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하늘, 적란운 그리고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방문기

by 이이구

어렸을 때 분명 가본 적이 있는 공간이다.

하지만 머릿속에 남아있는 기억은 하나도 없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항상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학창 시절에는 역사를 좋아했고 유물들을 구경하고 숨겨진 과거 이야기를 찾는 것들을 좋아했었기 때문이다.

계획은 항상 있었다.

하지만 집에서 대중교통으로 한 시간 반이 걸린다는 사실 때문일까 몸이 마음처럼 잘 움직이지 않았다.


최근에 국립중앙박물관을 방문하는 사람이 최고치를 찍었다고 한다.

그래서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생각했다.

더운 한여름 평일에 가면 사람이 그래도 적지 않을까 싶어 아침 운동을 끝내고 가방을 메고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이동했다.

지하철에서 내리는 사람을 확인했는데 생각보다 많지 않아서 더운 여름이라 관광객이 적은 거구나 생각했다.

역시 운이 좋아라고 생각하면서 출구를 향했다.

국립중앙박물관


내리째는 8월의 태양은 뜨거웠지만 제일 더웠던 주가 지났기 때문일까 그래도 버틸만했다.

지하철에서 나와 천천히 걷자 국립중앙박물관 건물이 보였다.

사람은 적당히 있어 보였다.

며칠 전 인스타그램에서 본 국립중앙박물관 웨이팅이라는 영상은 주말이라 사람이 많았던 거 구나 생각했다.

남산타워와 구름이 이뻐서 사진을 몇 장 찍고 건물로 들어갔다.


남산타워


웨이팅이 있어야 할 가방 검사 줄이 길지 않았고 바로 통과할 수 있었다.

쾌적한 관람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순간 박물관 안에 보이는 인파가 내 옆으로 우르르 밀려들어왔다.

이미 입장을 해서 구경을 하고 있는 관람객들이 정말 많았다.

평일이라 해도 방학이었고 덥다고 해도 박물관은 실내였다.

9월에 올걸 그랬나 라는 후회가 들었지만 날이 좋아지면 또 관람객이 늘어날 수 있기 때문에 이번에 다 보고 가자고 마음을 정했다.


1층부터 시작해서 3층까지 천천히 유물들을 관람하기 시작했다.

선사시대부터 대한제국 그리고 다양한 분야의 유물까지.

확실히 내가 알고 있는 유물들을 실제로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았고 신기한 것들도 많이 볼 수 있었다.

다만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국립중앙박물관이기 때문에 오늘 다 보고 가자는 마음이 있어서일까 처음에는 설명을 꼼꼼히 다 읽으면서 관람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간단간단하게 보고 넘어가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게 선사시대를 관람할 때 적혀있는 설명들을 다 읽으면서 구경했는데 그러니까 시간이 30분이 넘게 소요되었다.

이 페이스로 가면 오늘 관람은 10시간 동안 해도 다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보고 싶었던 대표유물들을 중심으로 빠르게 관람을 시작했다.

국립중앙박물관


인상 깊었던 것들은 역시 유명한 유물들이었다.

인상 깊었기 때문에 유명해진 것일까.

유명하기 때문에 인상 깊었던 걸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요한 건 그 수천 년 전의 물건에서 느껴지는 화려함, 디테일 들이 엄청났다는 것이다.

신라 금관의 화려함.

화려함안에서도 적당한 절제미가 느껴졌다.

누군가가 저걸 쓰고 걷는다면 장식들이 흔들릴 텐데 그 장면이 무척이나 아름답겠다고 생각했다.


사유의 방
사유의 방


사유의 방도 압도적이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가장 유명한 유물 중 하나인 사유의 방은 그 고요함에서 오는 무거운 위압감이 있었다.

무겁지만 기분이 나쁜 무거움은 아니었다.

침묵과 함께하는 안정적인 무거움, 포근함 같은 분위기가 있었다.

몇 분 동안 가만히 서서 사유의 방에 있는 반가사유상을 바라보았다.


외규장각 의궤
불상


개인적으로 기대한 외규장각 의궤는 임팩트가 강하지는 않았던 거 같다.

오히려 불교 관련 유물들과 일본 유물들이 인상적이었던 거 같다.


박물관에 오면 항상 느끼는 것이 있다.

짧게는 수백 길게는 수만 년 전 사람들도 우리와 비슷한 가치를 추구했다는 게 신기했다.

사람을 죽이고 곡식을 재배하고 옷을 입고 아름다운 물건을 치장하고 글을 적는다.

수만 년 전 누군가가 사용했던 주먹도끼가 내 눈앞에 있다.

누군가는 사라지고 내가 존재한다.

그리고 나도 사라지고 주먹도끼만 남는다.

주먹도끼만 수만 년 동안 존재한다.

그런 사실들이 신기하고 소름 돋고 무섭고 재미있었다.


이 금관을 쓴 사람은 어떻게 죽었을까.

이 불상은 몇 명이서 만들었을까.

이 글자를 적은 사람은 적으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상상할 거리가 많은 장소였다.


국립중앙박물관


겨우겨우 빠른 걸음으로 구경을 다하고 박물관을 나왔다.

남산타워에 구름이 걸렸는데 그 광경이 너무 아름다웠다.

저 남산타워도 언젠간 누군가에게는 유물이 될까.

그렇다면 저 구름은 어떨까.

내가 찍은 사진은?

혼자 걸으면서 수만 점의 유물을 봐서 그런 걸까.

머릿속에서 상상의 나래가 끝을 보이지 않고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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