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려고 도망쳤다.

by 낑깡이

퇴사 후 제일 먼저 한 일은 제주도 여행이었다.

원래는 퇴사 여행이 아닌 미리 계획한 여행이었는데 그렇게 되어버렸다.


그쯤 나는 어떤 것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회사에서 느끼는 무기력함은 내 삶 전체로 이어졌다.


처음엔 내 시간이 많아서 좋다며 퇴근 후에 여러 가지 취미 생활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누워만 있을 뿐이었다.

그저 귀찮아서, 게을러서 그런 줄 알았다.

그러다 알게 되었다.

내 시간이 많아도 내가 온전치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겨울 제주도는 어떨지 걱정 반 설렘 반으로 비행기에 올랐다.

사실 비행기를 탄건만으로도 내가 처한 현실을 잊을 수 있었다.

돌아가면 백수라는 사실이 두려웠지만 생각하기 싫었다.


겨울 제주도는 처음이었다.

추운 걸 싫어하는 나였지만 차가운 바다 바람이 좋았다.

강한 바람 때문에 정신이 없었고, 그 덕에 머릿속에 있던 복잡한 생각들도 멀리 날아갔다.

상쾌한 공기 때문인지 숨이 좀 트이는 기분이었다.


잠깐의 여행이 나를 완전히 회복시키긴 못했지만

조금은 달라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감정도 무뎌지고 기쁨도 슬픔도 잊고 살았는데,

웃기도 하고 울기도 했다.

그제야 조금 사람답게 느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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