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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쥬르 Jun 08. 2023

9. 실리콘밸리 타운하우스 문 한 짝을 사다

꿈의 첫 집 계약


다음 날 아침 눈을 떴다. 나에게 찾아온 첫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분명 처음에 봤던 집이 지금까지 살펴본 오픈하우스 중 가장 마음에 들었다. 들어서자마자 느꼈던 그린그린하고 포근한 첫인상도, 평화로운 동네 분위기도 좋았다. 자잘한 결함은 이사 들어가서 고쳐도 늦지 않을 것이다. 오픈하우스 방문 노트를 살펴보며 장단점을 정리해 보았지만, 이 타이밍에 이만한 매물을 또 찾긴 어려울 것이다. 발코니 터마이트(termite)는 셀러가 발코니 전체를 교체해 주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친 상태였다.


자잘하게 신경 쓰이는 문제가 있었음에도 그 집을 사기로 한 이유는, 내가 오픈하우스 방문 전 정리해 두었던 체크리스트 기준에 얼추 맞았기 때문이다.


1) 동네 위치: 차로 회사까지 30여 분,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까지 45분 내외 거리.

2) 집 구조: 2B2B 타운하우스, 작더라도 마당, 전용 주차장 있음, 방은 북향이었으나 거실이 남향이라 좋았다. 두 방이 붙어있는 건 아쉬웠으나, 한정된 자금으로 원하는 조건을 다 충족할 수는 없을 것이다.

3) 월 모기지 비용: 당시 소득으로 빠듯하지만, 다른 씀씀이를 줄이면 감당할 수 있었다.

4) 학군 Rating: 당시 Redfin에서 확인했던 rating이 초중고  6, 7, 8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5) 안전지수: 동네 안전지수도 좋은 편 (Area Vibes, Crime Reports, Next Door 등 웹사이트 확인)

6) 생활/문화 환경: 근처에 큰 쇼핑센터가 세 군데 있고 주변에 피트니스센터 등 문화시설도 꽤 있었다.


나의 결정은 ‘GO’였다. 


그날 오전 리얼터와 가격을 결정해 최종 오퍼를 넣었다. 금액은 리스팅 된 가격 그대로 가는 것으로. 성수기는 아니었지만, 경쟁 바이어가 있는 상황이라 가격을 깎을 수는 없었다. 리얼터는 지금 상황으로 보았을 때 굳이 가격을 올려 오퍼를 넣을 필요는 없을 거라고 했다. 대신 최종 오퍼를 넣은 후 바이어가 따로 인스펙션(Inspection) 하는 컨틴전시(Contingency)*는 걸지 않기로 했다.




최종 오퍼는 넣었고 남은 일은 다운페이(Down payment)** 할 비용을 한 곳에 모으는 일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미국에 남을지 한국에 돌아갈지 생각이 반반이었기에, 월급의 일부분을 한국으로 보내왔다. 그게 걸림돌이 될 줄이야… 한국 통장에 있는 돈을 송금하려면 부모님께 위임장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나는 위임장 도장을 받기 위해 하루 휴가를 내고 샌프란시스코 한국 영사관에 갔다. 줄이 길어 오후가 되어서야 일을 마치고 기차역으로 이동하는 길, 리얼터로부터 전화가 왔다. 


“지나씨, 축하해! 방금 최종 오퍼 수락되었다고 연락 왔어!”


“와, 정말요? 진짜예요?”


“다른 바이어가 더 높은 금액을 제시했는데 우리 쪽이 서류가 더 깔끔해서 그렇게 결정했다네~”


깔끔하다는 말은 은행 융자를 받기 위한 제반 서류뿐 아니라, 컨틴전시를 넣지 않은 것이 맘에 들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컨틴전시는 셀러에게 중요한 항목이다. 추가 홈 인스펙션을 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견되면, 바이어가 언제든 결정을 뒤집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셀러 입장에서는 컨틴전시를 철회하는 것이 반가울 수밖에. 물론 컨틴전시를 거는 것이 꼭 필요한 경우도 있다. 내 경우엔 디스클로저를 세세히 리뷰했고 집을 둘러본 결과, 인스펙션을 다시 할 만큼 큰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철회해도 괜찮다고 판단했다.


© 지나쥬르 via Midjourney


집을 찾은 날부터 최종 오퍼가 수락된 날까지 1주일도 채 걸리지 않았다. 실리콘밸리 부동산 시장이 아직 핫할 때라, 맘에 들면 누군가 낚아채기 전에 재빨리 움직여야 했다. 20여 일간의 서류 작업과 클로징(마감) 절차가 남아있었다. 송금을 위해 한국에도 위임장을 보내 놓았고 최종 오퍼가 수락되었으니 이제 반 이상은 왔다.


수많은 서류 절차를 마치고 마침내 D-day가 되었다. 집 융자 및 매매 서류가 모두 준비되어 공증인 앞에서 서명을 하는 날이었다. 아침 일찍 융자 담당자를 만나 부동산 클로징 절차에 대한 설명을 듣고, 공증인 앞에서 서류를 한 장 한 장 넘기며 사인했다. 서명하는 데만 15분이 넘게 걸렸다. 공증인이 모든 서류 절차가 끝났다며 봉투에 서류를 담아 자리를 떴다. 인사나 잡담 한마디 없이 엄숙한 분위기였다. 공증인이 떠나고 융자 담당자분이 말씀하셨다.


© 지나쥬르 via Midjourney


“첫 집 장만을 축하해요. 그것도 혼자서… 대단해요!”


“너무 감사합니다. 미국 융자 절차에 대해 하나도 몰랐는데 그동안 많이 도와주신 덕분이에요.”


“지금은 신경 쓸 필요 없지만 나중에 결혼하게 되면, 결혼 전 구매한 첫 부동산을 어떻게 본인 명의로 유지할 수 있는지 알려줄게요.”


당시 결혼 생각은 별로 없었지만, 이런 부분까지 짚어주는 융자 담당자분의 세심함이 감사했다. 내가 클로징까지 거쳐온 과정을 굵직한 이벤트 위주로 정리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한 달 넘게 오픈하우스를 보러 돌아다녔고, 매물을 결정한 이후로 클로징까지 한 달이 걸렸으니 총 두 달 정도 넘게 걸린 셈이다.


<오픈하우스 방문부터 클로징까지>


1. 오픈하우스:  달 동안 20여 군데 방문

2. D-30: 오픈 하우스 방문 중 맘에 드는 집 발견

3. 금액 정해 최종 오퍼 + 컨틴전시 철회

4. 셀러가 최종 오퍼 수락, 총금액 3% 디포짓

*2~4번 5일 소요

5. 클로징까지 집 주소는 ‘펜딩(Pending)’ 상태로 전환

6. 융자 절차 마무리 (예: 월세 납부 명세, 은행 잔금 명세 송부, 집 보험 결정)

7. 융자 담당자, 공증인 앞에서 문서 서명

8. 다운페이 총비용 에스크로(Escrot)*** 완료

9. 집 열쇠 수령

10. D-day: 산타클라라 카운티에 내 명의로 부동산 등록




타운하우스나 콘도는 싱글하우스만큼 집값이 빠르게 오르지 않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나처럼 첫 집 구매자로 입문하기 좋은 옵션이기도 하다. 집의 내부는 내가 관리해야 하지만 지붕, 외벽, 현관문, 수영장과 같은 집 외부는 타운하우스 관리소(HOA, Home Owner Association)에서 모두 관리해 준다. 물론 이에 대한 비용(HOA fee)이 있다. 내가 산 타운하우스 동네 구조는 스퀘어(square) 형태였다. 공용지역 소음이나 알람 소리가 나면 온 동네가 다 들을 수 있는 구조라, 비혼 여성에게 안전해 보였다. 소음이 때론 도움이 되기도 한다. :)


이 지역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캠벨(Campbell)이라는 동네가 나온다. 산타클라라 아파트에서 지낼 때, 가끔 플라잉 요가나 훌라후프 댄스 수업으로 이곳에 드라이브 오곤 했다. 이전 동네와는 달리 피트니스센터도 밀집되어 있고 자연환경 속에서 안정적인 일상을 누리는 느낌이 전해졌다.


San Thomas 고속도로와 17번 고속도로 근처 요가, 필라테스, 피트니스센터가 밀집되어 있다


집값이나 학교 rating과 같은 객관적인 수치도 중요했지만, 나의 선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집에 들어서자마자 느꼈던 따뜻하고 포근한 첫인상과 주변 동네에 대한 좋은 기억이었다.


그렇게 나는 실리콘밸리 타운하우스 문 한 짝을 샀다.


조금 과장을 보태자면 그렇고 ㅎㅎ 

20 퍼센트 다운페이를 했으니 이 집 주방 하나 정도가 내 것인 셈.

이제 열심히 일해서 모기지를 갚아 나가야 한다.

5년 동안 살았던 아파트를 정리하고 이사할 일이 남아있었다.


© 지나쥬르 via Midjourney




알아두면 쓸모 있는 미국 부동산 용어


1. *컨틴전시(Contingency): 한 마디로 바이어를 보호해 주는 안전장치. 부동산 매매 계약이 성공적으로 완결되기 전 바이어나 셀러가 계약서에 붙여 놓은 여러 조건, 이 조건이 만족되지 않으면 계약을 파기할 수 있다. 인스펙션 컨틴전시, 감정 컨틴전시, 융자 컨틴전시의 세 가지가 있다. (참고: 중앙일보 기사 1, 기사 2)


2. *다운페이(Down payment): 은행 모기지 대출을 제외한 현금. 예를 들어 100만 불 집이라면, 20퍼센트인 20만 불 현금을 다운페이로 지불해야 집을 구입할 수 있다. (참고: 코리얼티 USA)


3. ***에스크로(Escrot): 주택을 판매하거나 구입할 때, '에스크로(Escrot)를 오픈한다'라고 말하는데, 에스크로란 봉인된 두루마리(Scroll), 증서(Deed)라는 뜻으로, 매매에 관련된 제반 업무에 관해 서류 처리해 주는 중립적인 제삼자를 말한다. (참고: 중앙일보 기사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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