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이 대중화가 된 지금도 엄마의 핸드폰은 구식 폴더 폰이다.
시각 장애를 가진 엄마에게는 터치로 인식이 되는 스마트 폰보다는 버튼을 누르는 폴더 폰이 더 적합하기 때문이다.
버튼이 있는 폴더 폰도 손의 감각만으로 구분하기에는 한계가 있어서 볼록한 스티커를 붙여서 사용한다.
요즘 웬만한 가전들은 터치 방식으로 많이 바뀌어서
우리 집은 가전을 고를 때 선택의 폭이 좁다.
편리한 기능보다,
엄마가 사용하기에 덜 불편한 것을 고른다.
이제는 나도 누군가의 보호자가 될 만큼의 나이가 되었다.
엄마는 어른이지만 보호자가 필요한 어른이다.
어린 나의 보호자는 엄마였고 , 어린 나는 엄마의 보호자였다.
엄마는 시각장애 1급이다.
3살 때 이름 모를 병을 앓고 난 뒤 후유증으로 시력이 떨어졌다고 했다.
젊은 시절 엄마는 혼자 외출을 할 수 있을 만큼의 시력은 남아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쯤 엄마의 손을 잡고 버스를 타고 시장 구경을 갔던 기억이 남아있다.
엄마도 그 시절을 기억하고 있다.
언제쯤 시력을 완전히 잃게 되었는지는 물어보지 못했다.
성숙하지 못했을 시절에는 엄마가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하지 못했다.
창피해 서가 아니라 말하지 않으면 티 나지 않으니 굳이 말하지 않는다는 합리화로 숨겼다.
나의 그런 행동들이 엄마에게 더 상처가 되었을 거란 생각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할 수 있었다.
미성년자를 지나 성인이 되어 믿을만한 사람이 생겼을 때 엄마의 장애를 말해도 될지 엄마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엄마는 엄마가 장애를 가지고 있어서 창피하냐고 물어봤고, 그땐 정말로 그렇지 않았다.
나는 창피하지 않다고 대답했고 , 엄마도 괜찮다고 했다.
장애 때문에 창피하고 상처받는 시기는 지나갔다고 엄마는 말했다.
엄마의 마음이 단단해져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언제부터였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늘 하던 생각이 있다.
엄마가 처음부터 시력을 완전히 잃었던 건 아니었는 혹시 내가 태어나면서 점점 잃어갔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
어른들 중 누군가에게 들었는지, 티브이를 보다가 알았는지, 아니면 학교를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생각으로 혼자 울곤 했던 기억이 있다.
아무래도 아무런 영향이 없었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임신과 출산으로 많은 여성들이 건강을 잃곤 하니까, 엄마도 그랬겠지.
세상을 잃어가는 그 시절 엄마는 얼마나 무서웠을까.
어린 시절 외출 후 집에 돌아오면 이불속에서 울고 있던 엄마를 자주 봤었다.
그땐 엄마가 왜 슬픈지 이유도 모른 채 따라 울곤 했다.
억울하고 서러운 일들이 많았을 거라 생각한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움직이지 못하다 보니 늘 신세 진다는 생각에 불편한 마음도 있고,
때론 화가 나서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어도 그럴 수 없어 참을 수밖에 없던 상황도 많았을 것이다.
우는 엄마를 보면서 그런 생각들이 커졌던 것 같다.
내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엄마도 세상을 좀 더 볼 수 있지 않았을까? 지금보다 자유로운 삶을 살지 않았을까?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돌보느라 엄마의 치료 시기를 놓친 것은 아녔을까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자라면서 오히려 많이 들었던 말은 네가 없었으면 어쩔 뻔했냐는 말들이었다.
엄마가 시력을 완전히 잃고 난 후에 나는 엄마가 외출을 할 때면 대부분 함께였다.
장을 보러 갈 때도 , 병원을 갈 때에도, 할머니 댁에 갈 때도.
친구들과 놀다가 일찍 들어가야 하는 때도 있었고 늦잠 자고 싶은 휴일에 일찍 일어나야 했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거절하거나 투정 부렸던 적은 손에 꼽는 것 같다.
어린 시절엔 엄마가 무서워서 그런 것도 있었고 철이 들고 난 후에는 내가 아니면 누가 대신 가줄까 싶은 마음도 있었다.
물론 나 말고도 엄마에게 도움을 주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도 그중에 제일 많은 횟수를 차지하는 건 나였으니 , 늘 착한 아이라는 칭찬을 받았다.
어른들은 그 말을 칭찬으로 한 거겠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나에겐 부담이 되었다.
엄마 곁에 내가 없으면 엄마는 어떻게 살 수 있을지 늘 걱정이 된다.
엄마 없이 나는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