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침 나의 번아웃으로 마음이 힘들었다. 학급회장 선거, 받아쓰기 시험 등 2학년이 시작되자마자 일어난 일들에 나도 모르게 신경 쓰고 지쳤나 보다. 몇 년을 기다렸다 우리에게 온 첫째이고 나의 교육철학으로 책, 영어랑 친해지게 하려고 참 열심히 육아해 왔다. 학교에 들어가서는 루틴을 습관하시키려고 매일매일 잡아주고 있다. 그것들이 상당한 노력과 에너지가 필요한 걸 해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2학년이 되고 갑자기 쌓여왔던 게 한꺼번에 밀려온 듯하다. 아이가 학년이 바뀌면 엄마도 이렇게 긴장과 허무함이 몰려오나 보다.
이틀 전 학급회장 선거가 있었다. 2학년 된 첫날 느닷없이 학급회장에 나가겠다는 것이다. 워낙 사회성이 좋고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은 아이라 해 보라고 했다. 첫째를 이미 키운 친한 언니가 원래 저학년 때는 다 그렇다고 그러면서 자기가 하나 뽑고 친구가 하나 뽑아줘 2표 나오는 거라고 했다. 나는 웃어넘기며 그런가 보다 했다.
아이도 기대하고 있기에 전 날 연습한 번 해 보자고 해서 한 줄 연습시켰다. 다음 날 오자마자 아무 언급을 하지 않는 거 보니 안 됐나 보다 했다. 회장은 2표, 부회장은 4표를 받았단다. 괜찮다고 네가 용기를 내어 나간 것만으로도 대단한 거라고 말해주었다.
속으로는 아이가 회장이 되어서 기뻐할 모습을 기대했었는지 나도 조금 실망을 한 것 같다. 우리는 안 돼도 상관없었는데.. 사실 어제 아빠랑 연습했다면 친한언니가 딸 아이의 연습 영상을 보내주었다.그런데 나는 그 영상에서 좀 충격을 받았다고 할까.. 마냥 어린아이 같은 나의 첫째와 달리 그 여자아이는 첫째, 둘째를 얘기하며 조리 있게 말을 하는 것이다. 여자와 남자는 2년 정도 차이 난다더니 정말 그렇구나 느끼면서 한편으로 씁쓸하기도 했다.
아이에게 정성을 쏟아 책을 읽어주고 환경을 만들어주면 어디 가서도 티가 나는 아이로 자랄 줄 기대를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내 아이는 평범하다는 사실이 어쩌면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걸까...
2학년 시작하자마자 받아쓰기 종이를 받아왔다. 겨울방학 동안 편했는데 또 시작이구나 싶었다. 한글이 다소 느렸던 첫째는 1학년 2학기부터 시작된 받아쓰기에 어려움이 많았다. 하는 것도 싫어하지만 틀린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기는 바보라며 탓하기 일쑤였다. 그걸 매일 시키는 것도 일인데 상처받은 아이의 마음까지 매번 달래주고 오늘은 기분이 어떨지 눈치 보는 게 참 지쳤다.
지난주부터 또 매일 연습을 했다. 아이의 성격을 알고 부담을 주고 싶기 않기에 하고 나면 늘 칭찬해 주고 틀린 걸 또 써 보라던가, 다시 한번 해 보자는 말은 절대 하지 않았다. 그냥 매일 써 보는 것에 의의를 두기로 했다. 2학년이라 어려워서인지, 오랜만에 해서 인지 3~4일을 했는데도 10문제 중 7-8개를 틀리는 것이다. 받아쓰기시험 보는 날인 어제는 아이가 첫 시험이 기가 죽을까 봐 걱정도 되었다. 아침에 다시 한번 써보고 보냈다.
사실 받아쓰기는 못 해도 된다. 하지만 내가 걱정되는 건 아이가 거기서 느끼는 좌절감, 나는 친구보다 늘 못한다는 마음이 자리 잡을까 그 부분이 두렵다. 그런 감정이 지속해서 쌓이면 아이의 자존감은 낮아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요즘 오전에 내가 화상영어를 하고 있는데 보강이 생기면 아이가 하기로 했다. 마침 수업하나 가 비어 내가 하는 선생님과 아이가 하루 하게 되었다. 아이와 수업을 한 후 어제 아침 나의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첫째에 대해 이야기해 주는 거다. 너무 귀엽고 똑똑하고 잠재력이 뛰어나다고 말이다. 가끔 버릇없는 아이도 있고 말을 안 하려는 아이들 때문에 힘든데 우리 첫째는 자기가 흥미 있는 것에 적극적으로 말하고 집중력이 대단하다고. 준비가 되면 아이는 확 날개를 달 것 같다고 표현해 주었다. 그동안 첫째에 대해 걱정만 하고 있었기에 갑자기 그 말들이 나를 툭 건드렸나 보다. 이야기하는데 눈물이 나는 거다. 그러면서 너무 고맙다고 말해 주었다. 그 감정의 여운이 계속 남아 어제 다른 일들이 손에 잡히지 않으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 아이가 느린 부분을 인정하고 내 아이만 바라보자고 늘 다짐한다. 그러면서 아이의 잘하는 부분은 보지 않고 못하는 부분만 부각해서 보며 걱정을 안고 있었다. 주변에서 학원을 보내도 흔들리지 않고 우리의 방식으로 나아가기로 했다. 하지만 학교를 보내니 나도 마음을 잡기가 어렵다. 주변 아이, 인스타에서 보이는 아이와 비교가 되고 괜찮아 하지만 한편으로는 걱정하고 더 잘하기를 바라고 있었나 보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해 왔으니 그게 꼭 아이에게 도움이 되고 돋보이기를 바라지 않았나 생각이 들었다.
어제 이후로 다시 마음을 다 잡아본다. 바람을 쐬고 여러 생각을 하며 돌아보니 엄마가 걱정하는 걸 아이는 다 눈치채지 않았을까, 자기가 부족해서 힘든 건 정작 본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아이의 잘하는 점, 지금처럼 늘 사랑 많고 밝은 아이인 것만으로도 최고가 아닐까를 생각하니 아이가 더 예뻐 보이고 더 안아주게 되었다.
다른 아이보다 느리면 어떻고, 학급회장이 안 되면 어떤가... 넌 지금도 우리의 최고 보물이고 존재 자체로도 사랑스러운 아이인데.. 엄마의 조급함으로 그걸 놓치고 있었다. 이제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니 독립된 인격체로 존중해 주고 조금씩 아이와 멀어지는 연습을 해야 함을 느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