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은 느닷없이 시작된다.

- 혼자서 맞은 중년

by 백지성

남들은 도대체 어떻게 중년을 맞았을까?

지난밤도 역시나 자다 깨다가를 반복하다 늦은 아침 일어난 지성씨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거울을 보니 푸석푸석 너부대대한 얼굴에 헝클어진 머리, 아무렇게나 걸친 옷을 입은, 누가 봐도 50대의 아줌마가 떡 하니 서있었다. 그만 “누구세요?“ 할 뻔했다.


올해 54세가 된 지성씨! 가끔 나이를 떠올릴 때면 아직도 깜짝깜짝 놀란다. 내가 벌써? 이렇게 늙은거야? 지성씨는 50대가 된 자신을 어쩌면 진정으로 받아들이고 있지 않은 듯해 보인다. 자신이 삼사십대의 어느 모퉁이를 돌고 있는 줄 알고 지내다가 가끔 예기치 않은 사건들로 나이를 인식하게 된다. 지성씨는 50살이 되던 4년 전에 결혼을 했지만, 결혼 후에도 줄곧 주말부부로 살고 있어서 평일엔 여전히 혼자 산다. 여전히 혼자서 햇반으로 대충 식사를 해결하면서 하루 두 끼를 어떻게 때울까 고민하는 삶은 똑같다. 혼자 사는 삶이 그렇다. 멀리서 보면 화려한 싱글일지 모르지만 가까이서 보면 대충 먹고 대충 꾸미고 사는 자취생이다. 이건 50대나 20대나 마찬가지다. 오히려 젊었을 때는 직장이나 친구들 여기저기서 만나자는 일이 많아서 집에서 대충 때우는 일이 적었다. 혼자 산다는 것은 이렇게 나이가 들면서 더욱 집안에 틀어박혀 궁상맞아지는 면이 있는 듯하다.


11년 전인 43세에 대학에 자리를 잡을 때까지 다섯가지 종류의 별 관련 없는 직장을 전전하며 살았던 지성씨. 더욱이 30대 중반을 넘어서부터는 태평양을 오가며 이민용 캐리어를 쌌다 푸르기를 반복하면서 몇 년 일하다 몇 년 공부하기를 반복하였다. 남들보다 조금 많이 늦은 39세의 나이에 미국 대학 박사과정에 진학한 지성씨는 그렇게 동년배들과는 사뭇 다른, 노마드 같은 삶을 살아왔기에 나이를 미처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어느날 문득 ‘노화’라는 현실을 마주하게 되었다. 이게 중년인가? 더 이상 젊지 않은 자신을 인정해야만 할 것 같은 이런 좋지 않은 느낌...


남들은 중년을 어떻게 맞았을까? 어떻게 이 불편하고도 괴로운 갱년기를 넘겼을까 궁금해진다. 그리고 우리의 노화 선배들, 노인들은 어떻게 그런 고약한 세월을 견디고 노인이 되었을까? 그렇게 오랜동안 힘들게 살아왔으면서도 어떻게 80이 넘고, 90이 넘어서도 돌아가실까 봐 늘 불안해할까? 그렇게나 오래 살고 싶어 하실까? 정말 궁금하다.


씁쓸하고도 자못 궁금한 이런 질문은 사실 이미 40대 후반부터 시작됐다. 벌써 꽤 오래된 수면 장애에 이러저러한 몸이 보내는 불편한 증상들, 거기에 현저하게 약화된 기억력과 집중력, 그리고 여행이라도 다녀오면 며칠간 이어지는 피로라는 긴 후유증... 이런 저질 체력이 된 지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누구는 여성 호르몬제를 권하고, 누구는 운동을 열심히 하라고 한다. 티비를 틀면 갱년기 보조제 광고가 유독 귀에 들어온다. 그래서인지 안 먹어본 보조제가 없다. 아~ 중년이란 벌써 노화로 포획되어야 하는 나이인가? 아직 지루하게 기나긴 노년이 시작도 안 했는데 말이다.


그러다 문득 지성씨는 예전에 읽었던 중년에 관한 한 논문을 떠올렸다. 사람들은 흔히 노화하면 노인을 떠올리지만 실제로는 40대 중년부터 시작된다. 이런 인지할만한 노화는 중년에 시작되어 이후 노년기까지 완만하게 진행된다는 것이다. 누구나 다 알만한 성인병과 기능적 쇠퇴의 최초 발생 시기는 대부분 40-50대에 걸쳐있다. 지금의 지성씨가 경험하는 것처럼... 당시 그 논문을 읽을 때만 해도 아직 40세 초반이라 이렇다 할 노화는 경험해보지 못했던 지성씨는 당시 무척 새로운 진리를 발견 한양 신기해했던 기억이 있다.


어찌보면 이젠 상식에 가까운 이 진실은 막상 중년기에 현실로 맞닥트린 당사자들에게는 다소 충격적인 일이 된다. 대다수가 준비되지 않은 채 노화에 맞닥트리게 되기 때문이다. 아직은 본인이 생물학적 나이 보다, 남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훠~얼씬 젊을 줄 알고 살다가 어느 날 뒤통수 맞듯 알게 된다, 내가 이미 중년의 한가운데에 와있다는 것을... 그리고 생각보다 많이 늙었다는 것을...

중년은 이렇게 느닷없는 현실 인식으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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