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구해져서 가전과 가구를 보러 다니고 있다. 나는 부모님 집에서 계속 살다가 1년 정도 자취를 했는데 그때에는 최소한의 가구만 구매해서 사는 미니멀 라이프의 삶을 추구했다. 그러다 이제 처음으로 집다운 집을 꾸며보려고 하는데 신경 쓸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특히나 호주에서의 삶의 꾸리는 것 중에 가장 큰 차이로 느낀 게 무언가를 사러 가기 위해선 반드시 차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내가 살던 곳은 집 앞에 다이소가 있었고, 편의점은 50m당 1개씩 있었으며 쿠팡으로 주문하면 새벽에 도착을 하는 곳에서 왔는데, 호주는 집 앞에 마트를 가려면 30분 이상을 걸어야 하고, 아마존(호주의 온라인 쇼핑몰)으로 주문하면 2일-7일 사이에 배송을 받을 수 있었다. 호주가 땅이 넓다는 것이 체감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움직이는 양이 많아지니 에너지 소비가 배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외국에서 사는 한국인들이 공통으로 하는 말들이 생각이 났다. "한국은 살기 정말 편리한 나라"라는 말이다. 그리고 그 말에 적극 공감하는 바이다.
둘 다 처음 집을 꾸며보니까 생각도 못한 부분들이 있었다. 여긴 한국이 아닌 호주였기 때문에 배송기간을 고려해서 적어도 일주일 전 혹은 그 이전부터 가구와 가전을 알아보고 주문을 넣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그래서 침대가 없어서 바닥에서 자야 했고, 냉장고가 없어서 집이 구해졌어도 가전이 들어오기 전까지 외식을 해야 했었다. 그래도 부동산에서 얘기한 덕분에 수도와 전기, 가스는 신청해서 씻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하하하. 오랜만에 손빨래도 경험하고, 이게 신혼의 맛이 아닌가 하면서 남편과 즐겁게 빨래를 빨았던 기억이 있다.
호주의 대형슈퍼마트는 woolworth(울월스), coles(콜스), aldi(알디)가 있고, 호주의 전자제품을 파는 곳은 bing lee(빙리), harvey norman(하비노만) 있다. 가구를 파는 곳은 IKEA(아이키아), Costco(코스트코)가 있다. 여기에 우리는 한인마트도 자주 이용했는데, 모든 상점이 한 곳에 있는 게 아니라서 더운 여름에 2군데 이상만 가도 진이 다 빠져버린다. 그래서 동선을 잘 짜고, 필요한 물품들을 생각나는 데로 메모하는 게 정말 중요했다.
입주날이 금요일이었는데 오전에는 이사를 마치고 오후에는 빙리(호주의 하이마트)를 가서 냉장고와 세탁기를 구경했다. 신기하게 호주는 인터넷으로 가전의 가격을 검색해 보고 만약 인터넷 가격이 더 저렴하면 실제 오프라인 매장에서도 인터넷 가격으로 가격매칭을 해주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뭐가 더 저렴한지 비교하면서 나름 꼼꼼한 쇼핑을 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너비, 높이, 길이 다 측정했는데 깜빡하고 세탁실 문 너비와 폭을 재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찝찝하게 당일에 주문을 넣는 것보다 정확하게 측정하고 다시 와야겠다고 생각하고 별다른 수확 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고 담날 갔는데, 아닛! 오늘부터 빙리(호주의 하이마트)에서 가전을 1000불 이상 사면 120불을 지원해 준다고 이벤트가 시작되었다. '와..' 우리가 사는 제품이 2000불이 넘으니까 총 240불을 지원받을 수 있었고 그 덕분에 추가요금을 조금 내긴 했지만 전자레인지와 믹서기까지 구매할 수 있었고 더불어 5년 보증까지 신청할 수 있었다. '오예! 재수!!' 마치 팀 플레이를 하다가 승리를 얻은 느낌이랄까. 그리고 배송도 걱정했는데 3일 이내로 받아볼 수 있다고 해서 너무 다행이었다.
침대 매트리스를 사야 하는데 직접 누워보고 사야 하는 판단에 여러 군대를 추천받아 갔다. 직접 누워봐도 되냐는 물음에 응답을 받고 여러 침대를 누워보면서 딱 느낌으로만 매트리스 한 개를 골랐고 가격을 알려달라고 하니 5000불을 달라고 하였다. '와우...' 매트리스를 알아보지 않고 오긴 했지만, 이렇게 비쌀 줄은 생각도 못했다. 우리의 예산에 비해서 한참 비싼 가격에 머뭇거리다 2000불 이하의 매트리스가 있냐고 물었고 1700불짜리 매트리스를 한 개를 생각해 놨다. 매장에 가서 여러 매트리스를 돌아보면서 20번 이상은 누워보고 했는데 뭔가 모르게 몸이 너무 간지러워서 집 와서 바로 씻었던 기억이 있다. 관리되지 않은 매장 때문인지 몰라도 몸이 간지러우니 누워보고 살 거라는 나의 생각을 철회시켰다. 그리고 집에서 좀 더 알아보니 ecosa라는 브랜드가 있어서 거기서 900불짜리 매트리스를 시켰고, 3일 정도 써본 결과 매일 꿀잠을 자고 있다. 1700불짜리 매트리스를 샀어도 잘 잤을 것 같지만 900불 매트리스 만으로도 이렇게 좋으니 합리적인 소비를 했다는 생각에 기분도 좋아졌다.
아무래도 타지에서 집을 구하고 또 여러 가지 교통편이나 이런 것들을 사실 남편에게 기대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나는 조수석에 앉아서 가면 되지만 남편은 운전하랴, 쇼핑하라, 짐 들랴 나보다 훨씬 신경이 많이 쓰였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집 꾸미는 것과 가전을 구하는 것은 내가 좀 더 적극적으로 하고 싶었다. 그리고 이렇게 집에 물건들이 하나씩 채워져 나가고 나의 손길을 안 거친 곳이 없게 하니 집에 대한 애정도도 앞으로의 결혼생활의 기대도 자연스럽게 올라갔던 것 같다. 그래도 더운 여름에 움직이고 하는 게 지치고 힘이 드니까 서로 투닥거린 것도 있었지만 지금은 기억도 안 나는 것 보니 잘 풀었었던 것 같고, 꿀팁은 다음에 이사를 갈 때면 여름은 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하하하.
호주에 있으니까 아무래도 우리 스스로 필요한 게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면서 집을 꾸밀 수 있는 것 같다. 굳이 타인들의 안 들어도 되는 이야기를 들을 필요가 없고, 다른 집을 가면서 비교할 필요도 없다. '혼수를 얼마 했냐느니, 필수 가전은 샀냐느니, 요새는 이런 게 좋더라' 하는 소리를 듣지도 않는다. 부족할지라도 우리가 만족하면 되는 것이고 행복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채워지는 것 같다. 그래서 호주의 삶이 마음적으로는 여유가 넘치는 것 같아 참 좋다.