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지안 Sep 19. 2023

#4 별이 빛나는 밤

소설 연재


“재인아, 밥 먹어!”


재인의 방 안으로 엄마의 목소리가 들어온다. 책상 위에는 거의 다 맞춰가는 300피스 퍼즐 조각들이 보인다. 퍼즐 그림은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책상 옆 벽면에는 작은 옷장과 화장대가 있다. 그 반대편에서는 창문 블라인드 사이로 아침 햇살이 살며시 새어 들어오고 있다.


부스럭. 침대 위 재인은 아직 아침잠이 덜 깬 채로 몸을 뒤척인다. 조금 뒤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아 기지개를 켠 후 일어선다. 방문을 열고 나가니 주방에 서 있는 엄마의 뒷모습이 보인다. 재인은 눈과 입가에 장난기를 머금고 그 뒤로 가서 엄마의 엉덩이를 양손으로 때린다. 찰싹찰싹.


엄마는 밥을 그릇에 담으면서 고개만 뒤로 돌아보며 말한다.

“으유, 너는 또 아침부터 엄마 괴롭히냐?”


재인은 대답한다.

“에이, 괴롭히기는 무슨. 애정표현이지!”


재인은 밥그릇 두 개를 들고 식탁에 가서 올려놓는다. 엄마가 자리에 앉고 이어서 재인도 따라 앉는다. 식탁에는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따뜻한 된장찌개와 계란말이 그리고 두부조림과 겉절이가 먹음직스럽게 차려져 있다. 엄마와 재인은 식사를 하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


“재인이 너 오늘은 교대근무 비번인 날이지?”

“응, 오늘은 낮에 쉬고 저녁에 출근해.”

“그럼 낮에 푹 좀 더 자. 일하는 거 많이 힘들지?”

“아냐, 그래도 재밌고 보람 있어요.”

“다행이다. 그래도 잘 맞다니까.”

“아! 그리고 외할머니 기일이 2주 뒤쯤이던데 우리 언제 갈까요?”

“그러게, 너도 일 하니까 주말에 시간 맞춰서 아빠랑 다 같이 한 번 다녀오자.”

“네 좋아요.”


식사를 마친 후 방에 들어온 재인은 다시 미적거리며 침대에 눕는다. 인형을 끌어안고 뒹굴거리면서 오늘 낮에 뭘 할지 생각한다. 쉬는 날이면 보통 집에서 퍼즐을 맞추거나 동네책방에 가서 커피 한 잔 하며 책을 읽곤 한다. 그녀는 짧은 고민을 끝내고 일어선다.


재인은 무릎까지 오는 청치마에 후드 티셔츠 한 장 걸쳐 입고 모자를 푹 눌러쓰며 방을 나온다.

“엄마, 저 서점에 잠깐 다녀올게요.”


엄마가 대답한다.

“그래 잘 다녀와.”



***



재인은 후드 티셔츠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걸어간다. 그 앞으로 작은 서점이 하나 보인다. 간판에는 ‘누리봄 동네책방’이라는 글자가 선명하다. 문 손잡이를 열고 들어간다. 책에서 스며 나오는 특유의 종이 냄새가 코 안에 살포시 들어온다.


책방 주인인 진욱은 밝게 웃으며 재인에게 인사를 건넨다.

“어서 오세요.”


재인도 인사하며 들어선다.

“안녕하세요.”


재인은 카운터로 가서 메뉴판을 올려다본다. 이내 시선을 진욱에게로 내리고 카드를 내밀며 말한다.

“따뜻한 카페라테 한 잔 주세요.”


진욱은 카드를 받으며 대답한다.

“네, 4천 원입니다.”


카드를 돌려받은 재인은 바로 옆 선반에 있는 책 한 권을 꺼내 창가 구석진 테이블에 가서 앉는다. 책을 펼쳐서 목차를 구경하는 동안 진욱이 커피를 가져다주며 인사한다. 재인도 웃으며 목을 살짝 숙여 인사한다. 재인은 책을 내려놓고 커피 잔을 양손으로 들어 올린다. 커피와 우유향이 적절하게 섞인 향긋한 냄새가 코를 간지럽힌다. 재인은 라테를 한 입 살짝 머금고 창가를 내다본다.



***



창문 안 쪽으로 교실이 비친다. 그 안에는 중학생 아이들이 중간고사를 치르는 모습이 보인다. 2009년 5월 3일, 재인도 마지막 시험 문제를 열심히 풀고 있다. 곧이어 시험 종료 안내방송이 흘러나온다. 시험지가 다 걷히고 난 후 학생들이 저마다 가방을 정리하며 교실 분위기가 어수선해진다. 재인도 필기구를 가방에 챙겨놓고 교실을 빠져나온다. 전원을 꺼두었던 휴대폰을 켜보니 엄마로부터 문자가 한 통 와있었다.


“재인아, 시험 치르느라 고생 많았어. 일단 시험 끝나면 집에서 옷 갈아입고 다온장례식장으로 와. 외할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셨어. 외삼촌 연락받고 아빠랑 엄마도 지금 가고 있어. 집 식탁 위에 엄마가 카드 올려놨으니까 올 때 택시 타고 와.”


문자 마지막에는 부고장 내용도 첨부되어 있었다.


“<부고>

최정인의 모친 김옥란께서 별세하여 삼가 알립니다.

빈소: 다온장례식장 104호실

발인: 2009년 5월 5일 오전 9시

장지: 미리내 추모공원

유족연락처: 011-1234-4321”

이전 04화 #3 고별의식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