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자 위에 사과 상자보다 조금 큰 관이 보인다.오동나무로 제작한 관이다. 재인은 그 앞에서 검은색 시트지를재단하고 있다. 오늘은 세 돌이 채 되지 않은 아이를 입관하는 날이다.
어린아이의 장례는 자주 있는 일이 아니라, 그때마다 크기에 따라 맞춤관을 제작한다. 또 아이 장례는 따로 빈소를 차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입관할 때 사용하는 관을 조금 더 신경 써서 장식하는 편이다.
재인은 죽은 아이의 마지막 공간을 밝게 꾸미고 있다. 먼저 관 뚜껑에 검은색 시트지를 붙인다. 그 위에는 또래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캐릭터와 반짝이는 별모양 야광 스티커를 여러 개 붙인다. 훨훨 날아가라는 의미에서 나비 모양의 스티커도 군데군데 붙인다.
준비된 관은 탁자 위에 그대로 놓아두고 옆 방으로 가서 아이의 염습 절차를 진행한다. 염습은 입관 전에 죽은 자의 시신을 닦고 수의를 입히는 장례 절차이다. 염습은 습염이라고도 하며 습, 소렴, 대렴의 과정으로 구성된다. ‘습’은 시신을 목욕시킨 후 수의를 갈아입히는 과정이고, ‘소렴’은 시신을 가지런히 정돈하여 임시로 묶는 과정이며, ‘대렴’은 그 시신을 다시 포로 단단히 싼 후 제대로 묶어서 마지막으로 입관하는 과정을 말한다.
입관식을 하기 전 염습은 소렴절차까지만 진행한다. 대렴절차는 유족과 고별인사를 진행한 이후에 마무리해서 입관을 한다. 소렴까지 준비를 마친 재인은 유족 대기실로 이동한다. 그녀는 슬픔에 잠겨 있는 아이의 부모가 입관실로 이동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들어가기 전 조심스럽게 말을 건넨다.
“유족분들께 말씀드립니다. 공이 이르기를 예가 우선이요, 슬픔은 그다음이라 했습니다. 입관실에서 너무 울지 마시고, 고인 분이 마음 편히 떠나실 수 있도록 따뜻한 마음으로 좋았던 추억과 행복했던 시간들을 이야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문을 열고 입관실로 안내한다. 아이의 부모는 미동도 없이 누워있는 아이를 마주하고 흐느끼며 눈물을 흘린다. 재인은 아이의 부모가 양 옆에 설 수 있도록 자리를 정해준다.
아이의 부모가 조금 진정이 되길 기다린 후 재인이 다시 말한다.
“감기지 않았던 눈은 충분히 마사지를 해서 보시듯이 눈을 감겨 드렸습니다. 피부가 약해서 한지로 옷을 만들어 입히고 그 위에 수의를 입혀드렸습니다.”
이어서 말한다.
“자, 이제 자녀 분을 직접 보면서 이야기하실 수 있는 마지막 시간입니다. 마음에 담아뒀던 이야기나 용서를 빌어야 하는 이야기 또 기뻤던 이야기와 사랑했던 이야기. 자녀 분이 마음 편히 갈 수 있도록 한분씩 목소리를 들려주시면서 고별인사 하시길 바랍니다.”
아이의 아버지가 아이의 몸을 찬찬히 만지며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연다.
“혁준아… 아빠랑 엄마한테 와줘서… 너무 고마웠어… 너와 함께한 시간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다. 하늘에서는 더 이상… 아프지 마… 우리 혁준이… 아빠가… 많이 사랑한다…”
이어서 아이의 어머니가 아이의 가슴을 쓰다듬으며 숨을 한 번 고르고 말한다.
“엄마가…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혁준아… 너무 보고 싶을 거야… 하늘에 가서 이제는 고통 없이 편히 쉬어… 많이 사랑해… 사랑… 사랑해… 혁준아…”
유족들의 고별인사가 끝나고 재인은 대렴 절차를 진행한다. 그녀는 아이의 시신을 다시 포로 단단히 감싸 묶는다. 부모는 이 모습을 가만히 지켜본다. 관 내부의 바닥은 탈지면을 채워 푹신하게 깔고, 그 위에 베개를 올려놓는다. 이제 아이를 살포시 들어 올려서 관 안에 눕힌다. 그리고 부모가 부탁한 대로 아이의 곰돌이 애착인형까지 옆에 끼워 넣는다. 빈 공간은 염지로 만든 꽃들로 채우고 테두리는 생화로 장식한다. 마지막으로 관 뚜껑을 닫고 관보를 덮는다.
재인은 말한다.
“입관절차는 이렇게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내 아이의 부모는 목구멍 끝까지 차오르던 눈물을 터트린다. 사람이 너무 구슬프게 울면 마치 짐승이 울부짖는 소리처럼 들린다.
일한 지 4년이 넘었다. 이제 드디어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 장례지도사가 된 줄 알았다.하지만 이런 날은 여전히 재인의 마음에도 눈물이 가득 차오른다.
아이의 어머니가 휘청거리며통곡한다.
“여보… 어떡해 우리 이제… 어흑…끄흐억…흑…”
아이의 아버지도 그런 아내를 안으며 눈물을 끊임없이쏟아낸다.
재인도 마음으로 아이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좋은 곳으로 가서 편히 잠들기를.’
아이의 부모는 재인의 안내를 받아 문 밖으로 이동한다. 부모의 발걸음이 무겁게 움직인다.
***
재인의 발걸음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중간고사 시험이 끝나자마자 달려온 재인의 눈앞에 다온장례식장 입구가 보였다. 그리고 재인은 처음 보는 광경에 잠깐 멈춰 섰다. 장례식장에 들어가는 사람들 머리 위의 숫자가 사라지고 있었다. 반대로 다시 밖으로 나오는 사람들 머리 위에는 사라졌던 숫자가 다시 생겨나고 있었다. 재인은 어리둥절하며 장례식장 입구로 들어섰다. 건물 안 모든 사람들의 머리 위에는 숫자가 보이지 않았다. 의아해하며 다시 뒤돌아서 장례식장 입구 바깥쪽 사람들을 바라보니 여전히 머리 위 숫자들이 떠있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어? 장례식장 안에서는 숫자가 안 보이네…’
그것도 잠시,바로 정신을 차리고 외할머니 빈소가 차려진 건물의 복도로 걸어 들어갔다. 드디어 재인의 발걸음이 멈춰 섰다. 제104호 빈소 앞 안내 화면을 쳐다봤다. ‘故 김옥란 님’이라는 글자 아래에 외할머니 사진이 보였다. 재인은 신발을 벗고 빈소로 들어갔다. 조문객들 사이로 상복을 차려입은 아빠와 엄마 그리고 외삼촌과 다른 가족들이 보였다. 엄마의 눈이 재인과 마주쳤다. 엄마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엄마는 재인을 빈소 안쪽 작은 방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그리고 방 안의 옷장에서 재인이 입을 상복을 꺼내줬다. 재인은 그런 엄마를 와락 안았다.
엄마가 재인에게 안긴 채로 흐느끼며 말했다.
“재인아, 고마워… 너가 등 떠밀어 준 덕분에 외할머니 돌아가시기 전에 잠깐이라도 들러서 얼굴 뵙고 올 수 있었어… 그때 안 찾아뵀으면 많이 후회했을 거야… 고맙다 재인아…”
상복을 입고 다시 방에서 나온 재인은 먼저 나온 엄마 옆으로 조용히 가서 섰다. 계속해서 조문객들이 방문했고, 재인은 엄마를 따라 인사했다.
그리고 다시 생각에 잠겼다.
‘숫자가 안 보이네… 장례식장에서는 안 보여… 숫자가…’
재인은 외할머니가 돌아가셔서 마음이 저렸다. 하지만 동시에 사람들 머리 위의 숫자가 처음으로 보이지 않는 모습에 마음이 편안했다.
그리고 속으로 되뇌었다.
‘만약에장례식장에서 일하게 되면… 그러면… 숫자를 보지 않으면서 일할 수 있겠네… 사람들 머리 위의 숫자를 보지 않으면서… 일을 할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