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 것인가 힘으로 굴복시킬 것인가
‘사랑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눈물의 씨앗이라고 말하겠요.’ 트로트의 전설, 가수 나훈아의 노래 한 소절이다.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라고 충분히 말 할만하다. 사랑은 어려우니까. 그러나 사랑을 하면서 눈물만 흘리면 다행이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벌어지는 온갖 비극을 마주 하노라면 마음이 착잡하다. 실은 우리는 사랑하는 법을 미처 다 배우지 못한 상태로 어른이 된다. 사랑에 대해 골똘히 고민하는 것은 이제 막 연애를 시작하는 십 대들 뿐인 것 같다. 그 이후론 삶이 너무 바빠서 사랑에 대해 고민할 짬이 없다. 사랑해서 결혼했는데 사랑하며 사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심지어 부모가 되어 내가 낳은 자녀를 사랑하기도 만만치 않다. 때문에 사랑이 넘쳐야 할 가정에 사랑이 아닌 다른 것이 그 자리를 대신하기도 한다. 사랑한다고 하지만 실은 사랑이 아닌 것을 사랑으로 알고 당당하게 밀어붙이는 사람들도 간혹 있다. 진정 위험한 사람들이다.
다 널 위해서, 너 잘 되라고 아낌없이 퍼부었던 판단, 평가, 충고, 조언은 사랑 같지만 실은 상대에게 독이 될 때가 더 많다. 그래서 기분 상하지 말라고 친절하게 앞뒤 상황을 길게 설명해 줘도 소용이 없다. 상냥하게 설명하는 사람이 더 얄밉다. 길고 장황한 말에는 상대를 나의 논리로 굴복시키고자 하는 힘의 동기가 숨어있다. 말로만 하는 것은 그나마 다행일지도 모른다. 사랑의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폭력이 자행되었는지를 살펴보면 끔찍하다. 사랑해서 여자 친구를 협박하고, 사랑해서 자녀를 체벌하고 배우자를 폭행한다. 가정폭력 행위자(가해자)들을 상담할 때 답답하고 어려운 부분이 이 지점이다. 이분들은 사랑과 폭력을 구분하지 않으려 한다. 고집스럽게 자신의 행동이 사랑이었노라 주장한다.
우리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행한 이 모든 언행은 실은 사랑이 아니고 일방적으로 상대를 굴복시키려는 힘의 사용이다. 힘의 사용을 사랑으로 헷갈리는 것이다. 실은 힘을 사용하면 오래 참을 필요 없이 상대방으로부터 내가 원하는 것을 바로 얻을 수 있다. 빠르고 효과적이며 짜릿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한 번 맛 들이면 빠져나오기 어렵다. 빨리빨리 결과를 봐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에겐 이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
그러고 보니 성공을 향해 폭력적으로 질주했던 문화가 한국 사회 곳곳에 있었고 지금도 남아있다. 화려한 금메달 뒤에 구타가 당연시되었던 체육계, 아직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스파르타식’ 입시학원, 구타와 가혹행위는 근절되었다고 수 십 년째 홍보하고 있는 국방부가 그렇다. 계획된 준공 기간보다 빨리 시공하는 것이 당연한 건설 현장에서 죽어간 노동자들의 숫자는 너무 많아 찾아보기도 두렵다.
사랑은 신약성서의 저 유명한 구절처럼(고린도전서 13장) 오래 참아야 사랑이다. 빨리 결과를 내기보다 천천히 가면서 사소한 과정 하나에도 함께 기뻐하고 축하한다. 의견이 다를 땐 설득해 가면서 기다려야 한다. 성공을 한다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사람을 힘으로 굴복시키지 않으면서, 오래 참으면서 사랑할 때 그 사람은 자신의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오직 목표를 향해 폭력적으로 질주하는 동안 얼마나 많이 죽고 다쳤던가. 사람은 사랑하며 살아야 사람이다. 그렇지 않은 삶은 살아 있어도 죽은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