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다 Feb 25. 2022

관계와 중독

부부가 상담실은 찾아온 것은 잦은 말다툼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말다툼이 심해지면서 물리적인 폭력으로 이어질 뻔한 아슬아슬한 경험을 두어 차례 한 뒤로,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 상담실을 찾았다고 했다. 그런데 가만히 이야기를 듣다 보니 단순한 말다툼의 문제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부부싸움에 속이 상하면 남편은 밖으로 나가 직장 동료나 친구들과 늦게까지 술을 마셨고 아내는 혼자 집에 있는 시간을 역시 술로 달래곤 했다. 싸움이 술을 부르고 다시 술이 더 큰 싸움을 초래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었다. 정말로 한 치의 빈틈도 없이 관계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었고 두 사람 다 알코올 중독이 의심이 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 부부는 상담 시작한 지 몇 주 만에 조금씩 달라진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상담자의 전폭적인 지지와 공감으로 남편이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하면서 아내도 남편을 용서하기 시작했다. 기나 긴 대화 끝에, 두 사람이 손을 잡고 얼굴을 마주 보면서 미소를 주고받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놀랍게도 관계가 회복되면서 두 사람 다 술을 마시는 횟수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중독의 치료와 예방에 친밀한 관계가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는 사실(O'Farrell & Schein, 2011)을 새삼 느끼게 해 준 상담사례였다. 


세상에는 여러 가지 중독의 요소들이 널려있다. 아이들을 유혹하는 게임에서부터 도박, 알코올, 니코틴, 약물 등등 중독으로 인해 삶이 망가지는 사례를 심심치 않게 뉴스에서 접하게 된다. 술이나 담배와 같이 비교적 중독성이 강한 물질이 합법적으로 너무 쉽게 구매가 가능한 상황에서 무조건 절제하라고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핸드폰으로 불과 몇 초 만에 게임을 다운로드할 수 있는데, 게임의 유혹으로부터 아이들을 어떻게 차단하란 말인가. 

그러나 다행스러운 사실은, 위의 상담 사례에서와 같이, 중독을 예방하고 치유하는 힘도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이다. 행복하고 건강한 관계 안에 있을 때 사람은 중독으로부터 멀어진다. 일찍이 에릭 프롬은 그의 명저 ‘사랑의 기술’에서 인간의 실존적 불안이 중독을 유발한다고 주장했다. 삶의 근원적 불안과 고단함을 맞서지 못해서 고통을 잠시 잊게 해 주는 중독으로 빠진다는 것이다. 이 삶의 근원적 불안은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 일상 곳곳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운다. 언제 계약이 끝날지 모르는 불안한 고용상태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술과 담배로 달래고, 친구의 성적과 내 성적이 비교되어 등급이 매겨지는 살벌한 입시제도를 피해 게임에 빠진다. 술을 끊고, 핸드폰을 그만하라고 잔소리하기 전에, 삶의 고단함을 나눌 가족과 친구가 있는가를 돌아보아야 한다. 당장은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지만 이렇게 불안한 것이 나 혼자만이 아님을 아는 것, 우리가 서로의 아픔을 껴안을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삶을 질적으로 달라지게 한다. 삶의 불안은 쾌락으로 도피하는 가운데 극복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불안을 직시하고 지금 여기를 치열하게 사는 힘으로 극복할 수 있다. 그 힘은 따듯한 관계, 어깨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연대에서 나온다. 


참고문헌

 O'Farrell, T., J.  & Schein., A., Z. (2011). Behavioral Couples Therapy for Alcoholism and Drug Abuse. Journal of Family Psychotherapy, 22(3),193-215. DOI: 10.1080/08975353.2011.602615

이전 11화 적당한 거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