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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쿨한 언니의 따뜻한 잔소리

Scene 18. 몸이 내 마음 같지 않아

by 쏘쿨쏘영

며칠 전 두루마리 화장지 할머님으로부터 들었던,

‘몸이 내 마음 같지 않아. 하루하루가 달라’라는 말씀이 계속 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그 말씀을 하시는 할머니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렸고 흘러가 버린 세월에 대한 체념이 함께 섞여 있는 듯했다.


동시에 할머니의 눈빛은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아련함을 담고 있었다. 찰나에 스쳐 지나간 그분의 눈빛에서 내가 읽은 것은, 지나간 청춘 시절의 한 때를 회상하며 ‘그때는 그랬었지’ 하는 약간의 회한 같은 것이었다.


늙어 간다는 것.

하루하루 죽음을 향해 가까이 가고 있다는 것.

모든 살아있는 생명체의 숙명일진대, 스스로는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더 이상 청춘이 아님은 확실하게 알지만, 그렇다고 늙었다고 하기엔 뭔지 모르게 매우 억울한, 아직은 젊은 나이 50세.


한숨에 저물지 모르지만 아직은 저물지 않은,

밝은 낮과 어두운 밤이 동시에 울렁이는,

그 저물 듯 저물지 않는 어스름한 녁에 머물러 있는

해거름의 시간……


이라고 에쿠니 가오리는 그녀의 소설에서 묘사했다


저물 듯 저물지 않는 나이의 나에게 언젠가 마음속으로 질문을 던진 적이 있었다. 이렇게 덜 행복한 채로 살다 점점 스러져 갈 것인지를 물었다.


그리고, 그 질문을 던진 그날 이후로 나는, 나에게 주어진 하루를 더 잘 살아 내기 위해 홈 트레이닝과 다이어트를 병행하며 마음의 건강과 몸의 건강을 회복했다.


오늘도 마음의 건강, 몸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아침 산책길에 나선다. 연세 많으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불편하신 몸과 다리를 이끌고 아침 일찍부터 인도를 천천히 걸어 다니신다.


나도 언젠가, 몸이 내 마음 같지 않을 때가 온다.

저 할머니, 할아버지들처럼 빨리 걷고 싶어도 빨리 걸을 수 없는 때가 온다. 빨리 뛰고 싶어도 뛸 수 없는 인생의 어느 시점이 반드시 누구에게나 온다.


그러니, 그때 가서 후회하지 말고 지금 당장 오늘을 더 잘 살고 열심히 걷고 뛰며 넘치는 생명력에 감사하자.

우리 인생의 낮도 밤도 아직은 가거나 오지 않았다.

인생의 하루가 다 지나가 버린 것처럼 살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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