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막 시작하려던 참이었다. 저번달부터 친구에게 추천을 받아 월요일부터 미리 구매해놨으니까, 이제 박스를 뜯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다 무언가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카톡이 왔나 싶어 휴대폰을 확인했지만 어느 알림도 없었다. 그러다 다시 그 소리가 들렸다. 작게 느껴졌던 소리는 점점 커지고 빨라졌다. 쿵쿵. 나는 밖에 누군가 왔나 싶어 현관문으로 향했다. 문고리를 잡기 직전까지도 그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쿵쿵. 문을 덜컥 열었더니 거대한 물체가 앞에 서 있었다.
또 너냐. 그것은 씨익 웃더니 무작정 몸부터 들이밀어 집으로 들어왔다. 나는 그것을 어설프게 막으려다 넘어져서 엉덩이를 바닥에 박았다. 아픔도 잠시 내 방에서 소리가 났다. 우당탕. 무언가 쏟아지는 소리였다. 다급하게 방으로 돌아갔더니 그것이 내가 방금까지 뜯으려 했던 상자를 뜯어 내용물을 방바닥에 흐트러 놓았다. 잠시만. 심장이 쿵쿵거렸다. 어찌나 크게 느껴졌는지 나는 순간 심장이 머리에 있나 싶을 정도였다. 그건 꽤나 불쾌한 경험이었다. 그것은 상자에 들어있던 내용물을 이리저리 보며 관찰했다. 그리고 나를 보더니 비웃기 시작하면서 땅을 쳐댔다. 쿵쿵. 집안이 다 울리는듯했다. 쿵쿵. 바닥을 치던 큰 손은 내 등으로 향했다. 너무 아파서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을 째려봤다. 하지만 큰 덩치로 웃고 있는 그것을 보니 겁이 났다. 역시 시작하는 게 아니었어.
그것과 나는 태어날 때부터 함께였다. 나는 기억에 없었지만 이렇게까지 친근하게 구는 걸 보면 어릴 때부터 함께했을 것이 틀림없었다. 부모님도 알고 있지 않을까, 나에게 이런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분명 부모님에게도 나와 비슷한 것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굳이 말하지는 않았다. 말한다고 해도 해결될 일은 아니었으니까. 그것과 어릴 때부터 함께했지만 좋은 추억이라곤 없었다. 워낙 거칠고 나를 비웃는 걸 좋아하는 녀석이어서 내가 무언가 실수할 때면 어김없이 나타나 큰 소리로 비웃었다. 내가 초등학교 때 선생님 앞에서 구구단을 외우지 못할 때도, 중학교 때 조장이 되어 발표를 할 때도, 고등학교 때 첫 시험을 볼 때도, 그저 옆에서 비웃기만 했다.
그 웃음이 얼마나 듣기 싫은 소리인지는 아마 이 글을 읽는 모두가 알 거라고 생각한다. 귀가 찢어질 거 같고, 유리같이 단단하지만 연약한 물체가 깨지는, 칠판을 심하게 긁는 소리와 비슷해서 나도 모르게 귀를 막아버리는 그런 소리. 나는 언젠가 그 소리에 익숙해지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성인이 된 지금도 여전했다. 아니 더 커지고 불쾌해졌다. 차라리 그것에게 먹혀버린다면 다른 사람의 이해를 받을 수 있을까, 애매하게 그것과 싸울 바에, 그러다 갑자기 왜 그러냐라는 소리를 들을 바에, 그냥 몸을 맡겨버린다면, 사람들은 그나마 나를 이해해 줄까?
그것은 여전히 내가 시킨 택배 상자를 보고 있었다. 여전히 듣기 싫은 웃음소리와 함께. 나는 숨을 셨다. 그것도 아주 크게. 그것에게 내 숨이 닿아 내 불편함을 조금이라도 느꼈으면 해서. 하지만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제는 이런 상황이 익숙해졌지만 동시에 지긋지긋했다. 나는 소리를 질렀다. 최대한 그것의 웃음소리보다 크게. 그래야지 눈길이라도 줄 거 같았다.
그러자 끼익거리는 웃음이 멈췄다. 그리고 나를 보더니 거침없이 달려들었다. 그것은 내 배를 한번 쳤다. 순간 숨이 안 쉬어졌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숨을 쉴 수 없었다. 이제 그것은 내 목을 조르고 있었다. 나는 발버둥 쳤지만 더 세게 조를 뿐이었다. 숨이 막히고 시야가 좁아지더니 점점 어두워졌다. 이러다 정말 죽는 게 아닐까 싶었다. 이렇게 허무하게. 하지만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아까운 게 많았다. 아직 해보지 못한 것도, 먹어보지 못한 것도, 만나지 못한 사람도 너무 많았다.
나는 발악했다. 당장 그것을 쓰러트릴 필요는 없어도, 내가 가진 것을 모두 사용해서 벗어나야 했다. 나는 주먹을 크게 휘둘렀다. 발도 가능한 길게 뻗었다. 그러자 그것도 움찔하더니 그제야 나를 놓쳤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빠르게 방을 나와 문을 잠갔다. 안에서 쿵쿵 거리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이러다 문이 부서지는 것이 아닐까 싶었지만 문은 부서지지 않았다.
나는 다시 숨을 셨다. 이번에는 아주 깊게, 덕분에 내가 아직 살아있음을 느꼈다. 그리고 냉장고를 열어 물을 마셨다. 다음으로 초코 케이크 한 조각도 집어먹었다. 무언가를 먹어도 진정이 되지 않아 잠시 이리저리 걸었다. 중간에 온 힘을 다해 달리기도 했다. 그러자 눈이 감길 정도로 피곤이 몰려왔다. 쿵쿵. 아직도 그것은 문을 부술 기세로 두드리고 있었지만, 그런 것이 아주 사소하게 느껴졌다. 나는 다른 방으로 들어가 잠을 잤다. 깨끗한 이불 안에 들어가 누웠더니 알아서 눈이 감기고 문을 두드리는 소음도 점점 작아졌다. 눈을 떴을 땐 집에 아무도 없었다. 그것은 집을 떠난듯했다. 내 방에는 분명 그것이 뜯어서 풀어놓았을 택배 상자가 온전히 남아있었다. 어느 것도 망가지지 않고 그대로였다. 나는 다시 상자를 들었다. 언제가 다시 찾아올 그것이 떠올랐지만, 그건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