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엔 나도 모르게 철학자가 된다

- 철학자처럼 깊어지는 중년

by 백지성

준비되지 않은 중년을 맞아 몹시 당황스런 지성씨.

어느날 부턴가 중년에 대한 자료들을 찾아서 읽게 된다. 현실적 숙제도 있지만 뭔가 지천명의 지혜를 나만 터득하지 못하고 있나 하는 조바심이 자리하고 있다. 반갑게도 적잖은 현시대의 지성들이 중년 들어 휘청인 경험을 책으로 내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철학자 크리스토퍼 해밀턴은 그의 저서 <중년의 철학>을 통해 본인이 겪은 중년경험을 이렇게 기록했다.


“내적인 삶과 특히 관련 깊은 삶, 직장, 결혼을 비롯한 다른 모든 것에서 우리의 ’선택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달갑지 않은 결실을 맺어 지금 자신에게 되돌아오고 있다는 것이 중년에 깊어지기 시작하는 깨달음이다. 길을 가다가 이 길이 아닌 저 길을 선택했기 때문에(정말 그 길을 ’선택‘했는가?) 다른 길을 경험할 기회를 잃어버렸을 뿐만 아니라(...) 더욱 괴롭게도 각각의 갈림길을 ’선택‘함으로써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대가를 너무 많이 치르게 되었다는 깨달음이다(49페이지)”


지금까지의 삶이 온전한 선택의 결과라고도 할수 없지만, 어쨌거나 굽이굽이 인생 여정에서 했던 크고 작은 나의 선택들이 너무 많은 대가를 치르고 그 시절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전개됐음을 깨닫게 되는 경험은 중년이 되어서야 할수 있는 경험일 것이다.


제임스 홀리스는 자신의 저서 <내가 누군지도 모른채 마흔이 되었다>에서 중년기를 ‘중간 항로(middle passage)’라고 명명하면서, 이 시기에 삶을 재평가하면서 무섭지만 해방감을 줄수 있는 한가지 질문 앞에 설 기회를 갖는다고 하였다. 즉 ”지금까지 살아온 모습과 맡아온 역할들을 빼고 나면, 나는 대체 누구인가?”라는...


얼마나 딱 맞는 표현이란 말인가? 진짜 지금까지의 가족과 직업적 역할을 빼고 나서 남은 나는 누구지?


나는 나를 모르고 있었다!

지성씨는 이런 결론에 도달했다. 오십여년의 세월 동안 그렇게 많이 성찰하고 공부하며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진정으로 나를 알지 못한채 살아왔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이라도 나를 알아 나가는 일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더 늦기 전에... 긴 노년이 오기 전에...


“살아온 삶이 자꾸 돌아봐지고 허무해지는 중년. 이 중간항로인 중년은 확장된 사춘기와 피할수 없는 노년과 죽음 사이에서 한 인격을 재정의하고 전환할수 있는 기회이자 통과의례다. 이 길을 의식적으로 여행하는 사람은 삶을 더 의미있게 구축할 수 있다”는 홀리스의 말이 지성씨의 마음에 와닿는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것은 중년이 되면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삶에서 보다 자유로와진다는 것이다. 남들이 보는 내가 중요한게 아니고, ‘나 자신 스스로의 인정’이 중요하다는 것을 중년이 되면 깨닫게 된다. 그것은 이전의 삶에서는 맞보지 못했던 엄청난 해방감을 준다. 실제로 중년의 특성 중 긍정적 특성 중 하나가 다른 사람들의 성취에 대한 질투와 두려움이 예전보다 훨씬 줄어든다는 점이다. 이제는 친구의, 동료의 성공이 나를 크게 흔들진 못한다. 그 친구의 노력을 진심으로 인정할 줄 알게 되고, 그런 성취를 이루지 못한 자신을 너무 나무라지도 않게 된다. 얼마나 고마운 중년인가!


인생은 그렇게 거창하지 않다. 어쩌다 태어나서 어쩌다 이렇게 살고 있고, 그럭저럭 열심히 살아왔으나 크게 성취한 것도 없고, 그리고 아마도 생의 종착역까지도 이렇게 살다 갈 것이다. 다시말해 소소하게 성취하고 실패하며 한 세상을 살다 가는 인생의 진실을 깨닫고 중년엔 이제라도 스스로에게 편안해져야 한다.


"아저씨, 나는 행복할 수 있는 진정한 비결을 발견했어요. 그것은 현재에 사는 것입니다. 언제까지나 과거를 후회할게 아니라, 또 미래를 걱정할게 아니라, 현재의 이 순간에서 얻어낼 수 있을 만큼 얻어내는 것입니다. 1초 1초를 즐길 작정이예요. 그리고 즐기고 있다는 것을 의식할 작정입니다. 대개의 사람들은 생활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경쟁하고 있을 뿐이예요. 아득한 지평선 위에 있는 목적지에 도달하려 하는 거예요. 그리고 너무 성급하게 목적지에 도달하려고 하기 때문에 숨이 차서 헉헉 거리며 지나치는 아름답고 조용한 전원의 경치를 하나도 못보고 말아요. 그리고 나서 비로소 깨닫는 것은 이미 자기가 늙고 지쳤다는 것과, 목적지에 도달하든 못하든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나는 길가에 주저앉아 작은 행복들을 산처럼 주어모을 생각이예요(진 웹스터 <키다리 아저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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