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을 마친 후 미국에서는 무기체계 연구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그중에서도 미사일의 정확도를 높이는 기술이 필요했다. 애써 쏘아 올린 미사일이 비바람 같은 기상조건 때문에 목표를 빗나가면 정말 아까운 일이었다. 그래서 유도탄 기술이 도입되었다. 포탄이 비행하면서 외부 환경을 감지하고 스스로 궤도를 수정하는(Self-correcting) 시스템을 장착하게 된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인공지능의 개념이 이때 탄생되었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 이 인공지능 시스템 이론은 유도 미사일에만 도입이 된 게 아니다. 심리학자들은 이 이론으로 가족관계를 들여다보고 놀라운 통찰을 얻어낸다. 가족 안에도 유도 미사일처럼 외부환경에 대응해서 스스로 궤도를 수정해가며 일정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하나의 시스템이 있다는 사실이다 (Becvar, 2003).
평범하게 일상생활을 하다가도 가족 중 하나가 심하게 아프게 될 경우, 나머지 가족들은 일사불란하게 역할과 책임을 나누어 가지면서 위기를 극복하게 된다. 어머니가 아픈 아이의 병간호를 하게 되면 아버지가 나머지 자녀들을 돌보면서 어떻게 해서든 생명을 이어나가고 구성원 모두가 성장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가족 내 문제가 심각하다고 토로하는 내담자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이 시스템 이론은 매우 유용하다. 아래 사례를 같이 살펴봅자.
40대 중반의 대학교수인 A 씨는 가족들을 챙기기에 지쳤다고 토로한다. 아내에게 매번 계획을 세워 생활비를 쓰라고 잔소리 하지만 월말이 되면 아내는 카드 값이 어떻게 이렇게 많이 나왔는지 모르겠다며 남편에게 손을 벌린다. 착실한 첫째는 자신을 닮아 알아서 공부를 하는 편인데 둘째는 천방지축이어서 늘 챙겨주고 직접 공부를 지도해 주어도 하는 둥 마는 둥 한다. 자신이 언제까지 가족을 챙겨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길게 내 쉰다.
A 씨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규모 없이 돈을 쓰는 아내와 공부를 안 하는 둘째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기 쉽습다. 가정을 어렵게 하는 역기능적 행동들이다. 그러나 이 가정의 내막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역기능의 다른 가능성도 추측해 볼 수 있다. A 씨는 학교만이 아니고 집에서도 가르치는 역할이다. A 씨가 가르치는 것 말고 다른 모습으로 집에서 소통하고 기능하는 것이 가능할까? 아내와 둘째 아이 역시 남편과 아버지의 관심을 얻어내는 방법으로 약간의 일탈을 하는지도 모른다. 공부 잘하는 첫째는 아버지와 비슷하게 행동하는 것으로 인정을 받고 있을것이다. 결국 A 씨가 무책임한 가족 구성원을 챙기는 것인지 아니면 가족들이 다 같이 협력해서 A 씨가 집에서도 가르치는 위치에 설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인지가 애매해지게 된다. 이 가족의 시스템을 유지하려는 사람은 누구일까? 이 글을 읽는 당신의 가족 시스템은 어떠한가? 무엇을 어떻게 바꾸면 좋까? 아 참, 그리고 상대에게 변화를 강요하는 것은 위의 사례처럼 대체로 잘 통하지 않는다. 대신에 내가 변하면 그 영향이 가족 모두에게 간다. 우리는 하나의 시스템 안에 있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Becvar, D.S. (2003). A Survey of family therapy: Thinking and theorizing. In Robbins, M., Sexton, T. & Weeks, G. (Eds), Handbook of Family Therapy (pp. 3-22). Routled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