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기능 (Overfunctioning)
‘치우는 사람, 어지럽히는 사람 따로 있어요. 애들이랑 남편은 집에서는 정말 손가락 하나 까딱을 안 해요.’
결혼한 여성 내담자들 이야기를 듣다 보면 가족들이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호소는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다. 우선은 고단한 가사노동에 대한 불만족스러움을 충분히 토해내고 후련한 마음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동안에 집에서 묵묵히 참기만 했던 분들은 그저 그 마음을 들어드리는 것으로 큰 위로를 받곤 하신다. 그런 다음, 나는 어머님들에게 집에서 식구들 사이에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를 살피도록 조심스럽게 안내를 한다.
가족 구성원들이 집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그러나 그중에서 가장 흔한 공통적인 요인은 바로 집안일을 독차지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어머니가 집안을 혼자서 부지런히, 그것도 매우 빠르고 능숙한 손길로 청소하면서 아이들과 남편에게 좀처럼 기회를 주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을 과기능(Overfunctioning) 하는 사람이라고 한다(Lerner, 1989). 단순히 집안 청소뿐만 아니라, 집안의 대소사와 다른 가족 구성원이 알아서 해야 할 걱정까지 이런 과기능을 하는 사람은 다 자기 몫으로 챙긴다. 흔히 말하는 장녀, 장남 콤플렉스도 여기에 해당한다. 결혼 전에는 부모를 대신해서 형제들 사이에 가장 역할을 하다가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룬 후에도 여전히 집안 대소사를 자기 일처럼 챙기고 동생들의 뒷바라지에 헌신적인 사람들이다. 언뜻 보면 매우 모범적이고 배려심 많은 사람이지만, 실은 다른 가족 구성원들이 스스로 일을 해결하고 성장할 기회를 빼앗는 면도 다분히 있다.
대체로 많은 어머님들이 이 대목에서 ‘아하’ 하시며 어느 정도의 통찰과 공감을 표현하신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부터다. 깨달음은 왔으나 당장 집에 돌아가면 일일이 간섭하고 개입하지 않고는 못 참을 만한 순간들이 계속 들이닥친다. 아이들에게 스스로 하라고 기회를 줬다가, 꾸물럭 거리면서 세월아 네월아 하는 걸 바라보다가 울화통이 치밀어 본인이 직접 다 해버렸다는 실패담을 한두 번 듣는 것이 아니다.
상담의 과정은 마술이 아니어서 어느 한순간에 문제가 거짓말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그런 건 TV 프로그램에만 나오는 일이다. 다른 가족 구성원들이 비효율적인 방법으로 시간을 낭비하더라도 참고 인내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오랫동안 몸에 밴 생각과 행동을 바꾸는 데에는 정말로 ‘훈련’이라는 표현을 써야 할 만큼 혹독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조금씩 달라지는 집안의 풍경은 아름답다.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기회와 책임이 주어지는 집안에는 역동적인 성장의 에너지가 꿈틀거린다. 고정되고 변함이 없는 조직에 성장은 없다. 아이들은 스스로 선택하고 때로 부모에게 조언도 할 수 있는 민주적이고 창의적인 환경에서 지혜와 인성을 갖추게 된다.
<참고문헌>
Lener, H., G. (1989). The Dance of Intimacy. Harper& Row, Publishers, New Y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