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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안 Sep 07. 2023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결혼했다.


요즘 남편과 돌싱글즈를 즐겨본다. 이 예능 프로그램은 이혼한 남녀들이 새로운 사랑을 찾는 과정을 그린다. 그중 한 여성 출연자가 펑펑 울면서 인터뷰한 장면이 있다. 한눈에 봐도 매력 넘치고 능력까지 갖춘 멋진 여성이었는데 말하는 내용은 정반대였다.


“제가 다른 분야에선 자존감이 높은데 연애 분야에서는 자존감이 엄청 낮아요. 이혼을 미뤘던 이유도 ‘누가 앞으로 나랑 데이트를 하지?’라는 걱정 때문이었어요.”


이 장면을 본 남편은 나에게 말했다. “저분도 너 같은 사람을 만나면 사랑받고 행복할 텐데, 안타깝네. 나도 너를 만나기 전까지는 내가 진짜 사랑받고 결혼할 수 있을 거라 생각 못했어. 모아 놓은 돈도 없고, 능력이 엄청 뛰어난 것도 아니고. 게다가 장애인 누나를 가족으로 받아 줄 여자가 있을까 두려웠어. 핏줄인 나도 누나라는 존재가 버겁고 힘들 때가 있으니까. 근데 너는 너무 순수했어. 나보다 좋은 학교도 나오고 부족할 거 하나 없는데도 ‘오빠만 있으면 돼.’라고 하는 너를 보면서 진심일까 의문이 든 적도 있었어. 그런데 정말 편견 없이 나랑 내 가족을 봐주는 너랑 연애하면서 자존감이 높아졌어. 나랑 살아줘서 고마워.”


내 장점이자 단점이 바로 그 점이다. 이 놈이 순진한 나를 귀신같이 간파해서 급하게 결혼을 진행시켰나 보다. 나는 공부만 열심히 했지 생각보다 순진한 구석이 있다. 낙천적인 편이고, 어떤 사람이나 상황을 직접 경험하기 전까지는 짐작해서 편견을 가지는 법이 없다. 그래서 연애할 때 남편은 걱정스럽게 가족에 대해 이야기해도, 나는 사랑이 밥 먹여주는 줄 알았다.


하지만 나 역시 아무 생각 없이 결혼에 속도를 낸 건 아니다. 인생을 걸고 하는 결혼이니까 나름대로 열심히 계산기를 두드렸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가족은 배우자뿐이다. 부모도 형제자매도 자식도 선택할 수 없다. 직접 결정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가족이 바로 남편이다.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그런데 고르고 고른 게 이 모양 이 꼴이다. 오해는 없길 바란다. 난 여전히 남편을 끔찍이 아낀다. 가끔 너무 소중해서 어디 꼭꼭 숨겨놓고 찾고 싶지 않을 때가 있을 뿐.


내가 남편을 고르는 기준은 아빠였다. 어쩔 수 없이 나도 여자이기에 엄마 쪽에 더 감정이입을 하며 살아왔다. 그래서 엄마를 힘들게 한 남편과 시댁 특징이 내 결혼 상대 필터링 기준이었다.


첫째, 시부모님 성품. 둘째, 시댁 경조사 횟수. 셋째, 시댁의 경제적 상황. 넷째, 남편과 시어머니의 상호작용 방식. 이 네 가지 기준이 중요했다. 할머니가 엄마를 고되게 시집살이를 시킨 점, 엄마 혼자 온갖 시댁 경조사를 챙긴 점, 형편이 그리 좋지 못한 집의 장남인 아빠와 결혼한 이유로 시댁까지 경제적으로 부양해야 했던 점, 아빠가 중간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점들이 부모님의 결혼생활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똑똑히 목격하며 살아왔다. 결국 나도 내가 경험한 걸 기준으로 결혼에 대한 가치관을 정립해 왔다.


만일, 엄마의 시댁에도 장애인 가족 구성원이 있었고 엄마가 그걸로 힘들어하시는 상황을 봤다면 내 기준도 달라졌을 거다. 그랬다면 아마 나도 시댁 구성원 중 장애인은 절대 없어야 한다는 결혼의 기준을 세웠을 거다. 장애인을 비하하거나 사회 이슈를 논하려는 게 아니다. 단지, 장애인 가족 구성원이 있는 가정에 존재하는 어려움이 분명 있다는 점을 말하려는 거다. 그리고 그 상황을 잘 감내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능력이 부족한 사람도 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나는 직접 경험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편견이 없다. 그러니 결혼 전까지는 장애인 가족 구성원으로 인해 불편했던 경험을 해 본 적이 없으니 편견도 없었다. 남편은 누나의 존재를 나에게 알리는 게 두려웠겠지만, 그 당시 나에게 그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어쨌든 내게 중요한 기준은 처음 말했던 네 가지다. 결혼하면 둘만 행복할 수 없다는 걸 이미 알았기에 이 조건들을 따지고 따졌다. 나름 야무지게 계산기를 두드렸는데, 지금 보니 내 계산기는 고장 나도 보통 고장 난 게 아니었나 보다.


사실 나는 연애의 시작이 어려워서 늦게까지 모태솔로였다. 이성과 대화하면서 이 기준에 어긋나는 낌새가 조금이라도 보일라치면 도망치기 바빴다. 결혼할 사람을 찾아서 연애를 하고 싶으니 앞 뒤가 맞지 않는 거다. 일단 연애부터 시작해야 상대가 결혼해도 될만한 사람인지 판단을 할 텐데 말이다.


20대 중반이 넘어가도록 연애를 시작조차 못하니까 이제 나에게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애에 관심이 없거나 비혼주의자라면 딱히 문제 될 게 없다. 하지만 나는 연애에 관심도 많고 결혼도 하고 싶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모태솔로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문제라고 생각했다. 이쯤 되면 “안” 한 게 아니라 “못” 한 거다. 나는 자기 객관화는 잘 되는 편이다. 그래서 이대로라면 지금은 어릴지 몰라도 언젠가 노처녀 급행열차를 타고 지금 이 시간들을 후회할 것 같았다.


주변 선배 언니들은 능력이 차고 넘친다. 하지만 어느 정도 경제적 안정을 찾고 나서 둘러보니 좋은 놈들은 누가 다들 채가고 없다고 불평하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봤다. 너무 많은 것을 계산하다가 인연을 놓치는 경우도 봤고, 타이밍이 맞지 않아서 결혼까지 가지 못하는 경우도 꽤 봤다. 


언제나 그렇듯 “설마”하는 마음이 사람 잡는 거다. “혹시”는 곧 “현실”이 된다. ‘혹시 나 노처녀 되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면 그 걱정은 현실이 될 수 있다. 나라면 특별히 다를 거라 생각하고 안일하게 대처하는 순간 그건 바로 내 일이 되는 거다.


그때부터 마음을 바꿔먹고 주변에도 좋은 사람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 후 첫 소개팅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물론 인생의 첫 소개팅은 아니고, 마음을 고쳐 먹은 후 하게 된 첫 소개팅이라는 뜻이다. 


또 하필이면 연애를 곧잘 하던 친언니한테 소개팅 전날 특훈을 받았던 게 화근이었다. 모태솔로인 동생이 연애하고 싶다고 울고불고 하니 언니 입장에서는 나름 열심히 설명해 주고 옷도 코디해 줬다. 생전 입지 않는 원피스를 입고 뾰족구두를 신고 나가라 했다. 연애 한 번 못해본 나 같은 놈은 연애해 본 놈 말을 듣는 게 맞다. 그리고 언니는 두 가지를 나에게 교육시켰다. 


“첫째, 호응을 열심히 해줘라.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둘째, 남자 외모 너무 많이 보지 마라. 눈을 대충 흐리게 뜨고 상대방 눈, 코, 입이 각각 제 자리에 주차만 잘 되어 있으면 된 거다. 입맞춤하는 걸 상상했을 때 토 나올 거 같은 생각만 안 들면 괜찮은 외모다. 우리가 뭐 연예인도 아닌데, 다 생긴 게 거기서 거기지.”


언니는 대체 어떤 연애를 해 온 걸까. 리스펙!


아무튼 세뇌 교육을 단단히 받은 나는 속으로 주문을 외우면서 소개팅에 나갔다. “상대방이 나쁜 사람만 아니면 계속 만나 보자. 매번 한 번 만나고 끝났잖아. 일단 알아가 보자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하필이면 이런 각오까지 단단히 하고 나가버렸다.


남편 얼굴을 처음 봤을 때 언니 말대로 일단 눈, 코, 입이 제 자리에 잘 붙어 있었다. 사지도 멀쩡했다. “그래 이제 훈련한 대로 호응만 잘해주면 돼. 그럼 나도 애프터 신청받을 수 있다. 아자아자 파이팅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교육해 준 언니나 그걸 따라서 연습한 나도 참 가관이다.


당시 소개팅에서 남편이 볼링 이야기를 하면 “우아~ 저도 볼링 배우고 싶어요.”라고 하고, 맛집 이야기를 하면 “우아~ 저도 거기 가보고 싶어요.”라고 하고, 군대 이야기를 하면 “우아~ 정말 신기해요.”라고 했다. 남편의 말 끝마다 나는 좋다고 물개박수까지 치면서 맞장구를 쳤다. 후일담인데, 남편은 그때 내가 본인에게 첫눈에 빠진 줄 알았다고 한다. 남자 속이는 거 참 쉽다.


하지만 결코 난 남편에게 한눈에 반하지 않았다. 사실 그때 나는 남편을 보면서 속으로 “음… 체구가 너무 크다… 머리 스타일은 왜 저 모양이지… 머리에 양배추를 얹고 온 건가… 그래도 뭔가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아차차, 지금 이게 중요한 게 아니지. 그래 일단 눈, 코, 입은 다 제자리에 달려 있네. 이제 언니 말대로 뭔 소리 하는지 잘 몰라도 일단 리액션이나 열심히 하자.”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한두 번 만나다 보니 비로소 사람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의 첫 연애가 시작됐다. 이제 연애를 시작했으니 결혼할만한 상대인지 판단해야 했다. 속전속결이다. 모든 게 만족스러울 수는 없으니까 나는 위의 네 가지 기준만 생각했다.


연애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남편이 본인 부모님께서 나를 궁금해하신다고 했다. 하지만 나를 당장 만나시겠다는 뜻은 아니었는데, 내가 그냥 그 떡밥을 확 낚아챈 거다. 왜냐하면 나는 예비 시부모님이 될지도 모르는 분들을 미리 평가해 볼 좋은 기회라 생각했다. 사랑에 더 깊게 빠지기 전에 남자친구의 부모님이 시부모님으로서 어떨지 나도 판단할 필요가 있었다. 


며느리도 시부모님을 통과해야 하듯, 시부모님도 아들을 결혼시키려면 며느리를 통과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남편이 아무리 좋아도 결혼은 결국 가족 간의 결합이다.


첫째, 시부모님 성품은 온화하셨다. 둘째, 이미 어머니 본인도 시댁과 사이가 별로 좋지 않으셔서 거리를 두고 계셨다. 만일 내가 아들과 결혼하면 본인 시댁 일은 본인 선에서 다 처리해 주신다 하셨다. 셋째, 시부모님께서 특별히 금전적인 어려움이 없으셔서 자식이 경제적으로 부양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었다. 넷째, 남편이 어머니 말씀에 모두 네네 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할 말은 하는 스타일이었기 때문에 결혼하면 중간 역할을 어느 정도 맡겨도 되겠다 싶었다. 착하기만 한 효자는 필요 없다. 아빠를 보면서 학습했다. 그저 착하기만 한 효자는 끝이 좋지 못하다. 할 말도 할 줄 알면서 도리를 다하는 효자는 그나마 봐줄 만하다. 할 말도 제대로 못 하면서 희생만 하는 효자는 필요 없다.


이제 이 남자와 결혼해도 같이 살면서 내가 골머리 앓을 일은 없을 거라 낙관했다. 단단히 잘못된 생각이었다. 누군가 결혼은 현실이라 했다. 나도 결혼은 현실인 걸 잘 안다. 하지만 언제나 상황은 바뀔 수 있다. 현실도 변하는 거니까. 내 경우에도 결혼 후 벌어진 예상치 못한 상황은 차고 넘친다. 


하나 예를 들자면, 아버님의 암 진단이다. 우리가 결혼하자마자 시아버지께서 암 투병을 시작하셨고 수술 경과가 좋지 못해 3년 만에 돌아가셨다. 제아무리 깐깐한 잣대로 배우자와 시댁을 고른다 한들, 인력으로 어쩔 수 없는 상황들이 닥치면 인간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기도 한다. 그리고 고작 1년 만났는데,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을 어찌 다 알겠는가. 나의 결혼생활에서 시댁과의 관계로 남편과 다툴지는 꿈에도 몰랐다. 발목이 단단히 잡혀버렸다.


지금 보면 섣부르게 판단해서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결혼하긴 한 것 같다. 하지만 그때가 아니면 난 아마 아직도 인연을 찾느라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을 거다. 분명 내 결혼에도 아쉬움은 있다. 그래도 난 생각한다. 결혼은 타이밍이다. 그 시절 그 순간 내가 판단해서 결정했으니, 다시 돌아가도 그때 그 시절의 나는 같은 선택을 했을 거다. 


지금은 더 나이가 들었고 경험도 많아져서 그때의 내가 못 보던 걸 지금의 나는 볼 수 있게 된 것뿐이다. 남편도 본인과 살아줘서 나에게 고맙다 했듯이, 사실 나도 나랑 살아주는 남편에게 고맙다. 5년 전의 나에게는 분명 지금의 남편이 필요했고, 이 사람이 아니면 절대 안 된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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