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다 Mar 20. 2022

적당한 거리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을 난 잊을 테요/ 사랑보다 먼 우정보다는 가까운 어색한 사이가 싫어서 나는 떠나리” 사랑의 감정을 거리로 표현한 가사들이다. 우리는 대체로 사랑하는 사람과 거리가 멀어지면 사랑하기 힘들거나 사랑이 식은 것이라 여긴다. 사랑은 가깝게 뜨겁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연 그럴까?


민정 씨(가명)와 동훈 씨(가명)는 결혼 2년 차 신혼부부이다. 연애 시절엔 잠깐 동안 만나도 그렇게 행복할 수 없었는데 막상 함께 살다 보니 전쟁이 따로 없다. 결혼 준비하면서 발생한 두 집안 간의 미묘한 갈등은 걷잡을 수 없는 부부싸움으로 번지곤 한다. 서로 사소한 말이나 행동에도 크게 상처받고 언성을 높이는 일이 잦아졌다. 여전히 사랑하는데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지, 왜 이렇게 예민하게 구는지 몰라 상담실을 찾았다.  



가족 혹은 연인 관계는 일단 가깝고 친밀해야 한다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에 심리적 거리가 너무 가까우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즉각적인 감정적 반응을 하게된다. 그리고 그것이 상대방을 너무 사랑해서 그렇다고 주장한다. 위의 예에서 나온 부부관계뿐만 아니라 부모 자녀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학교를 돌아다니며 상담을 하다 보면, 학교폭력을 처리해야 하는 선생님들의 하소연을 심심치 않게 듣는다. 자녀의 사소한 피해에도 불같이 화를 내는 일부 학부모님들 때문에 담임선생님들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부모가 자녀를 너무 사랑해서 그런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이것은 자녀의 입장을 공감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상대방의 입장을 공감하는 데에는 실은 노력과 연습이 필하다. 사람은 태어나서부터 세상만사를 자기 위주로 생각하고 느낀다. 이런 자기 중심성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이 곧 성장의 과정이다. 만만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평생에 걸쳐 수련해야 할 덕목이다. 상대를 향한 참을 수 없는 강렬한 감정은 어디까지나 나의 감정이다. 다시 말하지만 그것은 상대의 상황이나 입장을 공감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향해 거의 반사적으로 올라오는 격정적인 감정은 그 사람과 내가 건강하게 사랑하기에 거리가 너무 가깝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가족 구성원 간의 적당한 거리는 건강한 사랑에 필수적이다 (Kerr & Bowen, 1988).




 가족 구성원들이 서로 적당한 거리를 확보하는 것을 보웬(Murry Bowen)이라는 심리학자는 개별화 (Differentiation)라고 했다. 개별화의 정도가 매우 낮고 갈등이 증폭된 상황에서 가족 구성원 간의 관계의 단절도 일어난다. 서로 대화도 없고 심지어 인연을 끊는 경우도 있지만, 보웬에 의하면 이는 실제로 이 구성원들 사이의 관계가 너무 가깝다는 증이다. 상대방의 말을 주의 깊게 듣지만 그것에 흔들리지 않고 따듯하게 공감해 주려면 거리가 필요하다. 진정한 사랑은 그렇게 가족 구성원들 사이에 공기가 통하고 거리가 존재하는 관계에서 피어난다. 그러니 가까이하기엔 너무 멀다고 불평할게 아니라 내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지 하고 있는지, 나의 감정과 상대의 감정을 구별할 수 있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참고문헌

Kerr, M., & Bowen, M. (1988). Family Evaluation. New York: Norton.

이전 10화 치우는 사람, 어지럽히는 사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