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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안 Sep 18. 2023

#2 충돌

소설 연재


재인은 한울병원 장례식장 입구로 들어가서 코너를 한 바퀴 돌아 사무실로 향한다. 문을 열고 동료들에게 옅은 미소를 띠며 목례한 후 자리에 가서 가방을 내려놓는다. 탁상시계는 오전 6시 50분을 가리킨다. 그녀는 서둘러 책상 위에 놓인 작은 사무용 노트와 펜을 챙겨 회의실로 들어간다.


회의실 문을 열자 전날 당직자인 미영과 태진이 의자에 이미 앉아 있다. 뒤이어 출근한 민석까지 따라 들어온다. 회의실 내부 한쪽 벽면의 큰 책장에는 수많은 서류 봉투들이 꽂혀 있다. 그 옆의 벽면에는 메모가 가득한 달력형 화이트보드가 보인다.


미영이 서류를 펼치고 펜을 집어 들었다.

“오늘 입관하실 분이 2분, 발인이 1건 있어요.”


태진은 작은 움직임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여 말했다.

“입관하실 분 중 한 분은 병사, 다른 한 분은 외인사로 들어오셨어요.”


민석은 대답했다.

“네, 그럼 그렇게 알고 진행하겠습니다.”


이어서 재인이 말했다.

“네, 확인하겠습니다.”


회의가 끝나고 미영과 태진은 각자 가방을 챙겨 들고 인사를 하며 사무실을 나선다. 민석은 자기 자리로 돌아가 책상에 앉는다. 재인은 정산 데스크로 이동한다.


데스크 위에는 돈뭉치가 한가득 있다. 그녀는 돈뭉치를 한 손 가득 집어 들고 지폐계수기에 넣는다. 촤라라라라락! 그리고 계수된 지폐들을 다시 집어 들고 종이로 된 끈으로 묶어 정리한다. 항상 업무의 첫 시작은 정산이다. 발인 전에 보통 정산을 마무리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지폐 뭉치들을 계속해서 지폐계수기에 넣고, 기계 소리도 반복된다.


촤라라락! 촤라라라락!



***



쏴아아! 쏴아아아!


비가 눈앞을 가릴 정도로 퍼붓던 선선한 가을날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재인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선생님과 친구들 머리 위에도 서로 다른 숫자 조합들이 둥둥 떠있었다.


마지막 교시가 끝나고 집에 가기 위해 가방과 우산을 챙겨 들었다. 학교 정문을 빠져나와 골목길을 따라 내려갔다. 문방구와 철물점을 지나서 보이는 코너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계속 걸어갔다. 한참을 걸어 이윽고 신호등 아래에 섰다.


맞은편으로 건너가기 위해 기다리는 재인의 시선은 왼쪽 대각선에 있는 중앙차로 정류장으로 향했다. 비가 많이 와서인지 그날따라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재인은 그 모습을 구경하며 들릴 듯 말 듯한 작은 소리로 혼잣말을 읊조렸다.


“오늘은 같은 숫자가 많이 보이네. 040912…”


얼마 지나지 않아 파란색 버스 682번이 도착하고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탔다. 버스가 가득 차는 바람에 몇몇 사람들은 올라타지 못하고 포기한다. 재인은 또 속으로 생각했다.


‘같은 숫자를 가진 사람들끼리 한 버스를 타네.’


곧이어 신호등이 초록색 불빛으로 바뀌었다. 재인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도로를 건넜다. 신호등은 다시 빨간색 불빛으로 변했다. 그녀는 도로 끝에서 오른쪽으로 몸을 돌려 집으로 향하는데 갑자기 귀를 찢는듯한 큰 충격음이 들렸다.


쾅!


도로는 순식간에 사고 현장이 되었다. 도로 반대편에서 달려오던 덤프트럭이 빗길에 미끄러져 조금 전에 본 파란색 버스와 충돌한 것이다. 재인은 사고 난 버스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버스 창문 밖으로 어렴풋이 비치는 숫자들이 하나씩 사라지고 있었다. 여전히 다양한 숫자들이 보였다. 하지만 040912라는 숫자들만 갑자기 사라지거나 혹은 깜빡이고 있었다. 재인은 넋을 놓고 입 밖으로 되뇌었다.


“040912… 040912… 오늘이… 2004년 9월 12일… 040912…”


그리고 생각했다.


‘죽는 날짜였구나… 사람 머리 위에 보이는 숫자가… 그 사람이 죽는 날짜를 가리키는 거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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