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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안 Sep 08. 2023

내 결혼은 특별할 줄 알았다. 개뿔이다.


결혼은 새로운 가족과 일상을 지내는 과정이다. 별나라나 달나라로 이동한 게 아니다. 상담심리학에는 “가족 신화”라는 개념이 있다. 가족 전체가 공유하는 허구의 믿음이라는 뜻이다. 많은 사람들이 가진 대표적인 가족 신화는 “가족은 화목해야 한다.”는 거다. 가족은 끈끈하고 사랑이 넘치고 상처도 주지 않고 화목해야 한다는 신념이다. 이 신념 때문에 가족 간에 다툼이 생기면 “이게 무슨 가족이냐.”, 상처되는 행동을 하면 “가족끼리 왜 그러냐.”라는 말이 쉽게 툭 내뱉어진다. 하지만 이게 바로 가족에 대한 잘못된 믿음이다.


아무리 가족이라도 화목하기만 할 수는 없다. 가족 구성원 간에도 경계가 있다. 있어야 한다. 성향도 가치관도 다른 사람들이 모여 살며 서로 충돌하는 게 당연하다. 원래의 가족과 30년 가까이 같이 살았어도 늘 의견 차이가 있었다. 부모님도 형제자매도 마음에 안 들 때는 많다. 그렇다고 쉽게 연을 끊지는 않는다. 하물며 핏줄인 가족과도 이루지 못한 신화를 남편과 이루겠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남편은 신화적인 존재가 아니다. 결혼을 하더라도 가족 신화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 남편과 나는 다른 인격체다. 싸워야 할 때는 싸우면 된다. 그래도 여전히 우리는 가족이다. 단, 늘 마음에 새겨야 하는 변함없는 사실이 하나 있다. 내 편일 때나, 원수 같을 때나 속된 말로 “저 망할 놈이 내 남편”이라는 거다.


우리는 결혼에 지나치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그도 그럴 것이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주인공이 되어 결혼식이라는 큰 축제가 열리기 때문이다. 언젠가 무대공연을 하는 가수가 집에 돌아오면 공허함이라는 감정 때문에 힘들다고 한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결혼도 비슷한 게 아닐까. 


우리는 결혼식에서 인생 처음으로 가장 크고 화려한 행사의 주인공이 된다. 준비하는 과정부터 결혼식까지 엄청난 축하를 받고 신혼여행을 다녀오면 또 가족과 친구들에게 인사도 전하고 시끌벅적 집들이도 한다. 모든 기간을 합치면 못해도 1년이 훌쩍 지나간다. 그 시간에 흠뻑 젖어 살다 보면 모든 행사가 마무리된 후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올 때 괴리감이 느껴진다. 큰 자극에 익숙해져서 다시 일상으로 온전히 돌아오는 데 시간이 걸린다.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오기까지는 조금 더 시간이 걸린다. 성대한 축제가 막을 내리고 신혼생활에 접어들면 이제 기싸움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나도 그 당시에는 기싸움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서로 맞춰가는 과정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5년이 지난 지금에서 다시 신혼 때를 돌아보니 그냥 그건 기싸움에 불과했다. 그 덕분에 우리 부부에게도 웃으며 추억할 사건이 있다. 생각만 해도 어이없는 “공포의 현관문 교체 사건”이다.


결혼하고 1년이 채 되지 않은 어느 금요일 저녁이었다. 남편은 퇴근 후 친구들과 저녁 약속이 있었다. 나는 남편이 친구들과 잘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고 권장한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오직 약속을 지키는 것이다. 자정에 들어오든 외박을 하든 그건 상관없다. 미리 말만 해주고 약속을 지키면 된다. 하지만 남편은 약속 시간보다 30분 이상 늦게 들어오는 때가 많았다.


사건이 발생한 그날 저녁도 남편은 시간 맞춰 들어오지 않았다. 이미 전적이 화려한 남편이라 나도 인내심의 끝이 보이는 날이었다. 그래서 현관 비밀번호 판과, 문 손잡이 그리고 가장 윗단의 걸쇠까지 야무지게 잠가버렸다. 10분쯤 더 지났을까, 초인종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난 반응을 하지 않았다. 그러면 내가 화난 줄 알거나 자는 줄 알고 밖에서 알아서 자고 오겠지 싶었다.


예상은 완전 빗나갔다. 열쇠 수리공을 불러 현관문 잠금장치를 교체하고 뚜벅뚜벅 집으로 걸어 들어오는 게 아닌가. 나는 속으로 욕하면서 생각했다. “와… 저 새끼도 보통 아니네. 끼리끼리 아주 잘 만났네 서로.” 야간이라 출장비까지 포함해 거금 17만 원을 들여 현관문을 새 단장했다. 볼 때마다 얼마나 빛나던지. 한동안 나는 문을 여닫을 때마다 박수를 치면서 남편에게 말했다. “와~ 우리 집 현관문 멋지다!” 남편은 겸연쩍게 웃으며 사과했다.


이로써 성대한 축제도, 끝날 거 같지 않은 기싸움도 모두 끝났다. 그리고 나면 본격적으로 진짜 결혼 일상이 시작된다. 부부의 생활은 특별하지 않다. 특별하지 않아도 괜찮다. 의식주를 함께 하는 새로운 가정을 꾸린 것뿐이다. 큰 문제없이 살면 그게 잘 사는 거다. 핵심은 결혼하고 나서 찾아오는 일상의 평범함에 적응하고 그 속에서 평온함을 즐기면 된다. 일부러 만들지 않아도 부부 사이에는 주기적으로 특별한 일들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그때 그 특별한 일들을 함께 즐기거나 헤쳐나가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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