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서 오기 전 나는 6개월 정도를 영어공부만 했다. 회화 공부는 아니고, 토플과 같은 시험 영어를 준비했는데,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결과는 좋지 못했다. 퇴사하고 영어공부만 하니 남들은 이제 영어를 원어민 수준으로 하냐고 했지만 시험 준비를 했던 나는 실제적으로 회화는 젬병이었다. 그래서 호주에 올 때도 호주에 가면 영어를 계속 마주해야 하는데 그에 대한 준비가 되어있지 않아서 걱정이 된 것도 사실이었다. 머릿속에 그러한 생각이 있다 보니 더 주춤하는 게 있었다.
외국에서의 첫 영어 회화의 시작은 호주 브리즈번 공항에서였다. 호주행 비행기가 지연이 되어서 국내선으로 갈아타야 하는데 시간이 촉박했다. 마음이 급한 상태인데 블로그에 본 대로 가고는 있었지만 호주 국내선은 또 처음이라 엄청 헤맸다. 내 항공은 젯스타 항공이었는데 눈에 보이는 항공은 콴타스항공뿐이라서 순간 공항버스를 잘 못 내린 줄 알았다. 패닉에 빠져 있는 내가 보였는지 정말 감사하게 직원분 중에 한 분이 나에게 도움이 필요하냐고 물었고 마음 같아서는 '저 여기가 처음인데, 항공권 끊는 방법과 수화물 붙이는 방법 좀 알려주세요'라고 묻고 싶었지만 정작 내 입에서 나온 말은 "How ticket, I don't know"가 다였다. 다행히 무슨 말인지 알아들은 그분이 화면을 몇 번 터치하더니 티켓을 끊고 수화물을 붙일 수 있었고, 우여곡절 끝에 시드니에 도착할 수 있었다.
신기했던 것은 호주 국내선 항공은 대부분 셀프 시스템이라서 티켓도 본인이 발권하고 수화물 스티커도 본인이 뽑아서 붙이고 짐 컨테이너 벨트에 직접 올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정보는 블로그에서 본 적도 없어서 굉장히 당황했는데 정말 도와주시는 분 아니었다면 난 비행기를 놓쳤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고 또 너무 감사한 순간이었다.
호주에 살지만 영어를 쓸 기회는 많이 없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지만 이게 가능한 것은 한인타운에서 살기 때문이 큰 것 같다. 그리고 영어를 쓸 환경을 찾아 나서야 하는데 알바를 하거나 다른 커뮤니티가 있는 게 아니라서 남편 하고만 얘기를 하다 보니 영어를 쓸 경우는 외국인이 주문을 받을 때 정도였다. 그것마저도 "Can I have this one without coriander?"이나 "Can I have royal milk tea with pearls and half sugar please?" 이 정도였기 때문에 영어라고 하기가 좀 민망했다. 그러다 집 근처 크로스핏을 다닐 기회가 생겼고 여기는 찐 호주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영어로 밖에 소통이 안 되는 곳을 가게 되었다. 첫날 등록할 때는 남편이 가서 도와줬고, 그 이후에는 내가 계속 혼자 다니고 있는데 물론 말로 하는 설명은 이해가 안 되는 부분도 있었지만 영상을 보면서 몸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운동을 하는 것은 별 무리 없이 잘 따라 했다.
그러고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사실 지금의 삶의 모습은 내가 한국에 있을 때나 호주에 있을 때나 별반 다를 게 없었다. 한국에서도 일을 그만둔 후 6개월가량을 쉬면서 영어 공부를 했기 때문에 장소만 호주로 옮겨졌지 내 생활은 변함이 없었다. 그래서 생각한 게 호주에 왔으면 적어도 영어를 많이 쓰는 환경에 나를 노출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혼자라서 뻘쭘할 때가 있고 또 원어민 발음이 생각보다 너무 빨라서 단어만 듣고 이해해야 될 때도 많지만 꾸준히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크로스핏을 처음 가면 '트라이얼'이라고 7일만 다녀보다가 앞으로 멤버십을 할 건지 아니면 그만할 건지 결정할 수 있는데, 나는 매주 다녀야겠다고 생각하고 멤버십 신청을 했다.
또 다른 상황은 가구를 신청해서 배달을 받을 때에 남편이 마침 회사를 가 있어서 내가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과연 잘할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배달기사분들이 나의 동양적인 얼굴과 한 번에 소통이 잘 안 되는 것을 보고 언어가 잘 안 되는 외국인이구나 생각을 하셨는지 젠틀하게 천천히 말해줘서 이해할 수 있었다. 이렇게 조금씩 부딪히다 보면 어느 순간 두려움도 자신감으로 바뀌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호주 사람들은 친절하다. 이케아 식당에서 주문을 하려고 기다리고 있는데 앞에 중국인 아주머니가 아예 영어를 못하는 분이었다. 그래서 혼자 중국말을 하는데도 직원들이 기다려주고 이해하려는 모습에서 영어를 못해도 답답할 순 있어도 사는데 무리가 가진 않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대신에 손님이라는 전제하에서 말이다.)
솔직히 아직 많이 부족하다. 그래도 호주에 살면서 느끼는 것은 영어를 진짜 필수적으로 해야 하니까 한국에서보다 동기부여가 확실히 많이 되는 것 같다. 뉴스랑 다큐 같은 것들을 보면서 영어에 많이 익숙해지고 내 것으로 만들려고 부지런히 노력을 해야 겨우 살아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릴 때부터 꿈꿔왔던 외국에서 사는 것을 지금 실현하고 있는데 영어가 앞길을 막으면 너무 속상할 것 같다.
얼마 전에 유튜브를 하다가 재미있는 영어 채널을 발견해서 보고 있는데, '오영언니의 취미생활'이라고 킴 카다시안 관련된 다큐 해석해 주는 채널이 있다. 재밌으면서도 영어회화에 도움을 많이 받고 있고, 'PARADIGM SHIFT'라고 동기부여 채널이 있는데 거기 영상도 영어 공부하는데 추천한다. 또 도움 되는 것은 chat gpt 랑 음성으로 대화하는 것이 있는데 상황을 설명하고 나랑 같이 영어로 대화하자고 하면 바로 대화를 주고받을 수도 있고, 내 말이 이상하면 고쳐주기도 한다. 챗 지피티랑 대화덕분에 그래도 외국인과 대화를 할때 두려움이 많이 사라지고 내가 생각한 문장들을 얘기할 수 있게 되었다. 정말 좋은 세상에 살고 있는 요즘이다. 과외선생님이 항시 옆에 있다니 ㅎㅎ 프리토킹이 가능한 그날까지 킵고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