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고별의식

소설 연재

by 김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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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인이 103호 빈소에서 발인 절차를 지도하고 있다. 제단은 국화꽃으로 풍성하게 장식되어 있다. 하얀 꽃잎이 여러 겹으로 포슬포슬하게 피어있다. 중앙에는 영정사진이 놓여 있다. 70대로 보이는 사진 속 남성은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애잔해 보이는 주름이 가득하다.


그 아래 단에는 장례 상차림이 단정하게 준비되어 있다. 상주는 제단을 마주하며 무릎을 꿇고 앉아 있으며, 그 뒤로 가족을 비롯한 조문객들의 모습이 보인다. 오늘 발인절차는 상주 의견에 따라 전통방식으로 간단히 진행된다.


재인은 제단 왼쪽에 살짝 빗겨 서서 차분한 목소리로 말한다.

“장지로 이동 전 마지막 고별의식으로 발인을 진행하겠습니다.”


그녀는 향을 3개 태워 상주에게 건넨다.

“상주님, 향을 하나씩 분향하세요.”


그리고 빈 잔을 내려 상주에게 건네준 후 오른쪽에 서 있는 집사에게 말한다.

“집사님, 세잔 하겠습니다. 술을 조금만 부어주세요.”


이어서 상주에게 말한다.

“상주님은 잔을 흔들어 씻으시고 퇴주잔에 3번 나누어서 다 부으세요.”


이내 재인은 상주의 빈 잔을 받아 들며 말한다.

“강신 먼저 하겠습니다.”


그녀는 잔을 뒤집어 향에 돌리고 빈 잔을 영좌에 올린다.

“이제 상주님은 일어나시고, 상주님만 절 2번 올리겠습니다.”


상주가 절을 끝내면 다시 꿇어 앉히고 빈 잔을 내려서 건넨다.

“집사님은 술을 한잔 따라주세요.”


그녀는 다시 상주가 들고 있는 술잔을 받아 들고 말한다.

“상주님은 그대로 앉아계세요.”


그리고 술잔을 영좌에 올린다. 그다음 젓가락을 조심히 집어 들고 제상 위에 세 번 소리가 나도록 두드린 후 제사 음식 위에 올린다.


재인은 다음으로 발인 축문을 천천히 낮은 목소리로 읽는다.

“이제 아버님 혼령께서 상여에 오르시면, 다시는 돌아오실 수 없는 길로 가시옵니다. 저희들이 애통해하는 모습도, 세상살이의 고단함도 모두 다 이 세상에 내려놓으시고 극락세계에 가셔서 영원한 복을 누리옵소서.”


이어서 말한다.

“자, 다들 일어나시고 이제 다 같이 절 2번 올리겠습니다.”


발인제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재인의 목소리에 맞춰 두 번 절한다.

“배, 흥. 재배, 흥.”


재배가 끝난 후 돌아가면서 헌주를 시작한다.

“이제 장지로 가기 전 가족분들 모두 술 한잔씩 올리며 마지막으로 보내는 예를 올리겠습니다. 상주님은 우측으로 서 계세요. 다음으로 자부님 나오셔서 꿇어앉으세요.”


자부에게도 술을 올리게 하고 또 정저 후 큰 절을 2배 시킨다. 그녀는 고인의 가족들이 순서대로 나와서 같은 의식을 치를 수 있도록 절차를 계속 진행한다.


“그다음 따님분 나오세요.”

“그다음 사위분 나오세요.”

“그다음 손자분 나오세요.”

“그다음…”

“그다음…”



***



재인은 초등학생 3학년인 2004년 목격한 버스사고를 쉽게 잊을 수 없었다. 그 사건을 계기로 사람들 머리 위 숫자의 비밀을 알게 된 재인은 혼란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부모님 머리 위 숫자를 보며, 온갖 무서운 상상을 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길을 지나가면서 가까운 날짜가 머리 위에 떠 있는 사람을 보면 괜히 미안한 마음에 고개를 숙이고 지나갔다.


그런데 유일하게 머리 위에 숫자가 보이지 않는 사람이 있었다. 그것은 재인 자신이었다. 정작 본인이 죽는 날짜는 알 수 없었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머리와 팔, 다리에 안전보호장구을 착용하고 등교하기도 했다. 부모는 그런 재인을 엉뚱한 딸이라고만 생각했다.



***



시간이 흘러 2009년이 되었다. 재인은 나름대로 평범하게 생활했다. 다행히도 그동안 가까운 주변에서 누군가 죽는 일이 없었고 큰 사고도 발생하지 않았다. 또 그녀는 나름대로의 노력으로 현실에 잘 적응했고 평범한 중학생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재인은 1학기 중간고사를 앞두고 밤샘공부를 하고 있었다. 시험 일정을 확인하기 위해 달력을 펼쳐 들었다.


‘보자… 5월 3일 마지막 날 시험 과목이 과학이랑 사회네… 하… 과학 진도 언제 다 빼지… 5월 3일이면 아직 그래도 시간이 좀 남았으니까… 어? 5월 3일? 5월 3일? 올해 2009년 5월 3일! 090503… 외할머니 숫자인데…’


재인은 어릴 때부터 가족들의 숫자를 외우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외할머니의 숫자가 가장 빠른 날짜였다. 너무 오랜 기간 일상의 시간들이 평범하게 흘러서 그 숫자를 깜빡 잊고 있었다. 엄마께 이 사실을 말씀드릴지 말지 고민했다. 망설여졌다. 충격받으실까 봐, 그리고 그녀가 가진 이 능력을 밝히면 걱정하실까 봐 등의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했다.


다음날 아침, 재인은 가족들과 함께 식사하면서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엄마, 외할머니 잘 지내고 계시지?”


엄마는 대답했다.

“응, 잘 계셔. 어제도 통화했어.”


재인은 다시 말했다.

“엄마 근데 내 친구한테 들었는데 이번 달에 ‘가보자 여행사’에서 할인 상품이 엄청 나왔대. 외할머니랑 엄마랑 두 분이서 날도 좋은데 기차 여행 한 번 다녀오시는 건 어때요?”


그러자 아빠가 반응했다.

“그래, 당신 장모님이랑 요즘 시간 못 보냈다고 아쉬워했잖아, 이참에 재인이 말 듣고 한 번 모시고 다녀와.”


그러자 엄마는 시큰둥하게 말했다.

“아니, 무슨 갑자기 여행 타령이야. 어차피 재인이 방학하면 다 같이 한 번 내려갈 건데 뭘.”


불안한 재인은 괜히 신경질 내며 말했다.

“아니, 엄마는 외할머니랑 통화하면서도 매번 틱틱거리고 잔소리만 하고! 죄송하지도 않아요? 이 참에 딸 노릇 한 번 하면 되지! 아, 몰라 그냥 엄마 마음대로 해.”


재인은 곧바로 방에 들어가 가방을 메고, 괜히 현관문을 세게 쾅 닫으며 집을 나섰다. 그날 저녁 재인은 방에서 심란한 마음으로 시험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문 밖에서 노크소리가 들렸다. 똑똑똑.


“네.”


엄마는 문을 살짝 열어서 고개만 삐죽 내민 채 웃으며 이야기했다.

“재인아, 엄마 이번 주말에 외할머니댁 좀 다녀올게. 여행 가는 건 무리고 그냥 얼굴 한 번 뵙고 오려고. 니 등쌀에 못 이겨서 가는 거야. 어휴! 저거 진짜 성질머리 하고는. 내 딸이지만 너도 진짜 나 닮아서 성질 한 번 더럽다, 더러워!”


그리고 엄마는 마치 사랑한다는 눈빛으로 괜히 재인을 흘겨보고 문을 닫고 나갔다. 재인도 입술을 살짝 삐죽였지만, 그녀의 입가에는 괜스레 미소가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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