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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Nov 20. 2023

나는 센 아이들이 침뱉으라고 아이를 순하게 키운걸까요?

삼둥이 : 2016년생, 첫째(남아), 둘째(남아), 막내(여아)

 

  반 아이가 첫째에게 침을 뱉었다. 말 그대로다. 첫째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장난식의 퉤퉤퉤퉤도 아니고-물론 퉤퉤퉤퉤도 안 되는 일이지만-정말 얼굴에 침을 퉤 뱉고 지나갔단다. 그리고 이게 1학기 때 한 번 있었고, 이번이 두 번째란다. 첫 번째 때는 ‘이 바보야.’라고 말하면서 침을 뱉었단다.


  둘 사이는 친구 사이도 아니고, 그 사태가 일어날 때 언쟁이 있었거나 말하고 있던 중도 아니었다. 그냥 가만히 서 있는 첫째를 향해, 우리 아이가 원인이 아닌 어떤 일로 기분이 안 좋은 아이가 침을 뱉고 지나간 것이다. 


  그 이야기를 금요일 저녁에 들었을 때 나는 나의 육아 인생의 기저가 흔들리는 혼란을 느꼈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야기는 둘째와 막내도 1학기 때 한 번씩 그 아이가 침을 뱉은 적이 있다는 것이다.


  금요일 저녁이라 선생님께 바로 연락을 할 수는 없었다. 아이들에게 왜 1학기 때 그 일이 있었을 때는 얘기하지 않았냐고 하니 집에 왔을 때는 잊어먹었고, 금방 지나간 일이라서 별 생각이 없었는데 첫째한테 오늘 얘기를 듣고 보니 자기들에게도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게 기억났단다.


  우리 아이들은 유순하고 착하다. 엄마의 필터 짙은 안경을 써서 더 그래 보일지도 모르지만 아이들은 누가 봐도 순하고 아기 같은 아이들이다. 1학년이 다 끝나가는 지금도 유치원생의 느낌이 난다. 그리고 키도 또래 보다 작으니 더 아기 같아 보인다. 


  아이들이 순하고 착한 이유는 뭘까. 일단 부모가 순진하다. 나와 남편이 타인에게 별로 해를 끼치지 않고, 맺힌 것도 없는 성격이다. 그냥 나와 남편은 사십대인 지금도 순한 사람들이다. 그런 순한 사람들이 낳은 아이들도 순하게 나왔다. 그런데 또 그걸 순하게 키웠다. 무해한 가족이랄까.


  그런데 순한 아이들을 순하게 키운 것이 순한 일이었을까. 아니다. 순한 아이들을 순하게 키우는 것도 힘든 일이었다. 


  느닷없는 생각의 확장으로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순하지 않은 아이들이 침뱉으라고, 그 아이들의 화풀이 대상이 되라고 그렇게 금이야 옥이야 순하게 키웠나. 색깔 짙은 아이들이 흐려 놓으라고, 아이들을 맑고 티없이 키웠는가.


  하필 금요일 밤에 알게 된 일이라 쓸데 없는 생각을 할 시간이 많아졌다. 첫째는 그 아이가 침을 뱉었을 때의 기분이 어땠냐니까 ‘몰라.’라는 대답 뿐. 그럼 그 아이가 나중에 또 너에게 침을 뱉어도 되겠냐는 질문에 ‘아니.’라는 대답 뿐. 하여간 첫째도 이것이 부당한 일이며, 불쾌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월요일 아침에 꼭 선생님께 말씀 드리라고 하니 ‘나 월요일에 까먹을 거 같은데.’라는 대답! 아이고…. 도대체 사태의 심각성을 어느 정도로 생각하는 건지, 사과를 받고 싶은 마음은 있는 건지 첫째의 머릿 속을 정확히 알기가 어렵다.


  선생님한테 말씀드리는 게 좋고, 사과를 받는 게 좋다. 월요일 아침에 엄마가 다시 말해 줄게 하고 주말을 끝냈다.


  월요일 아침에 학교에 데려다 주면서 셋에게 말을 했고, 오후에는 선생님과 통화를 했다.


  등교하자마자 삼둥이가 선생님에게 달려갔고, 그 아이는 첫째에게 그랬던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했다고 한다. 선생님 말씀으로는 그 아이는 다른 일로 다른 아이들과 다툼이 있던 적은 여러 번 있으나, 침을 뱉었다는 얘기는 이번에 처음 들었다고 한다. 아니, 그러면 우리 삼둥이한테만 뱉은 건가. 우리 삼둥이가 그렇게 만만해 보이나.


  주말 동안 불현듯 올라오는 짜증을 정리하고 월요에 갈무리한 생각은 그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순진한 건 전혀 잘못이 아니다. 

-오로지 침을 뱉은 아이의 잘못일 뿐, 우리 아이들의 순진성과 순함은 전혀 행위의 유발하거나, 행위를 정당화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나의 흔들리는 마음을 그렇게 정리해 본다. 맑고 순진한 아이에게 행해진 부당한 행동에 대해 나의 육아 방식이 잘못 되었던가라는 생각, 우리 아이들의 순진함이 어리석은가라는 생각. 노노. 절대 아니다.


  나는 아직 첫째에게 침을 뱉은 그 아이가 어떤 아이인지 얼굴도 모른다. 물론 알고 싶지도 않다. 그 애가 어떤 성격인지 알 바 아니고, 그 애가 한 행동의 이유나 변명도 듣고 싶지 않다. 그 아이가 뱉은 침에 맑은 우리 아이가 흐려지지 않는다는 것만이 분명한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말한다. 너희가 어떤 아프고 기분 나쁜 일을 겪을 때 엄마, 아빠는 언제나 너희들을 위해 싸울, 나설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 누군가에게 해를 입히는 학생도 되지 말고 해를 당하는 학생도 되지 말 것(너무 어려운 일이다.). 피해를 입은 즉시 선생님께 말하고, 엄마, 아빠에게 말할 것. 그리고 셋이 기쁜 일도 슬픈 일도 똘똘 뭉치고 도와줄 것.


  초딩의 삶과 초딩 부모의 삶은 힘든 거구나. 일주일간 내내 오늘은 그 아이가 널 화나게 하지 않았냐, 또 침 뱉지 않았냐(그 사이에 우리 아이들이 그 아이가 다른 아이에게 침 뱉는 걸 봤단다.) 등 물어봤지만 현재로서는 다른 이상은 없다.


  아무래도 이번 사건에서 가장 상처 받은 것은 첫째가 아니라 나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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