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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안 Sep 08. 2023

결혼은 결국 현실도피다.


현실도피의 사전적 의미는 ‘현실에 적극적으로 맞서기를 회피함’이다. 살다 보면 가끔 현실을 회피하고 싶다. 1년 365일 매일 그런 건 아니다. 힘든 시간을 거치거나 혹은 인생이 만족스럽지 않을 때 그렇다.


결혼도 결국 현실도피다. 사전적 의미와는 조금 다른 표현이다. 현재보다 약간이라도 더 기대되는 다른 세상으로 이동하고 싶다는 의미다. 결혼은 필수가 아니라고들 한다. 말 그대로 선택해도 되고,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선택하는 건 뭐 하나라도 더 나은 게 있어서다. 현재의 모든 면에서 100% 만족한다면 그 현실이 바뀌지 않기를 기도하는 게 사람 마음이다. 


연애로 충분하지 않으니 결혼을 하는 거다. 조금 더 안정적이고 싶어서, 행복하고 싶어서, 부모님 잔소리를 듣기 싫어서, 연인과 더 많은 일상을 공유하고 싶어서, 아이를 갖고 싶어서, 결혼 적령기라서. 이 외에도 다양한 이유가 있겠다. 나와 남편 역시 더 나을 것 같은 세상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게 결혼이다. 하지만 각자 이유는 사뭇 다르다. 


남편은 나를 만나고 웃을 일이 많아져서 좋아했다. 나는 헛소리하면서 장난치고 노는 걸 좋아하고 또 잘한다. 작은 것에도 행복을 잘 느끼는 편이다. 뜬금없는 소리도 잘하고 19금 개그에는 도가 텄다. 사람에 대한 관심이 많고 어른들과 대화도 곧잘 한다. 감정 표현도 지나치게 잘한다. 미안하다, 고맙다, 존경한다, 사랑한다.


남편은 조용하고 차분한 가정에서 성장했다. 어릴 적부터 집안은 아픈 누나를 중심으로 움직여서 본인이 주인공이 된 적은 거의 없다. 어리광 부릴 기회가 없었다. 자신도 어렸는데 누나를 돌봐야 하는 상황도 생겼고, 부모님을 더 힘들게 하면 안 된다는 책임감이 일찍 생겼다. 마음이 힘든 날에는 방에서 혼자 생각에 잠기거나 울었다고 했다. 어머니는 삶의 기준이 높으신 편이라 그 기준이 조금 버겁게 느껴졌다고 했다. 그래서 집에서 가족끼리 편하게 깔깔거리며 웃고 떠든 기억은 부족하다.


그런데 나 같은 여자를 만나 새로운 세계를 봤다고 한다. 어디서 쪼그마한 여자 애가 나타나서 별 것도 아닌 일에 혼자 재잘거리면서 웃고, 늘 오빠가 최고라며 고맙고 사랑한다는 말을 매일 해줬다고 한다. 그럴 때면 본인도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 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부모님과 식사하는 자리에서도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잘해서 “이 사람과 함께라면 내 인생에도, 우리 가족 삶에도 웃음이 가득하겠다. 이제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게 나아갈 수 있겠다.”라는 생각에 결혼을 결심했다고 한다.


나는 다른 이유로 결혼이라는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나는 완벽주의 성향이 강하고 예민하다. 가정에 경제적으로 기복이 있었고 부모님이 고생하시는 모습을 보고 컸다. 그래서 부모님께 손 벌리지 않고 얼른 커서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압박감과 책임감이 센 편이었다. 또 부모님께서는 서로 성향이 다르셔서 의견 충돌이 많은 편이었다. 부모님끼리 갈등을 대화로 해결하시는 모습을 잘 보지 못해서 이 부분에서는 보고 배운 게 부족하다. 그래서 가족끼리 의견 다툼이 생기면 극도로 히스테리적이 된다. 성격이 급하면서도 소심해서 눈앞에 닥친 문제가 빨리 해결되지 않으면 우울한 동굴 속으로 파고 들어갈 때가 있다.


그런 나도 남편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구경했다. 가끔 가족에게도 쉽게 털어놓기 어려운 이야기가 있다. 서운해할까 봐, 싸움이 될까 봐, 걱정할까 봐, 슬퍼할까 봐, 부담될까 봐 등이 이유다. 지금의 남편을 만나고 새로 알게 된 게 있다. 비밀보장이 확실한 동년배의 친구에게 필터링 없이 나의 비밀스러운 속마음을 드러내는 것 자체로도 엄청난 위로가 된다는 점이다.


남편은 큰 욕심이 없는 사람이다. 그 점이 좋고 편했다. 나는 부러움이 많은 사람이라 스스로 남들과 비교하며 상대적 박탈감을 종종 느낀다. 사람에게 상처도 쉽게 받는 편이다. 하지만 남편을 만나고 내가 가장 많이 들은 말은 “그럴 수 있겠다.”였다. 큰 위로가 됐다. 매번 그런 건 아니었지만, 가족이나 친구에게 이야기하면 “너무 그렇게까지 예민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될 거 같아. 너무 깊게 생각하면 힘들 수도 있으니까.”라는 말을 듣곤 했다. 하지만 그 당시 남편은 내가 어떤 고민을 털어놔도 항상 “너 입장에서 그럴 수 있었겠다.”라고 말해줬다. 참고로 남편이 된 지금은 그렇게 말해주지 않는다. 요즘 남편이 나에게 자주 하는 말은 “왜 또 그래~ 나 좀 살게 제발 가만히 내버려 둬.”다. 그래도 내가 가장 힘든 시기에 옆에서 든든하게 있어줬던 기억으로 봐주고 살아야지 어쩌겠나.


요약하면, 나는 작은 행복이 찾아와도 큰 행복으로 느끼고 작은 불행이 찾아와도 큰 불행으로 느끼는 사람이었다. 남편은 작은 행복이 찾아오면 언젠가 사라질 수도 있다고 느끼고, 작은 불행이 찾아올 때는 살다 보면 그런 날도 있다 생각하고 일상을 잘 지내는 스타일이다.


바로 이 포인트에서 우리는 서로 보완이 됐다. 남편은 행복을 만끽하지 못하고, 나는 불행에서 잘 헤어 나오지 못했다. 하지만 남편에게 좋은 일이 있을 때마다 나는 마치 온 우주에 축제가 열린 듯 축하해 주고 오히려 내가 더 기뻐했다. 남편은 인생의 만족도와 자존감이 높아졌다. 반대로 내가 난관에 부딪히고 괴로워할 때마다 남편은 든든하게 옆을 지켜줬다. 아무렇지 않게 디저트를 공수해 주고, “내가 다 먹여 살릴게.”라는 식으로 자기 일상을 살아갔다. 나도 이제 힘든 일이 찾아와도 금세 회복할 수 있게 됐다.


그렇게 서로 조금씩 보완해 주면서 새로운 즐거움과 안정감을 느끼는 연애를 했다. 그리고 둘이 함께 손을 맞잡고 결혼이라는 새로운 세상의 다리를 건너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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