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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아당 Aug 25. 2024

진짜배기 선물

행복한 선물

 딸이 중학교 2학년 때 일이다. 수학여행을 제주도로 간다는 것이다. 상기된 표정을 보니 친구들과 떠나는 여행이 무척 설레는 모양이다. 난생처음 비행기 탈 생각을 하니 가슴이 떨린다고 했다. 순간 한 생각이 스쳤다. 지금도 가정형편이 어려워 수학여행을 못 가는 아이가 있는가 하여 물었더니, 예상치 못하게 한 학생이 있다는 것이다.

"엄마, 경아(당연히 가명입니다)는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고 할머니랑 사는데 급식비도 잘 못 낸다고 들었어요."

"요즘도 그런 사람이 있나 보네. 그 친구 수학여행 경비를 엄마가 줄 거니까 담임선생님께 갖다 드리라. 그 친구에게는 누가 주었다는 것을 비밀로 해달라고 하고."

 형편이 많이 어렵다고 하여 용돈을 보태서 넉넉하게 보냈다.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수학여행은 속리산으로 갔다. 힘들게 일하는 엄마의 모습을 늘 뒤에서 안타깝게 바라본 나는 아예 수학여행 간다는 말조차 하지 않았다. 여행지로 출발하는 버스를 바라보며 남은 친구들 몇 명이랑 하동 송림에 소풍을 갔다. 섬진강의 넓은 백사장과 소나무는 그때나 지금이나 아름다웠으나, 푸른 솔 아래 우리는 즐기지 못하고 어색한 침묵만 흘렀다. 수학여행을 가지 않은 후폭풍은 뒤에 나타났다. 거의 한 학기를 수학여행 때 있었던 재미난 이야기로 친구들의 대화가 이어졌다. 친한 친구가 자기도 모르게 수학여행 때 밤새도록 잠도 안 자고 춤추고 노래부르며 놀았던 이야기를 하다가 멈칫 중단할 때 오히려 내가 머쓱해지기도 했다. 수학여행을 가는 것이 친구들과 마음을 나누는데 끊임없는 소재로 오래도록 지속된다는 것을 잘 알기에, 그 친구가 친구들과 추억 속에 함께 있기를 바란 마음이었다.


 딸이 수학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며칠 후, 선생님이 전해주더라며 편지 봉투를 하나 내밀었다. 그 속에는 하트 모양의 열쇠고리 하나와 편지가 들어있었다.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런 내용이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경아라고 합니다. 제가 수학여행을 못갈뻔했는데 도와주셔서 가게 되었습니다.제게는 선물과 같았어요. 저도 커서 누군가에 나눠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감사드려요."

 경아가 편지에서 쓴 '선물'이 되었다는 표현을 읽고, 내가 수학여행을 다녀온 듯한 뿌듯함에 행복감이 밀려왔다. 경아는 선물로 받아들이는구나.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행복의 주파수가 맞아 훈훈해지는 것이 진짜배기 선물이구나.


 진짜배기 선물은 오헨리의 '크리스마스 선물'에서 볼 수 있지 않을까. 서로 사랑하지만 가난한 부부, 크리스마스가 다가오자 서로가 서로에게 선물을 주기로 마음먹는다. 아내는 아끼는 금발을 잘라 남편의 시계줄을 사고, 남편은 시계를 팔아 예쁜 머리빗을 산다. 그들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을 주기 위해 가장 소중한 것을 팔았다. 받은 선물을 사용할 금발도, 시계도 사라졌지만 아내는 말한다. 금발머리는 금방 자랄 거니 걱정하지 말라고. 남편은 우리 깊은 사랑을 선물로 받았으니 행복하다고 한다. 그들은 서로 가장 큰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았다며 행복해한다. 나는 선물을 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언제나 오헨리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되새긴다.


 우리는 가끔 뇌물이나, 교환, 거래, 변제의 의미로 주고받는 것을 선물이라 하기도 한다. 대가를 바라고 주는 것이다. 이 물건을 줄거니 내가 원하는 것을 달라, 내가 저지른 잘못을 용서해라, 값어치를 해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는 것은 결코 마음과 마음을 연결하지 못한다. 나는 이런 것들은 선물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그저 단어 그대로 뇌물이고 교환이고 거래고 변제다.

 언젠가 본 텔레비전 프로그램 '금쪽같은 내 새끼'에서 화를 참지 못하는 아빠가 아들을 때려놓고, 다음 날 아들이 평소 갖고 싶었던 장난감을 사다 주며 "자 선물이다."라고 하였다. 아들은 두려움에 받았지만 방안에 들어가서 장난감을 침대 위에 내동댕이 치는 것을 보았다. 가끔 목적이 있는 기부도 본다. 불우아동에게 장학금을 준다는 명분으로 아이의 신상까지 떠벌리면서 수여식을 대대적으로 하고 사진을 찍어 영원히 남을 기사로 싣기도 한다. 한창 예민할 시기의 아이가 받을 상처는 아예 안중에 없다. 그들의 마음 중심에는 되돌려 받을 대가가 있을 뿐이다.  


 진짜배기 선물은 선물 받을 대상자가 마음의 중심에 있다. 대가 없는 건넴이다. 아무런 요구가 없다. 주어도 주어도 부족한 것이 선물이다. 그러니 자랑할 것이 없다. 진짜배기 선물은 자연이 우리에게 값없이 주는 물, 공기, 바람, 햇빛처럼 자연스럽다. 진짜배기 선물은 노둣길처럼 마음과 마음이 맞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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