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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세인 Feb 27. 2024

육각형인간과 세이노: 반항을 잃어버린 사람들

여덟 번째 반항

육각형인간


육각형아이돌, 육각형연예인..

요즘 셀럽들의 셀링 포인트는 바로 '육각형'이다.

여러 가지 특성을 비교할 때 모든 기준 축이 끝까지 꽉 차 완벽한 모습을 이루면 육각형이 된다.

그래서 모든 측면에서 약점이 없는 사람에게 '육각형인간'이라는 찬사를 보낸다.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 '개천에서 용 난다.'와 같은 고진감래 서사는 인기가 없다. 태어날 때부터 남들과 다른 주인공의 서사, 날 때부터 모든 것을 갖춘 '완성형 연예인'에게 열광한다.


한때 미국에서 유행한 ‘아무 노력 없이도 완벽한(effortlessly perfect) 사람’과 똑같다.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좋은 직업이나 높은 월급은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다. 겉으로 보기에 별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완벽한 사람을 인정하고 또 선망한다.


아무나 쉽게 가질 수 없는 것, 운명처럼 타고나는 것. 그게 바로 육각형인간의 핵심이다.


이러한 육각형인간 트렌드의 배경에는 부의 양극화에 따른 계층 고착화가 있다.


그동안 한국 사회는 '노력'이 통하는 사회였다. 노력신화는 꽤 많은 사람에게 일어났고 "모든 성패는 개인의 노력에 달렸다"를 강조하는 개인주의와 능력주의를 근간으로 많은 걸 이뤘다.


하지만, 지금의 한국 사회는 더 이상 개인의 노력만으로 성공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닿을 수 없는 수준의 부를 가진 이들이 많아졌고 노력신화에 대한 기대와 믿음도 옅어지고 있다.


그러니 '노오력해라'는 말이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은 것이다. 차라리, 아무나 될 수 없는 '육각형인간'에 대한 담을 쌓고 인정하는 것, 나와는 다른 종족이라 생각하며 선망하는 것이 '넘사벽'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새로운 생존전략이 됐다.


세이노의 가르침


'육각형인간'이라는 새로운 물결에도 여전히 '노력=성공'이라는 거대한 흐름은 건재하다.


자수성가한 60대 흙수저 출신 남성 이야기를 담은 책 '세이노의 가르침'은 지금까지 90만 권이 넘게 팔리며 작년 대형서점들에서 부동의 베스트셀러 1위였다.


부자 되는 법부터 유명한 변호사 만나는 법까지 실전 생존술을 가르쳐주는 이 책은 '노력'을 강조한다.

가난은 소수의 경우를 제외하고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니 건강을 포기해서라도 지식을 쌓고 일에 매진하라 말한다. 돈을 많이 못 버는 직업을 선택했다면 남 탓, 세상 탓하지 말라 말한다.


“건강하고 비전 없고 무능한 가난뱅이가 되기를 원하느냐”

“전쟁터에서 휴머니즘을 찾지 마라”

"용수철처럼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와 당신의 삶을 이 거친 세상에서 우뚝 홀로 세울 수 있도록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피 튀기듯 노력하라"

“이 사회의 불우한 사람들을 돕고자 사회사업학과를 선택하여 공부하였다면 나중에 월급이 적다느니, 또는 순수학문 전공자들이 취직이 안 되므로 국가적 차원의 배려가 있어야 한다느니 어쩌니 하는 말은 입도 뻥긋하지 말라는 말이다”


이러한 필터링 없는 쓴소리에 사람들은 '사이다' 같은 현실적 조언이라며 열광한다.

그 속엔 능력주의에 대한 강한 믿음, 그리고 스스로가 스스로를 책임져야 하는 각자도생 문화가 들어있다.


완전히 다른 것처럼 느껴지는 육각형인간과 세이노의 가르침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사회 구조는 바뀌지 않으니 자신의 사고방식을 바꿔서라도 살아남으려 애쓰는 모습이다.


우리 앞에 놓인 선택지는 두 가지뿐이다.

'넘사벽' 앞에서 그저 벽 뒤의 사람들을 선망하거나, 벽 뒤의 사람이 되기 위해 죽도록 노력하거나.




나는 반항한다. 고로 우리는 존재한다.
-알베르 카뮈


나 또한 능력주의와 각자도생의 그림자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여전히 그렇다.


내가 지면 상대방이 이기고, 내가 이기면 상대방이 지는 제로섬 게임 속에서 치열하게 경쟁했고 몸과 마음에 상처만 남은 채 나가떨어져 버렸다.


자의적으로 또 타의적으로 이 지독한 레이스의 열외자가 되기로 마음먹은 내가 선택한 건 '반항'이었다.


지난 7주 동안 '반항의 언어'를 연재하며 내가 내뱉은 모든 글은 살기 위해 지르는 마지막 비명 같은 것, 소화(消火)되길 거부하는 마지막 불꽃같은 것이었다.


이 글이 끝나도 나는 살아남기 위해, 내가 나로서 존재하기 위해 묵묵히 반항하며 살아갈 것이다.



Reference
 <트렌드 코리아 2024>, 김난도 외 10명
[2030 ‘내탓’ 설명서①]청년들은 매질하는 ‘세이노’에게 왜 고마워하나 - 경향신문 (kh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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