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둥이 : 2016년생, 첫째(남아), 둘째(남아), 막내(여아)
삼둥이 엄마인 나는 올해 삼둥이의 초등입학을 계기로 일 년 간 육아휴직을 했다. 올해는 내가 휴직한 해이며, 삼둥이가 초등학생이 된 해이며, 우리 가족이 시댁에서 분가를 한 해이기도 하다. 시댁에 있는 동안 워킹맘인 나는 거의 집안일을 하지 않고 살았다. 그러니 올해 나는 일 년간 전업맘이며 처음으로 내 살림을 해보는 터였다.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돌아온 집 안에는 설거지가 한 아름 쌓여 있다. 삼둥이들은 할머니, 할아버지와 살면서 아침을 꼭 밥으로 먹어 왔기 때문에 분가를 해서도 아침은 꼭 밥이었다. 그러니 일단 삼 인분의 식기류가 아이들을 데려다 주고 온 내 앞에 있다. 식판을 쓰는 날도 세 명 분의 설거지는 많았다. 물 한 모금씩만 먹어도 컵에 세 개다. 게으르고 게을러빠진 나는 설거지가 싫었다.
저녁은 더하다. 태권도를 끝내고 허기가 진 삼둥이들은 빵, 우유, 과일들을 연신 먹어댔고, 거기에 저녁까지 먹으면 또다시 싱크대 가득 설거지 거리가 넘치는 것이다. 아이들 하교 후 받아쓰기 준비 등 공부 조금 봐주고, 밥 주고, 그리고 설거지, 설거지, 또 설거지.
그러니 식기세척기에 대한 나의 열망은 점점 더해갔다. 그거 하나만 놓으면 어떻게 좀 더 누워있을 수 있으려나. 식세기가 남편 보다 낫다더라, 설거지 해주는 이모를 들인 거더라라는 말은 나를 홀렸다.
문제는 우리 가족이 현재 너무나 가난하다는 것이었다. 나의 휴직으로 가계의 수입이 반 토막 난 데다, 분가 이후 드는 돈은 더 많고, 어린이들은 태권도까지 시작한 터이다. 할부로 살 수도 있겠지만 뭐 할부는 내 돈 주고 사는 거 아닌가요. 매달 보릿고개의 상태를 갱신하는 이 시점에 할부까지 더 할 필요는 없지 않으까.
보릿고개가 지나면 가을이 오듯이 5년을 기다린 정기적금 만기가 11월이었다. 11월에 식기세척기를 사기로 이사 왔을 때부터 결정했다. 나는 이제 컵 하나도 설거지하지 않을 것이야!
그리고 몇 주 전 갑작스러운 남편의 말. “내년에 내가 휴직을 할까?”
오호라, 이제 두 달 후면 복직을 하는 터라 아직 여물지 않은 삼둥이가 걱정되던 중에 반가운 소식이었다. 원래 올해의 휴직도 내가 할 것인가, 남편이 할 것인가 오래 고민하다 내가 하게 된 거였다. 보릿고개는 계속 되겠지만 아이들은 반 년 정도만 더 돌봐줘도 훨씬 자기 앞가림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저번 주 드디어 정기적금 만기가 되었다. 남편은 쉬는 날 식기세척기 먼저 보러 가자고 하는데, 아아, 아아, 이거 좀.
식기세척기가 사기 싫어졌다구! 네가 휴직하면 너도 설거지 맛 좀 보게 하고 싶다고!!! 초등학교 1학년 적응 다 시켜놨는데, 2학년 때 휴직하면 너 너무 땡보 아니냐구! 설거지라도 하라구!
그렇다…. 나는 남편에게 설거지를 너무 시키고 싶어서 식기세척기를 사기 싫어졌다. 나는 올해 일 년간 진정한 의미의 육아휴직을 했다. 3월 입학 때는 12시 즈음에 아이들이 하교하는 한 달도 있었고, 끊임없이 도서관이니 연극이니 데리고 다니기도 많이 데리고 다녔다. 지금도 태권도장 차량 시간이 안 맞는 날은 학교로 픽업을 다니고, 다시 태권도장에 데리고 가고 정말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스스로의 고생을 티 내 본다.
그러나 만약 남편이 내년에 휴직을 한다면? 어린이들은 이미 학교에 적응했고, 태권도장도 적응했고, 이제 씻는 것도 다 알아서 씻는다. 그렇게 만드는데 올 일 년이 걸렸다. 그러니 난 식기세척기를 사기 싫다구.
세상에 이렇게나 치졸한 이유로 식기세척기를 사기 싫은 것이다. 나란 인간 참, 인간적이구나, 오호호. 근데 장난이 아니다. 정말 너무너무 사기 싫고, 너무너무 설거지를 시키고 싶다. 남편에 대한 나의 사랑은 이렇게 아름답구나, 허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