, 예쁘거나 잘생기지 않으면, 가난하면

부끄러워야 하는 걸까.


"부끄럽네요."


난 ‘유퀴즈 온 더 블록’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참 좋아하지만 재밌게 보다가도 마음이 불편해질 때가 있다.


 ‘H대’나 ‘Y대’ 등과 같은 수식어나 연매출 몇백억과 같은 수식어와 함께 나오는 게스트를 과하게 칭송하고 그들 앞에서 과하게 주눅 들어하는 모습을 보이는 두 엠씨의 태도 때문이다.


 특히, 그들 앞에서 '부끄럽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그때마다 난 항상   

'도대체 뭘 부끄러워하는 거지?'

'왜 저렇게까지 저들을 추앙하는 거지?'  

이런 의문이 들었다.


유퀴즈 온 더 블록뿐 아니라 다른 프로그램에서도 돈이나 학력, 외모 등으로 누군가는 권력을 가지고 누군가는 움츠러들고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연출된다.


그 상하관계를 보고 웃으며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 모습에 동조된다.

그렇게 권력 밖의 사람들은

마땅히 부끄러워야 할 존재가 되어 버린다.


부끄럽지 않을 권리


우리는 이미 이런 부끄러움에 너무 익숙해져 버렸다.

지잡대, 좋소 등의 말을 서슴없이 내뱉고

심지어 당사자들도 무시를 당연하게 생각하며 스스로를 낮잡아 부르곤 한다.


하지만 난 지금이라도

우리가 잃어버린 '부끄럽지 않을 권리'를 외치고 싶다.

부끄럽지 않아야 될 일에 대해서 부끄러움을 강요하며

진짜 부끄러워야 할 사람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걸 멈추기 위해서라도

서로의 '부끄럽지 않을 권리'를 챙겨주고 싶다.


나의 학력, 외모, 재산..

그 모든 것은 부끄럽지 않을 권리가 있다.

너의 것 또한 그러함을 안다.


겸손의 미덕을 잊자는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겸손에 조건이 필요하다면,

선택적인 겸손이 필요하다면

그 모든 건 부끄럽지 않을 권리를 통해 반항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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