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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하지 않는 감정

그리고 무의미한 살점

by 박관민 Apr 03. 2025

손가락을 잘라버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2호선을 타며 어딘가로 향하는 길 오후 5시 즈음 노을로 인해 비친 내 썩어가는 듯하고 희고 빨가며 겉에 있는 살점이 다 뜯겨나가 날 보호해 주는 살들은 거의 떨어져 나가 있는, 속살을 내 비치는 이 손가락을 보고 손가락을 잘라버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10년 넘게 가지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를 언제나 해결할 수 있을 거라는 헛된 믿음과 평생을 짊어지고 걸어야 한다는 쓸데없는 책임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건 

고됨을 넘어서 잔인하지만 깊게 받아들이고 한번 더 삼키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해야 하는 운명을 마주해야 한다는 게 그만한 고통이 없겠다고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의미 있는 모든 것을 그 이상으로 담아내어 목소리 내는 것

속 안에 있는 정제되지 않는 액체를 두 동공에서 23분 동안 개어내는 것

사랑하는 무언가를 진심을 다해 사랑하고 힘내어 살아갈 수 있는 것

모든 게 무기력함과 무의미에서 찾아낸 절망감이 다 짓눌러 내가 진짜 봐야만 하는 세상을 보지 못하게 하는 

이 순간이 다시 반복됨을 느끼고 있는 

오후 6시 47분


죽음은 언제나 내 어깨를 부드럽고 얌전하게 어루만지고 있었다 다른 압박들과 압력들이 내 온몸을 누르고 있어서 날 내려다보는 죽음을 온전하게 느낄 만큼 신경이 곤두서있지 않았을 뿐이다

많은 압박들이 내 몸에 멀어지고 나니 직접 다시 마주한 이 순간은 그리우면서도 다시 마주치면 무너질 거 같은 무언가를 마주한 것처럼 언제나 새롭고 언제나 익숙하며 언제나 내 옆에 있었다


그렇게 나는 이 순간이 오지 않기를 간절하게 바라왔지만 실존하지 않는 감정 무의미한 살점 때문에 다시 무너지고 일어서는 과정을 반복해야 하는구나 


이 세상에서 없어지길 바란다 이 감정을 다시 상기시켜 주는 누군가에게 그리고 무언가에게 내가 살아갈 걸음을 내어주고 너는 그 걸음을 그만 멈추고 아래로 내려가 재로도 남지 말고 존재 자체가 사라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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