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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쿨한 언니의 따뜻한 잔소리

Scene 17. 어르신들께 친절하면 좋은 이유

by 쏘쿨쏘영

집 근처를 운동 삼아 산책 중이었다.

차도와 인접한 큰 마트 앞 횡단보도에 도착해서 보행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횡단보도 앞 인도에서 보행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중, 어느 할머니의 모습이 내 눈길을 끌었다.


3겹 두루마리 화장지 30 롤들이 1백을 힘겹게 들고 어쩔 줄 몰라하고 계셨다.

머리 위에도 올려 보셨다가 또 내려도 보셨다가, ‘곧 있으면 보행 신호가 울릴 텐데 어떻게 하지?’ 하는 걱정과 근심이 뒷모습에서도 보였다.


보행 신호를 기다리는 다른 사람들은 그런 할머니의 모습을 주의 깊게 살펴볼 수 없는 위치였고, 난 다른 사람들과 달리 할머니의 뒷모습을 살필 수 있는 자리였다.



나는 앞으로 걸어가 할머니께서 잡고 계신 화장지 손잡이를 말없이 끌어당겨 내 손에 잡아 쥐었다.


약간 당황하신 듯 할머니는 괜찮다고 하시며 한번 사양하셨으나, 내가 화장지 손잡이를 잡아 들고 때마침 바뀐 보행신호에 맞춰 앞으로 걸어가며, ‘저기 앞까지 들어 드릴게요’라고 말씀드리자, 이내 나를 따라오셨다.


화장지를 들어보니, 아무리 두루마리 화장지라 할지라도 프리미엄 3겹을 자랑하는, 심지어 향기까지 첨가된 도톰한 화장지 30 롤의 무게는 할머니께는 조금 무리인 듯싶었다.


“어머니, 댁이 어디세요? 이거, 생각보다 무거워서 횡단보도만 건넌다고 될 일은 아닌 것 같아요. 댁 근처까지 들어 드릴게요.”


나는 어차피 할 일 없이 동네 산책 중인 백수 아줌마이니까, 운동 삼아 걸어갈 만했다. 할머니께서는, 다행스럽게도, 나의 친절을 받아 주셨다.


화장지를 들고 가면서, 할머니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어머니, 이렇게 무거운 건 가능하면 마트 배송 서비스로 받으세요. 무거운 거 들고 다니시다가 다치세요.”


마트는 3만 원 이상 구매해야 배송해 준다며, 할머니는


“집에서 나올 때만 해도, 난 이거 정도는 들고 갈 수 있을 줄 알았지. 근데, 몸이 내 마음 같지가 않아. 하루하루가 달라.”


터벅터벅 약간 굽은 자세로 힘없이 걸어가시면서 말씀하신다.


몸이 내 마음 같지가 않다는 할머니 말씀에, 엄마가 생각났다. 엄마도 요즘 부쩍 그런 말씀을 많이 하신다.

마음이 짠해지면서, 동시에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게 하는 어르신들의 말씀이다.


“아님, 어머니, 인터넷이나 홈쇼핑으로 구매하시면 괜찮지 않을까요?”

“아, 그건 너무 양이 많아서 놓아둘 곳이 없더라고…….”


네, 그건 그렇죠라고 나는 맞장구쳐드리며,

“아님, 자녀분들한테 부탁하시지.”라고 말해본다.

애들은 모두 외국에 나가 사신단다.


연신 미안해하시고 고마워하시길래, 할머니 마음 좀 편하게 해드려야겠다 싶어,

“저는 어차피 운동 중이라서 댁 근처까지 가도 전혀 문제없어요.”라고 안심시켜 드렸다.



어느덧, 할머니 댁 근처에 도착했다. 거기서부터는 당신이 할 수 있겠다 하시며 화장지를 건네받으셨다.


“고마워요, 아가씨. 얼굴도 예쁜데 마음씨도 예쁘네. 복 많이 받으셔.”

어르신들의 칭찬은 언제 들어도 기분 좋은 법이다.


아유, 제가 더 감사합니다,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하고 인사를 드렸다. 그리고 나는 못다 한 운동을 계속하러 내 갈 길을 재촉했다.



내 손을 그분 집 앞까지 빌려 드렸다.

그리고, 난 그 답례로,

아가씨로 불렸고,

얼굴도 예쁜데 마음도 예쁘다는 생전 처음 들어본 칭찬을 들었고,

복 많이 받으시라는 좋은 말씀도 들었다.

그리고, 심지어 걷기 운동으로 칼로리도 소모했다.

내가 얻은 것이 압도적으로 더 많았다.


여러분,

어르신들께 작은 친절을 베풀면 이렇게나 은혜롭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내게 하신

‘몸이 내 마음 같지 않아, 하루하루가 달라’라는 말씀을 그날 계속 곱씹어 보았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화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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